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가 들렸다고나 할까...
일단 대문부터 설명하고 시작하자.
저 사진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사진 중 하나이다. 한 명 한 명의 이름이 다 소중하다.
브런치에 글을 쓰면서, 내가 기억해야 할 사람들이 내가 연구하는 것보다 더 중요하다는 것을 새삼 깨닫는다.
공부하고 생각하는 순간순간에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들이었다.
그들의 삶 하나하나가 내 세포 안에 기억되길 바란다.
사진에는 내 팀원들이 있다. 당시 한국에서 방문연구원으로 왔던 연구사도 있었고, 지금은 방글라데시에서 중요한 연구관이 된 친구도 이 사진에 있다.
난 내가 은퇴할 시점에 돌아보고 여러 나라에 들러 친구들을 만나서, 그간 살았던 이야기도 나눌 것이다.
한번 나열해 보자. 내 친구들이 지금 어디 어디 사나?
필리핀, 인도, 스리랑카, 인도네시아, 방글라데시, 베트남, 태국,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미얀마, 라오스, 캄보디아, 네팔, 부탄, 중국, 일본, 타이완, 미국, 캐나다, 호주, 독일,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 네덜란드, 벨기에, 케냐, 탄자니아, 에티오피아, 부룬디, 마다가스카르, 세네갈, 가나, 세인트빈센트앤그라나딘, 에콰도르, 콜롬비아가 있구나.
살아생전에 중동지역과 아프리카를 방문해 보고 싶다. 아직까지 직접 가 본 적이 없다. 그리고, 구공산권 지역과 더 어려운 사람들이 사는 지역도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다.
AFSTRI라는 조직의 회장이 되었던 적이 있다. 나는 성격이 나서서 감투를 즐기기를 좋아하지 않는다.
내가 박사 후 연구원으로 있던 IRRI에는 각 나라에서 온 포닥, 학생, 단기 연수원 등의 모임이 있는데, AFSTRI라고 불렀다. 단짝으로 다니던 세 명의 여학생들이 있었다. 그중 한 명의 이름만 이야기해 보자.
포르투갈의 왕 이름인 Teresa de Leon이라는 친구는 지금은 California Rice Field Experiment Station에서 일하고 있다. 다른 한 친구인 Maria Gay Carrillo는 신젠타로 가서 일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https://www.ricefarming.com/editors-blog/california-rice-field-day-showcases-varietal-advancements/
이 글을 쓰다가 놀란 것은 Gay가 뭐하나 찾다가 CGIAR 검색을 활용하게 되었는데, 전문가 데이터베이스가 간단하면서도 효율적으로 사람을 찾을 수 있다는 데 놀라웠다. 한번 CGIAR 소속 기관에 속했던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을 중심으로 더 많은 전문가 링크를 찾을 수 있으며, 그 연구자와 논문을 공저한 사람들을 계속 찾아갈 수 있다. 한번 국제기관에 몸 담았던 사람이라면, 누구나 찾아갈 수 있는 시스템이었고, 이들은 관련 연구자들을 계속 트랙킹하고 있었다(내가 세종대에 근무하고 있다는 사실을 이 기관에 통보한 적이 없었다).
https://expertfinder.cgiar.org/search/text/?querytext=joong+hyoun+chin
여하간 이 친구를 포함한 세 명의 친구는 내가 회장으로 출마하기를 며칠 밤을 돌아가면서 전화하였다. 결국 왜 나냐고 물어봤더니, 길에서 만나면 항상 웃는다고 했다. 그랬구나. 내가 항상 웃고 사람들과 만나기를 좋아했구나. 그 말에 나는 무너졌고, 그저 열심히 했다. 그 덕분에 더 많은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갖고 지금도 얼마나 든든한지 모른다.
외국에서 오래 사는 동안 Facebook은 한국에 사는 친구들과 지인들에게 인사를 하고 안부를 묻는 좋은 창구였다. 그리고 사진들을 종종 올려서 저장소로 활용하기도 괜찮았다.
한국에 돌아온 후에도 이제는 반대로 Facebook을 통해 외국의 친구들에게 안부를 전한다. 그냥 내가 사는 이야기, 내가 공부하는 것들,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올리다가 보면, 종종 갑자기 연락이 오곤 한다. 내 성향 자체가 다른 사람의 개인사에 본디 관심이 없고, 그냥 내 이야기나 하는 바라, 그렇게 하고 있다.
지금은 하늘로 떠난 친구 Moni (Namrata Singh)을 잊을 수 없다. 그 친구가 암으로 투병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리고 그녀의 페이스북을 찾아가 봤다. 최근에 내가 그녀와 같은 공간에 있었던 사진을 올려놓았다. 수 천 명의 친구가 있던 그녀의 페이지에는 아직 365명이 있으며, 내 사진에 라이크를 찍은 사람이 5명이다. 그녀가 떠난 후에도 친구들은 추념일이 되면 페북에 메시지와 꽃 아이콘을 놓고 떠난다.
SNS가 없었다면, 이렇게 국경과 시간을 초월하는 우정을 쌓을 수 있었을까? 나뿐만 아니라,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은 각자의 공간에서 가끔 다시 만날 순간들을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지금도 어느 학회장에 가서, 아니 심지어 공항에서 갑자기 만날 때도 있었지만, 바로 어제 만난 사람들 같았다. 나는 SNS를 잘 활용하고 있는 멋진 사람이라고 자찬한다. 오프라인의 추억이 온라인의 공간에서 다시 살아있는 것, 그것이 진정한 '디지로그'(시대의 지성, 이어령이 제시한 아날로그+디지털의 결합) 아닌가?
그러던 와중에 브런치를 만났다. 처음에는 그냥 메시지인가 했다. 스팸인가 하고 무시하기도 했다. 그런데, 내가 종종 읽던 글을 쓰는 분이 계셨다. 그리고 그분이 나를 자기의 브런치에서 소개를 하셨다.
속된 표현으로, '아, 이건 글쓰기 다단계인가 보다' 한다. 누가 글을 쓰면, 그 글을 보고 글을 쓰고 싶다. 그런데, 책을 낼 정도는 아니고, 솔직히 조용히 내 글을 쓰고도 싶고 그랬던 것 아닌가.
난 농학자다. 세상에서 농학자라는 이름을 몇 명이나 알까. 심지어 빌 게이츠는 자신의 저서, '기후재앙을 이기는 방법'이라는 저서에서, 농학자라는 직업을 처음 들었다고 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영웅으로 농학자인 Dr. Normam Borlaug를 이야기하면서, 세계 식량 문제를 이야기하고, 기후변화에서 농업의 역할과 효과에 대하여 강조한다. Bill Gates가 그에 대한 내용을 책에 담은 것은 사실 그의 Gates Notes와 무관하지 않다.
https://www.gatesnotes.com/Books/The-Man-Who-Fed-the-World
그러나, 사람들의 삶에서 농업의 비중이 작아지고, 이제는 고속도로 타고 다니면서, 길 사이에 파묻혀 버린 시골을 생각해 보면, 농학을 연구하는 농학자의 이야기는 한글로 인터넷 검색을 해 봐도 잘 발견되지 않는다.
정보의 홍수에서 묻혀 가는 작은 목소리는 농학이나, 내 삶이나 닮은 점이 많다. 그런데, 한편으로 이런 삶도 이런 공부도 기억되고 남겨져야 하지 않을까. 그러나, 그 어디 거창하게 기록할 것도 아니고, 조금은 내 멋대로 길더라도 정리해 보고 싶었다.
온라인에 자신의 아이디어를 어느 정도의 체계를 갖고 정리하고, 그것을 외부에 공개함으로써, 자신의 생각을 한편 다듬고 정리하는 작업이 효과적인 것이다. Bill Gates 이외에도 최낙언 씨의 자료 보관소도 아주 좋은 예다. 학생들을 위한 강의자료를 만들다가, 식품의 안전성 부분에 대하여 강의할 때, 최고의 자료로 활용할 수 있었다.
http://www.seehint.com/hint.asp
농학을 연구하는 사람들의 수는 상대적으로 적다. 그러다 보니, 학회에서 활동하는 사람 수도 다른 연구 분야보다 작다. 그래서 그런지, 할 일은 많은데, 연구업적이 논문으로 나오는 양도 비교적 적다. 한글로 된 전문 정보는 지나치게 어려워서 일반인들이 접근하기 어렵다. 그렇다고, 너무 쉽게 이야기하면 그저 그런 학문으로 치부되어 별로 대단하지 않게 여겨지거나, 그 학문의 깊이를 일반인들이 가늠하기 어려워 보였다.
그래서, 나는 브런치에 자유로운 글쓰기를 하는 나만의 블로그를 만들기로 했다. 이와 같은 시도는 네이버의 네이버 블로그 '행복한 먹거리'에서 시작되었다. 이 블로그는 나에게 추억거리를 제공한다. 2014년 2월까지 운영하다가 페이스북으로 옮겼다. 그런데, 여기에는 내가 2000년 대 초반, 민간육종 쌀 산업에 대한 회사를 운영했던 기록과 그때의 정보들이 남아 있다. 지금도 종종 그 길을 통해 나에게 질문을 던지는 이메일을 받곤 한다.
https://m.blog.naver.com/PostList.naver?blogId=wlswndgus
이제 그 작업이 가장 쉬운 공간으로 브런치를 잡았다. 생각하고 쓰는 것보다 쓰면서 생각한다. 그리고 그 자유로운 편집 중에 더 많은 공부를 하고 자료를 모은다. 글의 흐름은 다소 독자에게 불편하지만, 그 글을 따라가는 순간 나의 의식의 흐름을 함께 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내가 다시 친구들을 만나게 될 날, 자동번역기를 이용하여, 오래된 세계 여러 곳의 친구들에게 보여 줄 것이다. 이곳에 글을 쓰면서 세상과 소통할 자그마한 채널을 만든 것 같다. 다소 학술적인 이야기를 담았지만, 그것은 이미 다 알려진 사실이다. 내가 연구하는 내용 중에 미처 또는 차마 논문에 담기 쉽지 않았던 것들로 생각의 간격을 채운다. 그 정도일 뿐이다.
목적 없이 쓰는 글이 누군가에게 다가설 수도 있다. 그저 그런 소망이 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