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이 날아가지 않게 하는 방법
헬륨 풍선 50개를 이용하여 애리조나 사막을 횡단한 이야기다.
7580m까지 올라갔다니 대단하다.
갑자기 왜 이런 뜬금없는 동영상을 링크했나.
풍선이 어디까지 올라갈까. 현대의 이카루스다. 이카루스는 태양에 너무 많이 다가가자 날개를 연결했던 초(또는 밀랍)가 녹았다고 하는데, 풍선은 너무 많이 올라가면, 외부 기압이 낮아지면서 터지고 만다.
비행기나 로켓은 참 대단하고 우리가 어디까지 갈 수 있을지 모르게 한다. 하늘로 올라갈 때에는 정말 꿈을 싣고 멀리멀리 날아갈 수 있을 것이라 하지만, 막상 파란 하늘을 뚫고 검은 우주로 들어서면 그것은 더 이상 꿈의 세상이 아닌 알 수 없는 심연의 진지한 곳이 되고 만다.
어쩌면 하늘은 높아서뿐만 아니라, 그것이 푸르고, 아니 어쩌면 그 푸른색의 끝에 다다르면, 푸른 마음도 함께 사라질 것을 아는 마음 때문에 꿈의 대상으로서 더 적절한 것 같다.
꿈이 아름다운 것은 이룰 수 없는 것을 향해가면서도 오히려 그것이 불가능한 듯 가능하기 때문이다. 아주 불가능한 것에 도전하는 것은 꿈이 아니라 '야망'이 되는 것이기 때문에, 평범한 순간에 느끼는 행복과 거리가 있는 것 같다.
학교에 있으면서 공부를 하는 직업을 갖고, 꿈을 갖는다.
어릴 적 꿈은 내가 살아가야 할 범주를 정하는 것으로 족하다. 그 꿈이 이루어지려면 목표와 그것을 향하는 꾸준한 노력과 실력이 필요한 것을 깨닫는 것이 학생의 시절이다.
학생 시절을 마치고 세상에 나가면, 꿈과 실력보다 더 중요한 것이 존재하는 것을 깨닫는다. 그것을 보통 우리는 '자원'이라고 부른다.
인적, 물적 자원인데, 결국 사람 관계고 돈 문제, 시간문제다. 이것들에 의하여 꿈은 조절되고, 내 생에서 볼 수 있는 꿈의 크기로 조절된다. 아니, 어떤 경우에는 아예 꿈을 잃거나 그 존재를 저 한쪽에 밀어둔다.
그러나, 사람들은 꿈꾸기를 멈출 수 없다. 비록 그것이 왜곡되어 이상하게 보일 지라도, 그것이 아주 소박한 것이 되어 비정상적인 소비욕으로 나타나더라도, 심지어 다른 사람의 적잖은 희생을 감수하게 해서라도... 꿈과 욕망이 뒤섞이곤 한다.
그런데, 보통 그럭저럭 잘 살았다고 보이는 사람들은 꿈과 야망을 욕망과 구별하고, 적절하게 잘 조정하는 것 같다. 욕망의 덩어리들이 뭉쳐서 서로를 망친다는 것을 너무나도 잘 알거나 경험하였기 때문이다.
요즘 다들 '꿈이 사라졌다'는 말 투성이다. 그런데, 나는 왜 사람들이 온통 '꿈과 행복'에 중독된 것처럼 보일까? 꿈이 욕망으로 치환되었을 뿐, 사람들이 꿈꾸기를 멈춘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누구는 왔던 길을 돌아가면서 복기하는 중에 꿈을 찾으려 하고, 누구는 더 빨리 달려 그 길을 완주하려 한다. 그런데, 이 와중에 모든 사람이 함께 손뼉 치는 꿈이 있다.
그것은 꿈이 눈에 보이고 손에 잡힐 때다.
누군가의 꿈이 다른 사람의 눈에 보이면 사람들은 함께 행복해지고, 자기의 꿈을 생각해 본다. 누군가의 위대한 성취를 보거나 그 혜택을 누리게 되면, 나도 그렇게 살겠다 한다.
공부를 하는 직업을 가진 후, 내가 가진 꿈이 정말 가시적이고 손에 잡히는 것인지 생각해 보게 된다.
어차피 기대수명은 약 80년, 마지막 10년은 말 밖에 못한다면, 실제 생각을 행동으로 옮길 수 있는 시간은 20년 남짓 남았다.
학계에서 프로젝트를 하나 수행하는데 3~5년. 프로젝트 다운 프로젝트 대여섯 개 하면 학자로서의 공식적인 삶은 마치게 된다. 그 대여섯 개도 사실 그만그만한 주제에서 결정된다고 본다면, 1~2개의 약간 다른 생각을 세상에 증명하는 것 정도가 될 것이다.
꿈을 꾸는 것은 끝이 있다. 우리의 삶이 끝이 있기 때문이다.
죽은 이후에는 어떤 것이 있는지를 알 수 없기에 미리 계획할 수도 없다.
어제 인근에 아파트 분양이 나왔는데, 6억이란다. 한 달에 100만 원을 저축하기에도 팍팍한데, 2억을 모으는 데 10년. 그리고 2억을 대출받아 원리금 갚으면 3억으로 가정, 아파트값 2~3억은 올라야 본전이다. 결국 저 6억 중 3억 이상은 은행의 몫이고, 정부의 몫이다.
저것도 잘 생각하고 판단해야 하는 것이고 온통 생각을 집중하면, 내가 꾸는 꿈이 집 사고 죽는 것이 아닌 이상 이상한 모양의 삶이 된다. 세상 아파트의 반 이상이 이래저래 결국 내 것은 아닌 것 같다. 아니, 그나마도 이전하고 상속하고 하면 그것도 반인가? 결국 이런 생각을 해 보면, 내가 무엇을 위해 꿈을 꿔야 하나 다시 생각해 보게 된다.
나의 보스 중에서 존경하던 Dr. Hei Leung은 포닥 시절에 세미나에서 좋은 질문을 했더니, 구태여 돌아보시면서 'You are a thinker.'하시는 것이다. 빅가이에게서의 인정이란 그런 것이었다. 수억 원을 들여도 결국 저 말 한마디를 듣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아니었다. 내가 좋아하고 사랑하고 존경하는 사람으로부터 듣고 싶은 말을 듣는 것.
그렇게 한 발짝 한 발짝 꿈은 커가지만, 결국 그 꿈을 완성하려면 증명하기 위해 살아남아야 한다.
저 풍선의 주인공 블레인은 목표에 다다르자, 스카이다이빙으로 땅에 뛰어내렸다. 그리고 외친 말 '와우!'였다. 무슨 말이 필요했겠나. 꿈을 이룬 자는 자신이 느낀 것을 담담하게 표현할 뿐.
우리 세상에 더 많은 사람들이 꿈을 꾸고, 그 꿈을 인정해 주는 문화가 많으면 좋겠다. 꿈을 성취한 자에게 박수를 치고, 꿈꾸는 자의 성취에 편승하지 말고 각자 자기 꿈을 꾸면 좋겠다.
설익은 꿈에 손뼉 치지 말고, 성취한 꿈에 함께 기뻐하면 좋겠다. 그리고 떨어질 때를 알고 그렇게 좋은 추억을 쌓아가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