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와 쌀은 우리나라의 역사를 넘어선 한반도의 역사, 더 나아가 동아시아의 역사와 문화를 형성하는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쌀은 그 단어 의미 그대로 ‘우리가 즐겨먹는 곡물’을 포함하는 의미이기도 하다. 쌀 중에서도 화본과 또는 벼과 식물인 ‘벼’는 우리의 생존의 공간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지면서, 산업과 사회형성, 생태계와 환경에 대한 지배적인 위치를 확보해 왔다. 벼의 산물인 쌀은 세계 인구의 반을 먹여 살리며, 우리나라나 북한에서는 전체 필요 칼로리의 40~50%를 공급하는 주식으로의 위치가 확고하다. 벼와 쌀, 그리고 그것을 생산하는 과정에서 나오는 수십~수백 가지의 다양한 부산물은 우리 사회와 정신문화를 형성하는 데 중요한 자원이 되어 주었다.
벼는 학계에서 인디카와 자포니카로 구분되며, 이러한 구분은 1900년대 초 일본의 학자에 의하여 처음으로 제안되었다. 인디카와 자포니카는 특정 국가의 이름에서 유래된 듯 하나, 사실은 지금도 그렇듯 남아시아와 동남아시아 일대를 이르는 명칭이 ‘인도’, ‘인도네시아’, ‘인도차이나’이듯, 열대지방을 이르는 말이며, 자포니카도 당시 벼 연구를 변변히 하는 나라에 소속된 학자로서, 안타깝게도 우리나라가 국권을 상실한 때인 상황에서, 동아시아를 대표하는 명칭이 되어서였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러한 구분은 처음으로 제안한 학자의 권위이기도 하여, 현재도 앞으로도 계속 활용될 것이다.
그럼 인디카와 자포니카의 구분은 진화적으로 언제부터 나타났을까? 우리는 쌀에서 종자의 폭과 길이의 측면에서 쉽게 구분한다고 생각하지만, 그렇게 호락호락한 이야기가 아니다. 벼과학자들은 이것을 생태형이라고 구분하고, 벼 품종들 간 교잡을 하여 나타나는 잡종화의 정도에 따라, 둘을 구분하는데 더 친숙하다. 몇 가지 중요한 지표들을 활용하여 구분하였으나, 실제로 가장 최근에 활용되는 기술은 DNA 표지 기술이다. 우리는 예전보다 더 명확하게 인디카와 자포니카를 구분하고, 이에 연관된 유전자와 형질들이 어떻게 벼의 진화에 기여하였는지를 이해하기 시작하였다.
충북 청주소로리 볍씨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재배 벼의 흔적으로 알려져 있으며, 필리핀에 소재한 벼 연구의 중심, 국제벼연구소의 박물관 맨 처음 공간에도 그것에 대한 명판이 있다. 이 유적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우리는 우리가 주로 먹고 애용하는 쌀의 가치로서의 벼 이외에도, 기후변화와 식량안보, 지속가능성과 다양성, 기능성, 즐거움 등을 제공하는 다양한 벼를 개발하고 활용할 수도 있다. 그것을 활용하기 위하여, 세계 곳곳의 다양한 벼 유전자원을 활용할 수 있는데, 국제벼연구소에는 세계에서 가장 많은 22만 가지의 벼 종자를 소장하고 있다. 이 중에는 야생벼, 재래벼, 잡초벼 등도 있는데, 특히 우리나라의 고 서학수 교수가 약 30개 국가에서 수집한 4천 점의 잡초벼는 엄청난 양의 자원으로서의 가치가 있다.
야생벼와 재래벼를 연구하는 것은 벼 기원에 관한 정보를 제공할 뿐만 아니라, 우리에게 다양한 중요한 자원으로서의 가치로서도 의미가 있다. 우리는 이 자원들을 활용하여, 기후변화와 기능성 물질 활용 건강기능성 식품, 관상식물로서의 벼 등을 생각해 보고 활용할 수도 있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또 하나의 가치를 생각해 봐야 한다. 시장은 변하였고, 소비자의 쌀에 대한 개념이 변하였다. 식단문화의 ‘주식’으로서의 위치에서, 여러 가지 ‘식품’의 한 소재로 가치 변경이 일어나는 듯하다. 영양공급과 영양균형이 과거에 식량이 갖추어야 할 주요 덕목이었다면, 그 역할의 상당 부분을 돼지고기, 닭고기, 밀 가공식품을 비롯한 다양화된 식소재들이 담당해 주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쌀은 이제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였다. 식량안보 중심 시절의 쌀은 우리 사회에서 묵묵히 평온한 들판에서 풍성하게 알곡을 맺어주는 것이 가장 큰 사명이었다면, 소비자 중심 시대에서 쌀은 소비자들에게 더 많은 매력과 즐거움을 제공하는 주체가 되지 않는 한, 식탁에서도 아주 가끔 불리는 것이 되거나, 다른 요리의 일부로서만 활용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진정한 쌀의 가치는 무엇일까? 영양학적으로도 많은 오해가 있다. 쌀이 어느 특정 질환의 원인이 된다는 말이 있는데, 그것은 탄수화물에 대한 영양학적 오해에서 출발한다. 먹는 것에 대한 신앙 수준의 행동은 늘 소비자에게 피해를 준다. 모든 영양분은 양적으로 균형을 잡는 것이 중요하다고 보면, 오랜 시절 함께한 식소재만큼 검증된 식재료도 없을 것이다.
벼는 우리에게 풍성함의 상징이다. 늘 가을이 되면, ‘올해가 풍년이다. 흉년이다’ 하는 말에, 한해 우리가 얼마나 잘 살았는지, 평안한 지를 가늠한다. 농사를 전혀 짓지 않을 것 같은 뉴스의 아나운서가 하는 말이다. 벼를 심어놓은 논은 환경적으로 생태적으로도 중요한 곳이다. 우리는 그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논에 물을 담아두지 않으면 우리는 기후변화 시대에 더 심할 것으로 예상되는 폭우와 가뭄을 피하기 위해 더 많은 비용을 지불할 것이다.
벼는 농촌의 가치를 벗어나 새로운 가치로 도약하고 있다. 식물은 인기 상품이 되어가고 있는데, 이 모든 식물을 연구할 때 가장 기본이 되는 식물이 벼다. 모든 식물학자는 벼의 연구와 개발 결과를 중시한다. 우리와 가장 오랜 역사를 지녔고, 가장 많은 대륙에서 자라며, 가장 많은 인구를 먹여 살리는 벼, 우리와 가장 많은 공통분모를 가지고 있는 진화 공동체다.
자, 그럼 벼와 쌀은 이제 현대의 우리에게 어떤 모습으로 다가서고 있는가?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첨병으로서의 연구개발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나? 더 맛있고 이쁘고 좋은 쌀은 어떻게 개발되고 그것은 어떻게 소비자에게 다가설 수 있나? 이제 쌀은 개방되고 식량은 자유롭게 수입되는데 우리는 오히려 그것을 기회로 삼을 수 없나? 다양한 질문이 있을 것이다.
벼와 쌀, 그리고 우리의 함께 하는 진화 이야기는 끝이 아니다. 계속되는 이야기다. 우리가 지구에서 사라지더라도 벼는 계속 지구에 살아남아 있을 것이다. 그들은 우리를 먹이고 있는 것뿐이며, 우리는 잠시 그들이 더 잘 번성하도록 돕고 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