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량과 주식의 의미?

쌀에 관심이 많은 농식품 경영학자와 이야기를 한 후 고민이 생겼다

by 진중현


Epi는 생태주의 관점에서 과학을 바라보는 저널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꼭 그런 내용만 실려있는 것 같지는 않다. 그런데, 중간에 아마 편집진이 어려움을 겪거나 했나 보다.


사실 이 저널은 종이질도 별로고 그렇게 화려한 편집을 하지 못한다. 책에 실려진 글들의 분량도 많지 않다.


그러나, 키워드는 시의적절하다. 요즘 가히 '식물'이 대세 키워드다. 왜 그렇게 되었을까? 궁금해서 또 구입했다. 그전에 '식량'이 키워드였는데, 보통 우리가 생각하는 '식량작물'에 대한 이야기가 없다.


이때 알았다. '아, 이 저널은 산업과 과학기술에 관한 저널이 아니구나.'. 이 저널의 편집진은 사람들이 받아들이는 관점에서 키워드를 재정립하기도 한다. 식량을 이야기할 때, 제일 많은 이야기는 돼지고기였다.




오늘 친구인 서울대학교 문정훈 교수와 '식량'과 '주식'의 개념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난 식량은 주로 칼로리 공급 관점에서 봐야 한다고 했다. 문교수는 그렇다면 이미 쌀을 넘어서는 것이 있지 않느냐고 했다. 그래서, 고기도 사료작물의 범주를 통해 투영된다고 했다. 광의와 협의의 식량자급률에 대해서도 논해 보았다.


그랬더니, 소비자 관점에서 '식량'이 어떻게 정의되어 있을까를 이야기했다. 칼로리 관점 이상의 다른 관점이 지배적인 개념이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나는 아직 여기서 물러날 수 없다. 칼로리당 단가를 생각해 보고 싶다. 쌀의 칼로리당 단가는 소고기, 돼지고기로 같은 칼로리를 섭취할 때보다 적어도 수십 배 저렴하다.


물론, 쌀을 생산하는데 공적 자금이 투입되는 것을 고려한다면, 향후 기후변화, 환경 등의 개념을 도입한다면 더욱 복잡해진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곡물로 칼로리를 섭취하는 것을 다른 방식이 더 저렴해질 수는 없다는 것이다.


식량을 바라볼 때, 나는 세 가지 관점을 제시하고 싶다. 하나는 '국가 수준의 식량', 또, '국제적 수준의 식량', 그리고 '소비자 관점의 식량'이다. 첫 번째 관점에서의 식량은 '안정적 생산, 저렴한 생산, 자연보존의 가치적 생산, 도농상생적 가치의 생산' 등을 생각해 본다.


그러나, 25% 내외 수준의 식량자급률을 고려한다면, 75%의 식량 도입분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당연히, 국제적 상황에서의 식량생산 안정성과 국제교역을 고민하게 된다. 식량자급보다는 '식량공급'이라는 개념이 더 실질적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이 관점에서 바라보면, 식량자급률을 꼭 올려야 한다는 논리는 약해진다. 그런데, 다른 한편으로는 최소한 유지해야 할 식량자급률을 파악하는 것이 매우 중요해진다.


마지막으로 소비자들은 이제 식량을 다르게 바라본다. 식량으로 다루어지는 것은 무엇이든지 '소비자 만족'과 '취향'에 대한 개념으로 치환된다. 소비자가 '존재가치'의 주권을 가지고, 식품산업의 패러다임을 쥐고 있는 상황이 강화되었기 때문에, 식량의 범주에 있는 품목은 보다 다양해지고, 그것들의 가치는 여러 가지 관점에서 다각적으로 이해된다.


나는 이 개념들을 모두 통합해서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고민해 본다. 앞의 두 개념은 '지속가능성', 뒤의 개념은 '다양성'? 그런데, 이렇게 딱 부러지게 설명되지는 않는다. '식량작물-식량산업-전체 산업-우리 사회-인류'의 각 관점에서, 지속가능성과 다양성은 여러 가지 형태로 설명되고 맞물리고 다양한 방식으로 보일 것이다.


지속가능성을 인류의 수준에서, 국가의 수준에서, 각 농업경영체의 수준에서 고려해 보면, 다양성에 대하여 다른 인식을 하고 있다. 이 두 개념은 각 단계에 대하여 다른 비중을 가지고 있으며, 그것은 공적 영역과 사유적 영역에서 다르게 판단된다.


나는 식량에 대한 이러한 각 섹터의 관점의 차이로부터, 식량농업에 대한 '지속가능성'과 '다양성'을 확보하기 위한, 각종 과학과 기술체계가 어느 정도 침투할 수 있을까를 생각해 보게 된다. 개별 과학기술이 다 대단한 성능을 가지고 환상적으로 보이지만, 이것은 적용되는 시스템의 범주와 크기, 제도, 규모, 목적에 따라 천차만별일 것이기 때문이다.


육종학자로서 이러한 시스템에 대해 인식을 다잡고, 그다음 단계로 생각을 진행해야 한다고 봤다.




문교수는 또 '주식'이 뭐냐고 했다. 그는 우리나라는 '쌀이 주식'이라는 공식 같은 생각이 있다고 했다. 그런데, '미국은 주식이 있냐'라고 했다. 질문을 이렇게 하면, 당연히 무언가 답을 하게 된다. 나는 '고기?'라고 했지만, 문교수는 '주식이라는 개념은 어떻게 만들어진 것 아니냐'는 생각을 했다.


지금 생각해 보니, 주식은 '식단'이라는 소비 시스템에서 진행되며, 식단이 없는 시스템에서는 주식이 없지 않나 한다. 우리의 전통 식단은 '밥과 국, 부식'이 이루어지는 시스템이고, 먹는 방법도 '밥-국-부식-밥-부식-밥-국-...' 이런 식으로 진행된다. 그러나, 전통 식단이 아닌 요리 중심의 문화는 main dish 조차도 여러 가지 식재료가 복합되어 있다. 그런 부분에서는 '주식'이라는 개념이 있을 수가 없다.


그렇다면, '쌀과 밥은 주식'인가? 나는 일정 수준 맞다고 생각한다. 아직도 50% 이상의 세계 인구가 매일 쌀밥을 먹고 있기 때문에, 주식이라는 개념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의 정확한 통계를 살펴야겠지만, 나와 주변만 해도 적어도 1주일에 5회 이상 매일 밥을 먹고, 쌀은 가장 친숙한 식재료다. 그리고, 우리는 부지불식간에 쌀을 이용한 다양한 식소재를 활용하고 있다. 술과 음료, 당 추출물, 각종 간식, 첨가물 등으로 굉장히 다양하게 쓰인다. 이와 같은 식재료는 소, 돼지, 닭, 콩, 밀가루 정도가 아닐까?


늘 고생하는 것은 데이터다. 어떤 새로운 관점을 가져보려고 하는데, 그에 맞는 데이터는 찾기 힘들다. 데이터를 기반으로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런 논리를 강화할 수 있는 데이터는 늘 부족하다.


다양성에 대한 데이터는 특히 그렇다. 다양성이 우리 식생활과 식량문제에 대하여 얼마나 기여할 수 있을까? 난 그것에 대한 데이터를 어떻게 제시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냥 막연하게 '다양성의 끝장'은 '종자'라고 생각하고 있을 뿐인데, 그것은 많은 농업경영자들과 최근 농정을 하는 중앙과 지방의 관료들, 학자들이 동의하기 때문이다. 이제는 소비자도 '품종'을 찾는 것을 고급스럽게 생각하기 시작했다.


좋은 종자는 좋은 농사의 시작이라는 데에는 동의하는데, 좋은 종자가 얼마나 좋은 농사에 기여할까에 대한 정확한 수치를 잘 못 찾겠다. 대체적인 값이야 이리저리 해서 설명할 수 있겠지만, 농민이 품종을 대체하면 실제로 각 경영 단위 측면, 국가 식량 경제 측면, 소비자가 체감하는 측면에서 얼마나 될까?


다양성은 플랫폼을 더 복잡하게 만들고, 이 체계에서 '정밀함'을 추구하는 것은 더욱더 현실과 거리감을 느끼게 한다. 이 수준에 다다르면, 적용해야 할 기술들이 훨씬 더 간편해져야 하고, 직관적이어야 한다. 종자는 다양성에 대하여 그런 '직관적인' 수준의 기여를 얼마나 또 어떻게 하고 있을까?


각 섹터의 기여의 수준은 얼마이며, 그 기여는 어떻게 확인되고, 그 기여의 성과는 어떻게 분배되어야 할까? 실제로 각 섹터들이 그 공을 어떻게 나눌 수 있을까?


이런 생각에 다다르면, 글로벌 종자기업의 플랫폼 밖에 떠오르지 않는다. 그런데, 이렇게 되면, 현재 우리나라 전체의 농업경영 현실을 볼 때, 점점 더 거리가 멀어지는 것 같아, 이 모순점에 대해 고민하게 된다. 고민의 무한궤도에 돌입하게 하는 주제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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