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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숙한 사회의 조건과 식량

우리는 시간의 힘을 이길 수 있을까

by 진중현


학생들을 처음 며칠 보고 느끼는 인상을 적는 것은 위험한 생각이다. 기본적으로 모두들 정말 예의가 바르고 교수를 대하는 자세가 정중하다. 역사가 오래되고 문화가 정립되어 있는 연구실을 보게 된다.


학교는 미국의 대형 대학들처럼 부지가 넓고 자연과의 조화가 매우 뛰어나다. 생활이 적응되면 아침에 산책과 간단한 운동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필리핀에서 로스바뇨스 필리핀 대학도 그런 면에서 아주 훌륭했는데 조금 더웠다. 그런데, 이곳은 기후도 적당해서 좋다. 겨울에 왔을 때 생각보다 춥지 않아서 놀랐는데 모든 자연 풍경이 오랜 시간에 걸쳐 조화를 이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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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처럼, 연구실은 성숙해야 한다. 성숙하면 조화로워진다. 너무 많은 변화는 미숙하고 미숙하면 늘 시끄럽다. 우리나라는 늘 시끄럽다. 작은 나라에 너무 많은 의견들이 존재하는 것, 다이내믹하다는 것은 일견 좋은 측면도 있지만, 우리는 그 대신 성숙의 가치를 만들어내지 못했다.


보수적이면 기품이 있어야 하는데 더 얄팍하다. 꼼수와 곧이곧대로가 극단적으로 양립한다. 지킬 것과 지키지 않을 것을 구분하는 것을 지혜라고 한다면, 우리 사회는 예나 지금이나 그것이 가장 부족하다. 뭐든지 새로워야 하고, 안되면 그것을 칭하는 용어라도 새로워야 하고. 새로운 용어를 먼저 던지고 사람들이 거기에 분주하게 해석을 가한다.


실제보다 문서에 써져 있는 표현이 중요하다. 그것은 일을 실제로 하는 사람들을 고려한 것이 아니라, 관리자의 업무를 존중하기 위해서다. 관리자도 같은 일을 반복할 수 없으니, 문서로라도 표현을 바꿔주고 다르게 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 행정 부담을 실무자에게 지운다. 관리자는 정말 관리만 하고 있다. 그 관리도 복잡하다. 각 시스템 내에서 복잡하게 존재하는 9 계단의 계급은 같은 일을 그저 패스하는 사람들로 채워진 경우가 많다.


모두가 억울하다. 모두가 할 말이 많다. 이것은 '착한 심성'으로 교육받은 사람들의 전통적 국가에서 일반 국민들이 다 그런 것 같다. 나보다 전체를 생각하는 마음이 앞서다 보니, 개인의 가치를 희생하는 데 아낌없었다. 그것에 기생하는 사람들이 참 많아졌다. 그런데, 두 극단의 사람들은 '복지'와 '특혜'라는 이름으로 서로를 비난한다. 그 사실조차 꼼꼼히 분석하고 실무적인 차원의 고려를 하지 않고 서둘러 직관적으로 결정을 내리고 맞추라고 한다.


대통령과 그 측근들을 심판하는 것도 참 버겁다. 그러한 사람들을 자꾸 올리는 시스템이 문제요, 그 시스템이 여기저기서 보이는 것이 나뿐일까. 그렇게 해서 난리법석을 치고 나서는 모두 '나는 아니니까' 하면서 자유롭다. 우리나라나 일본이나 걸리지만 않으면 되는 문화가 주류인 공통점이 있는 것 같다.


연구실에 나가서 사람들을 만나고 이야기를 하는 중간중간 느끼는 것이 있고, 물건을 사면서 거리를 걸으면서 생각하게 되는 것들이 있다. 그것은 나뿐만 아니라 굉장히 많은 사람들이 늘 보고 있는 것들이다. 그런데, 분주히 살다 보니 늘 그 자리에 그렇게 있는 것들이 참 감사하다는 것을 모른다. 어떤 것들이 제자리에 잘 있어서 그다음 내가 무엇인가를 시도할 수 있는데.


이런 생각을 하다가 우리 농업을 돌아보게 된다. 농업이 1980년대까지만 해도 지금과 같은 대접을 받지 않았다. 쌀 생산이 안정되니 다른 것을 시도하는 것이 당연하게 되었다. 식량 안정은 그렇게 중요한 것이다. 그런데 왜 지금 다시 그에 대한 불안감이 점점 더 커질까? 많은 구체적인 기술적인, 환경적인, 제도적인 이유가 있다. 그러나, 그 배경에는 농업에 대한 가치를 망각한 것에 있다. 그것이 그 자리에서 안정적으로 잘 돌아가야 세상이 평안한 것이다. 가만히 제 할 일을 잘하는데, 아무것도 안 한다고 하지 말고, 그 실체를 면밀히 잘 봐야 한다. 세상에는 아무 일도 없도록 하는 것 자체가 중요한 것들이 있다.


'식량 안보'라고 말한다. 안보라는 것은 국방, 교통, 에너지, 위험관리, 범죄관리, 환경 보전과 같은 것들에 적합한 말이다. 이 어느 것도 돈을 쓰지 벌지 않는다. 개인들이 돈을 벌어서 뭐 하는가? '소고기 사 먹겠지.' 그렇다. 개인 재정도 그러한데, 돈을 써야 할 부분에 돈을 벌어야 한다고만 주장하는 것이 이상하다.


혼란은 이 부분에서 발생한다. 어디까지가 안 보이고, 어디까지가 산업인가? 우리가 보고 있는 식량과 농업에서의 많은 핑크빛 사례는 농업을 산업으로 승화하여 신기술을 융합한 서방의 사례다. 그런데, 그들은 철저하게 자국 농업에 대해서도 '안보'의 자세를 취한다. 그러나, 국제 사업과 수출 등을 통해 농업의 산업화, 다각화를 꾀했다. 우리 입장에서는 그러한 기술의 수입국이며 후진국이 된 셈이다. 그 기술을 무작정 도입하는 것이 산업적으로 도움이 될 리가 없다. 한국과 일본, 공통점이 있다. 땅이 좁고 인구가 많은데 돈도 많다. 이런 나라의 실정을 알아줄 서방 국가들은 더 이상 없다.


네덜란드, 일본, 싱가포르, 필리핀. 어느 나라가 우리의 미래인가. 난 우리나라가 이 넷 모두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도 우왕좌왕이다. 외국에 가서 그냥 무언가를 봤다고 단기간에 정책에 넣어서 승진에 활용하는 공무원이나, 표를 얻으려는 정치인, 연구비 따려는 교수와 연구원, 대박 노리는 상업적인 농업인과 공공기관 등이 오랜 시간 동안 오해한 측면이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와 똑같은 나라는 어디에도 없다. 부분은 닮아 보여도 전체로서는 없다. 왜냐하면 현재 우리나라가 잘 살게 된 이유가 위 네 나라와 너무 다르기 때문이다. 고학력의 제조업 중심 시스템 국가이며 원천 기술을 확보하기 위한 연구개발의 질적 지원 수준이 낮다. 일부 리드하는 부분이 생겨나는 단계이며, 이것이 전체 영향력에서 과장된 것 같다. 너무 적은 수의 기둥으로 살아가는 나라다. 세계를 주름잡던 네덜란드도 필립스와 같은 기업 중심이었고 그 영향력이 무너지고 나서 지금의 네덜란드를 강대국으로 보는 이는 아무도 없다.


점점 더 어떻게 시스템이 만들어지는가, 문화가 성숙하는가에 대한 관심이 생긴다. 우리는 과연 시간의 힘을 이길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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