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더 자연친화적인 말 아닌가
우리나라는 참으로 작은 나라다.
해남이 멀다 하는데 5시간 열심히 달리면 간다. 밀양도 기차 타고 4시간이면 충분히 간다.
집에서 서울로 출근하는 게 2시간 걸리니, 우리나라는 얼마나 작은 나라인가.
그런데, 살다 보면 너무 아는 사람이 많고, 정말이지 너무나 다른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 너무 어렵다. 사람들 몇몇 만나다 보면 다 그렇고 그런 이야기만 하고, 다 아는 사람 통해 아는 사람뿐이다.
새로운 사람을 만났다 싶었는데, 이미 나를 우회적으로 알고 있는 사람들이다.
15년도 넘은 이야기다. 한 번은 지하철을 탔는데 노약자석에 흑인 두 명이 가운데를 비워 놓고 앉아 있었다. 나는 심정적으로 노약자였다. 그때 얼마나 몸이 지쳐 있었는지.
그런데, 아무도 그 자리에 앉지 않는 것이다. 앞에 계신 노인들도 앉기를 꺼렸다. 사실 지금 같으면, 노약자석에 너희들이 왜 앉아있냐고 했을 테지만, 외국에서 살아본 적이 없고 배짱도 없는 사람으로서, 그런 말이 나올 턱이 없었다.
아무도 앉지 못하는 자리라는 확신이 들었고, 내가 앉았다. 아무도 뭐라 안 했다. 자리를 양보해도 앉지 않을 자리인데 뭐.
그때 생각이 종종 난다. 나는 다름에 대한 거부감이 적은 사람인가 보다 생각했다. 아니, 어쩌면 나도 본능적으로는 마찬가지인데, 그런 다름을 인정해야 '좀 사람답다', 아니면 '좀 인간적이다', '좀 이성적이다'라는 생각이 들었는지도 모른다.
세계의 다양한 음악이 좋고, 결국에는 세계 여러 나라의 친구들을 사귀었다. 늘 다름이 찾아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공통적인 것이 무엇일까 생각해 봤다. 사실, 우리는 공통적인 게 더 많다.
인간이라는 족속은 인간 사이의 차이를 과대 해석하며, 인간과 다른 생물 간의 유사성을 과소평가한다. 그런데, 자연 속에서 또 다양성 속에서 살게 되면, 오히려 인간의 차이가 적다는 것을 깨달으며, 다른 인간을 이해하는 힘이 더 커진다. 반면, 도시 속에서 자연과 멀어지면, 인간 사이의 그 사소한 차이에 집착하게 된다.
우리나라 대부분의 사람들이 도시에 산다. 평생 살아봐야 자연의 이미지가 밥상에 놓인 음식 재료 또는 화분 정도에서 그려지며, 간혹 비가 와서 물이 튀거나 흙이라도 묻게 되면 더럽다고 털기 바쁜 게 도시 속의 사람들이다.
인간이 인간답게 되는 것이 무엇일까. 인간의 '간'은 한자로 '사이 간'이다. 사람이라는 한 단어로는 설명이 되지 않는 의존적인 존재, 그래서 존재가 완성되려면, 사람이 다른 사람과 연결된 '연결성'이 완성되어야 '인간'이 되는 것이라고 한다.
그런데, 사실 앞의 이야기대로 다시 고찰해 보면, '인간'은 참 도시적인 표현이다(물론, 단지 Homo sapiens sapiens를 번역하면 인간이지만), 반면 '사람'은 어느 별에 살든 가장 고등화된 존재는 다 '사람'이라고 한다. 다시 말해, 인간은 지구에 살고 있는 사람일 뿐이다.
사람은 '삶'과 어원이 같다고 한다. 사람은 사는 것 자체에 중점을 둔 단어인데, 인간은 '사회화'에 더 초점을 둔 단어 같다.
나는 사람이고 싶은가, 인간이고 싶은가. 이것은 어쩌면, 내가 어느 별에서 살든, 어느 땅에서 살든, 삶 그 자체를 어떻게 받아들이는가에 달려 있다고 본다.
다양성을 받아들이고 너무 작은 차이에 몰입하지 않는 생각을 가진 것은 아마도 '사람'일 듯하다. 우리는 지구에 사는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