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에 대한 일본인 보통 사람들의 생각
요즘 이런 게 떠다니던데... 내가 홋카이도대 연구년을 온다고 하니까, 다들 거의 같은 질문을 묻는다.
"아니, 프로젝트는 어쩌고요? 학생들 많이 뽑아놓고 어쩌고요?"
그런데, 사실 재작년에 국내 R&D 사태로 연구실이 초토화되었다. 그전에도 과제가 잘 안 되고 있었지만, 대형과제 하나도 있었고 재정계획에는 전혀 문제가 없었는데, 이 일로 인하여 연구실과 협력회사가 직격탄을 맞고, 연구실의 사람들은 다 흩어지고, 연구재료와 데이터는 뭐가 뭔지도 모르게 되었다.
그런 와중에 과제 몇 개가 수주되고, 학생들을 다수 뽑고, 연구원들도 다수 뽑고 나서 상황 수습을 하는데 시간을 지난 2년을 다 쏟아부은 셈이었다. 그 와중에 일본 쌀 파동 때문인지 몰라도, 쌀에 대한 관심으로 안 해 보던 일도 해 보고, 나이도 차 오르니 각종 위원이 되면서 잡일도 많아 시간을 연구와 교육에 많이 쓰지 못했다.
우리나라에 번듯하게 쌀로 성공하는 기업들이 많이 나오길 바란다. 식량위기에서 우리를 구원할 주체는 농민 중심 기업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농기업과 지자체와의 협력, 연구 홍보 등은 예상보다 잘 진행되었지만, 나에게는 내 입장과 생각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했다.
'왜 절을 찾느냐'라는 질문에 '생각 정리가 필요하다는 뜻이다'라고 한단다.
나는 일본에 와서도 여전히 바쁘다. 그러나, 생각하느라 바쁘다. 몸이 엉뚱한 곳에 불려 다니지도 않고 어차피 그렇게 지나가는 바람 같은 일들에 휩쓸리지 않아서 좋다. 세상에는 여러 가지 일이 있지만 크게 네 가지가 있다고 한다.
1. 급하고 중요한 것
2. 급하지만 중요하지 않은 것
3. 안 급하고 중요한 것
4. 안 급하고 중요하지 않은 것.
지금 당장 나는 어떤 일을 해야 하는가? 당연히 모두 1번이라고 할 것이다. 그러나, 실은 그렇지 않다. 우리는 대부분 시간을 2번에 할당한다. 이메일 보고 SNS하는 것, 전화하는 것, 뉴스를 뒤척이는 것도 다 이것에 속한다. 그리고, 원치 않는 감투를 쓰고 봉사를 하는 것도 이것에 속할 것이다.
실제로 세상에는 급하고 중요한 것은 보통 '사고터졌다'라고 불리는 것이다. 그냥 보고서가 내일이어서가 아니고, 그것은 내가 3번을 제대로 하지 않아서, 그렇게 된 것일 뿐, 1번은 나의 생활과 거의 아무 상관없이 나타나는 일이므로 평소에 염두에 둘 필요는 없다. 다만, 수습할 뿐인 것이다.
3번이 가장 중요할 수도 있다. 나는 이 3번에 해당하는 일 때문에도 일본에 연구년을 오기로 했다. 제발 방해를 덜 받고 싶고 내가 중요도에 따라 결정하고 싶었다. 그리고 이런 식으로 1년만 더 갔다가는 나 스스로 무너져 버리고, 우리 연구실도 엉망이 될 것 같다. 3번을 무시하면 일상이 1번이 된다.
그런데, 4번은 어떤 것일까. 사람들은 보통 이 4번에 대해서는 언급도 하지 않는다. 그러나, 안 급하고 중요하지 않은 것이 바로 우리 인생의 '배경'이다. 배경이 없으면 사물이 없고, 환경이 없으면 실체가 없다. 내가 어떤 일을 할 수 있는 것도 그 일을 방해하는 것들이 없어서이다. 안 급하고 중요하지 않은 것이 뭘까. 보통 그것은 가족이고 사랑이고 긴장을 푸는 것이고 눈을 지그시 감아보는 것이다. 속된 말로 '빨리 뒤지지 않고 싶으면' 4번을 무시하면 안 된다.
인생을 잘 살려면, 1번과 3번을 잘하는 것보다, 2번을 멀리 하고, 4번을 무시하지 않는 것이다. 올해 1년은 3번과 4번을 잘 채워주고 싶었던 것이다. 그것이 연구년의 가치일 것이다. 그리고, 나는 새로운 루틴을 찾고 싶다. 그런데, 이 연구실 잘 온 것 같다.
오늘 이 연구실이 110년이 된 기념일이란다. 그래서 이 연구실을 지나간 OB들이 다 모였단다. (물론 나는 초대받지 않았다). 많이 부러웠다. 우리 한국은 이름이 '연구실'이지, 서울대 조차도 교수가 퇴직하면 전통이 모두 사라진다. 후임 교수는 전임 교수의 역사를 이어받는 것이 아니고, 그 공간과 역할을 대체할 뿐이다. 우리는 '대체'하지만, 일본은 '위임' 받는다. 그래서 문화가 형성되고 연구를 지속하기 위한 열정이 꾸준히 남는다.
우리나라를 잘 돌아보자. 왜 '열정'이 없을까. 내가 잘해서 무엇을 바라게 될까. 아이를 낳아도 다 남이라고 이야기한다. 그런데 다른 나라에서는 굳이 그런 말을 하는 사람들을 만나보지 못했다. 회사를 다녀도 퇴직하면 찾는 이 없다고 한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퇴직을 해도 과거의 동료를 찾고 회포를 풀면서 좋은 기억을 좇는다.
인생을 왜 살까. 돈만 벌다가 그 돈도 어떻게 할지 몰라서 가족들과 분쟁이 일어나기 일쑤고, 자신이 받은 혜택을 권리화하여 주장하면서, 이해집단 사이에 해괴한 논리로 세상에 염증을 느끼게 하기 일쑤다. 그런 시대가 있는 것 같다. 영국의 산업혁명 당시의 '올리버 트위스트'를 봐도 그렇고, 일본의 '인간 실격'을 봐도 그렇다. 우리도 그런 시대이겠지. 그렇다면, '시대정신'을 잊지 않고 다음 시대를 잘 설계하고 기다려야겠지.
난 내 자식들이 남이 되는 것 싫다. 그렇다고 내가 준 만원이 일억이 되어 돌아오기를 바라는 그런 부모도 싫다. 그들이 사회에 나갈 수 있는 가치를 주었고, 내가 힘없어서 아이처럼 되었을 때, 내가 자식들을 돌봐주었던 것 기억을 해 주길 바랄 뿐이다. 자식은 내 사랑을 받고 크고 난 그 큰 자식들이 성공하면 하게 될 '작은 이별'을 기대하지만, 자식이 날 돌봐줄 때에는 '영원한 이별'을 맞이하겠지. 자식의 마음이 더 아플 것이다.
아내와 차를 타고 가다가, 서울의 아파트를 보면서, '저건 돈의 무덤이야. 돈이 저기로 들어가면 다시 안 나오니 그게 무덤이지. 그런데 난 부끄러워. 내가 세상에 나와서 저 아파트 한 채보다 더 나은 것을 한 것이 있는가? 내가 공부한다고 세상에 무엇을 했단 말이지? 저 아파트 한 채를 사기 위하여 노력한 사람보다 내가 나은 게 무엇인가'라는 말을 한 적이 있다.
그래서, 나는 부끄럽다. 가진 재주가 참 없는데 공부는 다른 것보다 쉬웠다. 세상에 가장 어려운 게 노래와 춤을 잘하는 것이고, 운동 잘하는 것이다. 그런데 남들보다 좀 더 잘 외우고 이해력이 빨라서 공부를 좀 했을 뿐이다. 경쟁도 더 적고 사회에서 수요도 더 많았고(지금은 그렇지도 않지만). 그래서, 지난 10년간 공부도 제대로 못한 터라 다시 공부를 하러 왔다. 정말 공부하는 연구실에 와서 작은 책상에 앉아 하루 종일 논문을 다시 뒤져 읽기 시작했다. 그냥 고전적이고 가장 전통적인 방식으로.
세상에 기여하는 방식에는 다양한 것이 있겠지만, 내가 가진 것이 없이 의욕으로 나서서 무엇을 얼마나 하고 누가 얼마나 감사하겠는가. 밥 한 공기를 먹으면서 이 일을 열심히 해 준 사람들에게 감사하는 말을 들었던 곳도 필리핀이었기 때문에 거기에 있는 국제벼연구소에서 거의 10년을 살았다. 쌀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정서로 유명한 곳이 일본이기에 일본에서 1년을 살아보기로 했다.
아참, 일본에 와서 왜 쌀이 이렇게 힘든 것일까 하는 것을 동료의 말로부터 느낄 수 있었다. 쌀을 너무 사랑하는 것 같다. 그 사랑이 플라토닉 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부모와 조상에 대한 사랑 같다. 헤어지기 어려운 부모를 대하는 것 같다. 내가 우리나라 농부들이 전부 사라질 것이고 결국 크게 변할 거야. 쌀산업도 거기에 맞춰 변해야 하지 않겠어 하니, 그 말에 눈동자가 동의하지 않았다. 왜 그랬을까. '보통 사람들이 정말 좋은 쌀만 먹으려고 해'라는 말에서 큰 교훈을 얻었다. 가장 좋은 쌀을 먹으려는 강한 심리가 뿌리 박혀 있는 곳, 그것은 어쩌면 가장 훌륭한 부모로부터 받은 자부심을 말하는 것 같았다.
사랑하는 부모도 죽어서 헤어지겠지만, 어찌 그 부모가 죽을 것을 미리 준비한단 말인가. 어떤 것은 사라지고 헤어지고 나서야 할 수 있는 것도 있지 않은가 했다. 보통 사람들이 그런 마음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돈은 그런 마음이 없을 것이다. 우리는 다르게 행동할 것 같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