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과 쌀의 향과 색 다양성 - 찰벼는 어떻게 생겨났을까
필리핀에는 Rice Terrace라는 '세계 8대 불가사의'에 속하는 유적이 있습니다. 중국이나 인도네시아 등에도 있어서, 서로 원조 경쟁을 하고 있지만, 가장 먼저 세상에 위대함을 알린 것은 필리핀인들입니다.
Rice Terrace는 2,000년 이상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고 하는데, 해발 1,500m에 이르는 지역에 계단식 논이 펼쳐져 있습니다. 다양한 고도에 좁디좁은 지역으로 차곡차곡 쌓여 있는 논들을 위에서 보자면, 굉장히 놀랍습니다. 가장 놀라운 것은 물을 그 높이까지 끌어올려서 흘리는 노력을 보는 것입니다.
Ifugao 지역의 사람들은 수천 년 동안 독특한 의상과 문화, 생활 습관을 가지고 살았는데, 가장 인상적인 것은 사람이 죽어 들어가 있는 관을 벼랑에 매달아 놓은 것이었습니다. 아마도 이들은 절벽과 경사가 생활의 일부가 아니었나 합니다.
이제는 필리핀도 쌀밥에서 건강과 기능을 생각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제가 기억하기로 Rockefeller 재단에서 지원하는 프로그램이 있었던 것으로 아는데, 필리핀의 Banaue 산에서 오랫동안 자생하던 재래벼 중, 색과 향이 뛰어난 벼들을 모아서, 그것으로 건강기능성 식품 소재로 만들려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보통 이런 쌀들을 Heirloom rice(재래벼)라고 하여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더군요.
지금의 벼들은 생산성과 어느 일정한 관점에서의 품질 수준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실은 좀 더 생산성을 높이는 것이 주요 목적이고, 그것에 다른 요소 - 품질, 병해충 저항성, 가공성, 생태 안정성, 기능성 등-가 보존되는 것으로 현대의 쌀 품종들이 되었다고 보는 것이 이해가 쉽습니다.
우리나라 대부분의 벼 품종은 농촌진흥청에서 주로 개발하였습니다. 400개가 넘는 품종이 공식적으로 개발되었는데, 이 중에는 다수의 '특수미' 또는 '기능성 벼'가 있습니다. 이 벼들 각각에 대한 특성은 아래 국립 식량과학원에서 제공하는 품종 정보를 보면 됩니다.
많은 쌀들은 대부분 수량성과 고식미(밥맛)를 추구하는 품종입니다. 그런데, 2000년대에 이르러, 다양한 용도의 품종이 세상에 선보이고 있습니다. 이 중에서도, 사람들에게 가장 많이 사랑받는 쌀은 전통적으로 찰벼, 흑미 유색미, 그리고 최근에는 향을 내는 쌀인 향미가 시장에서 인기를 얻고 있습니다.
찰벼는 재래벼와 밭벼 등에서 많이 발견되는데, 이것은 일단 wx(waxy)라는 유전자로부터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찰벼가 왜 질감이 다른지에 대한 논문을 하나 링크해 봤습니다.
https://www.sciencedirect.com/science/article/abs/pii/S0308814609011364
한 개의 단순한 유전자 같지만, 이 유전자 자리에 다양한 변이가 생겨서, 벼의 찰기에도 다양한 변화가 있게 됩니다. 최근까지도 재래벼에서 찰성 관련 유전자를 발견하기도 하였습니다. 영어 논문이지만, 훌륭한 논문이어서 그림만 봐도 쌀의 찰성 관련 유전자가 이렇게 다양하게 연구되고 있구나 하고 생각하실 수 있습니다.
https://www.cell.com/molecular-plant/pdf/S1674-2052(19)30197-2.pdf
찰성도 그 찰기에 따라 다양한 유전자들이 더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우리는 보통 그것을 '중간찰'이라고 합니다. 찰기는 쌀에 포함되어 있는 아밀로스의 함량으로 보통 설명됩니다. 쌀의 전분은 아밀로스와 아밀로펙틴이라는 두 개의 전분이 중요합니다. 아래 블로그에서 설명을 잘해 놓으셔서 링크해 봤습니다.
https://m.blog.naver.com/PostView.naver?isHttpsRedirect=true&blogId=ptful&logNo=220555996328
아밀로스 함량이 0%이면 찰벼, 18~20% 정도면 메벼라고 하는데, '중간찰'이라고 하면 그 중간쯤 어딘가에서 아밀로스 함량이 있게 됩니다. 그럼 중간찰은 어떻게 개발되는 것일까요? 아래 국립식량원의 '안백벼'에 대한 설명을 한번 따 봤습니다. 이 벼를 설명하는 이유는 특별한 이유는 없습니다. 설명이 간단하고 읽기 쉽군요.
https://www.nics.go.kr/bbs/view.do?m=&bbsId=paper&bbsSn=6980
찰성을 중간 정도로 나타나게 하는 것은 wx 유전자의 발현력 강도에 따라서도 결정이 되지만, du이라는 유전자에 의해서도 결정이 된다고 보고되었습니다. du유전자는 'dull'이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쌀이 보얗게 반투명이 되게 하는 특성이 있습니다. 보통은 열성 유전자인데, 우성 유전자도 존재합니다. 육종가들은 우성 유전자보다도 열성 유전자를 육종에 활용하길 좋아합니다. 왜냐하면, 우성 유전자는 열성 유전자와 잡종이 되면, 모두 우성의 특성이 나타나서, 겉으로 구별하기 힘들어, 종자관리가 어렵거든요.
중간찰성은 인기가 많습니다. 찹쌀은 밥을 지으면 떡이 됩니다. 그런데, 멥쌀은 덜 부드럽다고 느끼고 특히 동아시아나 캄보디아 같은 동남아시아 국가, 일부 국가에서는 적당한 찰성이 있는 것을 매우 좋아합니다. 더욱이 최근에는 점점 외양은 중장립화되면서도 아밀로스 함량이 10~12% 정도 되는 쌀에 대한 선호도가 올라가고 있습니다. 아래 논문 보면, 유전자 편집으로도 찰성에 변화를 주어, 중간찰을 만들려는 시도가 있습니다. 유전자 편집은 비용이 많이 들고, 관련 유전자를 변형하는 경우 이에 대한 다양한 상업화 장벽이 있는데도, 이런 시도를 할 정도로 상품화 가치가 아주 높은 형질인 것 같습니다.
https://www.sciencedirect.com/science/article/abs/pii/S0981942821001029
이외에도 다양한 전분 돌연변이 유전자들을 활용하여 찰성을 중간 정도로 낮추려고 합니다. floury라는 가루형 분상질 유전자를 활용하거나, dull 유전자를 여러 개 모아서, 다양한 찰성의 품종을 개발하고 있습니다.
https://www.sciencedirect.com/science/article/pii/S0168945214002982
그럼 찹쌀들은 정말 다 아밀로스 함량이 0%일까요? 찰벼의 찰성을 평가하는 것이 정말 어려운 일입니다. 그것을 보통 amylogram이라는 것을 그리는 방식으로 평가하는데, 표준 품종을 대상으로, 표준 그래프를 그려서 측정하는 방식을 취합니다. 문제는 이 방식이 인디카, 찰벼, 특수미 등에 적용하려면, 그때마다 별도의 표준 그래프를 그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양한 찰벼를 평가하는 과정에서, 아밀로그램의 값에 따라 추정하였다가, 우리나라 찹쌀들의 아밀로스 함량이 0%보다 많은 값을 보이는 경우가 많아서 의아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한 표준화 작업이 필요해 보입니다.
우리나라 쌀 자원들의 아밀로스 함량은 그럼 어떻게 분포하고 있을까요? 아래 논문이 좋은 정보를 제공합니다. 찰성이 높은 자원은 상대적으로 적은데, 3만 개가 넘는 자원 중에서 600개 정도가 찰벼이고, 이 중에서 재래벼가 많아 보입니다. 분포들을 보면 대부분 정규분포를 그리는 것으로 보아, 중간형의 아밀로스 함량을 갖는 품종이나 계통이 적잖은 것으로 보이며, 찰벼처럼 쌀이 뽀얗더라도 아밀로스 함량이 어느 정도 나올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https://www.kjpr.kr/articles/pdf/OLZX/kjpr-2019-032-02-2.pdf
아밀로스 함량만으로 메벼, 찰벼 구분을 하는 것은 문제가 있지 않나 싶습니다. 쌀의 이미지도 함께 분석하여 연결해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우리 연구실도 민간육종회사(시드피아)와 협업하여, 세종찰, 서시1호, 서시2호 등을 개발하였습니다. 이 중에서 서시1호는 흑색에 향이 나는 찰벼, 서시2호는 향이 나는 찰벼로 모두 수량성이 좋습니다. 서시1호, 서시2호, 세종찰 등의 민간육성 찰벼도 국립종자원을 통하여, 품종이 출원되고 등록되어야 민간에 보급될 수 있습니다. 품종에 대한 정보는 아래 링크를 통해 알 수 있습니다.
저는 이런 특수한 품종이 물론 다양한 용도로도 활용될 수 있지만, 어린 학생들에게 꿈도 심어 줄 수 있어서 좋다고 생각합니다. 광주의 한 초등학교에서, 교장선생님 송경애 선생님과 미실란 이동현 대표의 자그마한 프로젝트로 '서시1호'가 고사리손에 의해 전부 자란 모습입니다. 이 벼가 자라는 동안, 아이는 얼마나 많은 꿈을 꾸었을까요? 이제 직접 기른 쌀로 밥을 한 공기 먹으면 얼마나 맛있을까요?
고수량 흑향찰벼인 서시1호와 더불어 고품질 찰벼인 세종찰도 한몫하였습니다. 일반 찰벼라 재미는 좀 덜했겠지만, 쌀의 양이 많고 건강하여 좋았다는 것을 아이가 알아주었으면 합니다.
세종찰벼는 설명을 위한 브로셔도 만들어 보고, 상품 패키지도 직접 아내가 도와서 만들어 주기도 하였습니다. 찰벼는 가공의 단계를 거치니, 생산 현장에서 재배 적성이 좋아야 합니다. 찰벼는 수량과 병해충 저항성이 가장 중요합니다. 그리고 중간찰에 가까운 아밀로스 함량과 맛을 해치지 않는 수준에서 영양이 부가되면 더 좋은 것 같습니다.
경기도 농업기술원의 이대형 연구사님의 도움으로 청주도 만들어, 그것을 일반인 시음 평가도 해 보고, 김포의 김포쌀농장 대표이신 이용복 선생님과 시험재배도 하여 도정도 했습니다.
서시1호를 사랑하는 사랑스러운 친구.^^
어제 오후엔 마을학교 현장의 소리 경청을 위한 출장이 있어 나갔는데 아침에 출근하니 업지팀 두 선생님이 어제의 이야기를 전한다.
비가 주룩주룩 쏟아지는데 하교길에 벼를 보러 들른 친구가 한평 논에 우산을 씌워주고 있더란다. 자신은 내리는 비를 맞으며. 빗물이 넘쳐 풍년새우가 한평 논 밖으로 넘쳐흐를까 걱정이 되었다는 것이다.
"빗물에 쓸려 넘쳐흐르지 않게 통에 구멍을 뚫으면 되겠다. 선생님이 해볼 테니 우산은 네가 쓰고 가."
오늘 만난 아이는 이렇게 말했다.
"저는 비를 맞더라도 우산을 씌워두고 갈 생각이었는데 선생님이 드릴로 구멍을 뚫어주셨어요."
이 아이에게 전도된 다른 친구는 또 학원 수업을 마치고 학교에 들러 선생님이 구멍을 잘 뚫어놓았는지 확인하고서야 집에 갔다고 한다.
아, 서시1호는 사랑을 듬뿍 받는 중이다! 서시1호를 너무나도 사랑하는 아이가 무섭다. 한평 논 벼농사를 잘 지어야만 한다.
사진은 지난 금요일, 우렁이와 풍년새우 이삿날.
- 송경애 님의 페이스북에서 따 왔습니다.
좋은 벼는 좋은 사람을 만나, 그 정성을 먹고 자라서, 더 좋은 쌀이 될 것입니다. 찹쌀은 집안에 행사가 있을 때, 또 반가운 사람을 만날 때 주로 먹습니다. 지금은 세상이 좋아져 더 자주 먹을 수 있는 음식이 되었지만, 찹쌀은 그렇게 귀한 것이었죠.
일반 쌀보다 더 잘 쉬기도 하고, 찰기라는 것이 변함 무쌍한 것이라, 그것을 어떻게 가공하느냐에 따라 진가가 달라집니다. 요즘은 쌀빵도, 찰떡 초코파이도 보입니다. 찹쌀은 늘 멥쌀보다 더 사람들의 기호를 자극합니다.
그런데, 쌀이 남아돈다는 말도 있고, 기후변화로 쌀이 부족하다고도 합니다. 일반 멥쌀의 가격이 올라가면, 사람들은 구태여 더 맛있거나 다양한 쌀을 덜 심습니다. 그러나, 세상은 다양한 게 더 멋있고, 우리의 입은 더 즐거워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찹쌀과 같은 특수한 용도의 쌀은 보조금이 아닌 시장에 의하여 더 많은 가격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소비자가 더 찾고 즐거움을 주는 쌀의 세상, 그게 아주 섹시한 쌀이겠지요.
오늘은 여기까지, 다음에는 색과 향의 이야기를 해 보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