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자는 생명이고 육종학이 사라지는 것은 생명의 불이 꺼지는 것이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12월 크리스마스 전후 시즌으로 해서, 1월 초중순까지의 시간은 대부분 사람에게 축복과 반성, 그리고 계획의 시간이다.
당연히 그 시간만큼은 좋은 생각을 많이 하고 충분히 휴식도 취하는 때가 되어야 하는 것이겠지 한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그 기간에도 많은 일들을 한다. 학교 방학도 1월 초에나 하는 초중등학교도 그렇고, 연말이 되어 12월 31일까지도 수많은 전화를 하는 사람들을 보게 된다.
자영업이 아닌 기관과 조직 소속의 봉급쟁이들의 삶이다.
그것은 비단 양질의 직장으로 알려져 있는 조직이라고 다르지 않다. 오히려, 더하다는 생각이 든다. 모 기관에서 12월 30-31일에도 각종 업무의 종결을 위하여 확인 전화를 해 대고, 수많은 평가와 연차보고를 위하여 바빠 보인다.
절대로 공무원이나 대기업 직원이 만만한 직업이 아니고, 그것은 오히려 어느 정도 자리 잡은 자영업에서나 가능한 꿈이다.
'워라벨'
워라벨은 누구에게 주어지는 것일까? 철이 든 사람만이 할 수 있는 대답이다. 언제부터인가 '권리'를 유독 강조하는 사회가 되다 보니, 학교에서도 공부의 목적이 학점 취득으로, 학문의 목적이 SCI IF 올리는 것으로 되어 버렸다. 비교적 간단하게 정량화된 목적만 달성하면 권리를 주장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될 수 있다. 다른 분야는 말할 것도 없고. 그런 세상에서 '워라벨'이 학교에서 학생의 권리를 상징하는 말이 되어 버렸다.
며칠 전, 우리 대학원 박사과정 말년 차와 새로 진입한 포닥 앞에서, 이제 박사를 취득할 예정이고, 이제 막 했으니, 한 가지 말하고 싶다고 했다. "학자가 스스로 학문적 성취를 위하여 자기 한계까지 스스로를 밀어붙이지 못한다면 그건 참 측은하다"라고 했다.
늘 그럴 필요는 없지만, 끊임없이 허들을 넘어야 하고, 심지어 허들을 자기 스스로 만들어 넘어야 하는 학자의 삶이란 당연히 그런 것이고, 결승점까지 포기하지 말고 가야 하는 것이라는 말이다.
듣고 있던 한 학생의 눈빛이 달라지는 것을 보았다. 가끔, 자신들이 열심히 하는데도 언제까지 그리 해야 하지 또는 왜 이렇게 힘들지 한다. 선생은 위로할 뿐이고 함께 고민할 뿐이다. 자기 스스로 목표를 설정하고 방법을 찾아가기 위하여, 심지어 경제적 신체적 고통을 감수하더라도 격려하며 공감할 뿐이다.
그러고 보니, 학자의 삶이란 그런 면에서는 참 인기 없는 일일 뿐이다.(실은 자기 스스로는 매우 만족하는 것이기도 하다.)
속칭 비인기 분야의 학문은 고사하고 있다. 대학원생 씨가 마르는 게 아닌가 한다. 분류부터 '비인기' 아닌가? 어떤 학문이 비인기 학문인가. 당연히 취직이 어렵거나, 취직을 해도 대우가 시원찮은 분야일 것이다. 학문의 수준이나 속성과는 전혀 무관하다. 아니, 오히려 공부는 어려운데 그 보상이 충분치 않을 때 그럴 것이다.
육종학은 농학 중에서도 난이도가 매우 높고, 이론과 실무를 겸해야 가능한 학문이라, 지경에 오르기도 힘들고, 소위 교수니 연구관이니 해도, 그 학문의 수준을 제대로 발휘하는 사람이 드물다. 늘 겸손한 자세를 강조하는 데 까닭이 있다.
무언가를 개발했다 하고 가끔 홍보를 하지만, 그것은 프로젝트 때문이거나 다른 이유 때문이지, 정작 육종가나 육종학자는 늘 불만 투성이다. 사실 그 불만이 없다면 육종학자나 육종가의 생명은 끝났다고 봐도 된다.
세상에서 꼭 필요한 자원은 결국 땅을 파거나, 태양에너지에서 얻는 것뿐이다(우주에서 오는 것은 '돈룩업'을 보고는.... 안습). 육종학자와 육종가는 생물자원을 발굴한다. 생물자원의 효용성을 유전학과 생리학의 원리로 설명되지도 않는 것에서도 찾아내기도 한다.
육종가의 수는 워낙 적기도 하지만, (소위) 인정받는 수준에 오르기에도 수십 년의 시간이 필요하다. 'AI로 육종을 대체한다?' 소가 웃을 일이다. 육종은 심지어 과학만으로 되어 있지도 않다. 과학은 거들뿐이다.
이제 대학에서 '육종학'은 전멸할지도 모른다. 내가 돌아보면 대학에 '육종학' 연구실은 거의 문을 닫았거나 다른 일을 하고 있다. 기관에서도 육종학을 포기하고 있다. 원예작물은 민간기업에서 육종을 하는데, 좀 심하게 말하자면 고졸 데려다가 꾸준히 자체적으로 키우는 것이 나을 수도 있다. 그런데, 육종학을 가르치는 대학이 없어지고 있으니 난감할 따름이다.
종자를 개발하려면, 많은 농업생산물을 생산하는 시스템과 접목되어 있어야 한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폐쇄적인 농산물 소비구조를 가지고 있어서, 잠재 소비량이 너무 적다. 그것을 바라보고 종자를 개발하려니, 시장 성장 능력이 부족하여, 종자의 가치가 상대적으로 작다. 그러다가 보니, 종자의 다양성도 적어지고, 당연히 품종을 개발하는 육종가의 필요성이 부족하다.
정책은 늘 종자회사를 찾고, 종자를 개발해야 한다고 한다. 시장에 다양성을 확보하자고 한다. 그러나, 시장 성장 없는 다양성은 불가능하다.
육종가가 돈을 버는 유일한 방법이 무엇일까? 사실 육종가는 현재로서 큰돈을 벌기는 어렵고 당연히 관에 종속이 되어 월급이나 약간의 인센티브를 받는 편이 낫다. 그러나, 방법은 있다. 종자를 수출하는 것이다.
'골든시드 프로젝트' 등이 그것을 촉진하기 위한 방법이었다. 그러나, 종자를 수출하기 위한 기업을 우선적으로 육성하고, 해외에서 종자를 구매하고 배급하는 체계를 지원하는 사업으로서는 부족했다. 결국 현재 이 프로젝트의 후속사업은 지원을 얻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종자는 식물의 씨앗이다. 식물은 생물이고 환경의 영향을 크게 받는다. 생물을 구성하는 어떤 유전자도 환경과 상호작용을 한다. 따라서, 육종가가 개발하는 종자도 어느 지역에서나 적합한 것이 아니고, 수입과 수출을 한다고 해도 반드시 환경과의 상호작용 평가를 해야 한다. 이것은 과학적으로 굉장히 풀어내기 어려운 부분이다.
최근 '디지털 트윈' 등의 개념을 접목하여, 현지 상황을 가상으로 만들어 종자를 평가하는 시스템을 개발해 보자는 사람들도 있다. 그런데, 이를 위한 기본 데이터도 부족한 것은 사실이나, 나는 여전히 큰 부분을 빼먹었다고 생각한다. 생명을 다루는 일이 가상현실에서 이루어지기에는 멀었다. 우선 제조업이나 의료에서 그게 완전히 가능한지를 보여달라. 시스템 개발이 어찌 돈이 되지 않는 농업, 그것도 종자개발에서 먼저 선도할 수 있을까?
탁월한 노력으로 엄청나게 훌륭한 유전자를 발견한 사람도 그것을 훌륭한 종자로 개발할 방법이 국내에는 없다. GMO 논쟁이 극심하여 시장이 형성되기 어렵기 때문이다. 결국, 그렇게 발굴된 좋은 유전자도 외국 글로벌 기업에서 구입하면, 결국 품종화 단계를 거쳐서 국내에 역수입될 것이다. 국가적으로 보면 산업재산권의 구조가 복잡해지고 그게 꼭 실익이 있을까 고민해 본다.
결국, 가장 좋은 방법은 우리 자본으로, 해외 농업시장을 개척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인데, 이미 장악력이 좋은 기업을 인수하거나, 꾸준히 맨땅에 헤딩을 해 가면서 만들어가는 수준이라도 도전을 하지 않을 수 없다. 국내에 농업회사를 더 많이 육성하는 것은 국내 상황을 볼 때 얼마나 낙관적인지는 잘 모르겠다.
이미 농식품산업 무역체계가 글로벌 자유무역체계에서 예외가 아닌 이상, 우리가 더 나은 상황에 있는 것부터 해외 유통시장과 생산시장에 접근 능력을 더 키워야 한다. 그렇게 하면서, 첨단 종자 개발 시스템을 접목해야 한다. 난 이 일을 민간이 주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시장을 확장시키는 것은 민간의 영역이며, 정책적 유연성을 키워주는 것이 정부의 영역이라고 생각한다.
이 모든 것들이 다 원활히 이루어져야, 우수한 종자를 제값에 받을 방법이 생기며, 그 종자를 개발하는 것을 가르칠 제자가 나오며, 그래야 '육종학'이 생명력을 얻는다.
중국에서 잡종 벼를 개발한 육종가가 연 수십억 원의 임금을 받고, 일본에서 양파 육종가가 몇십억 원에 트레이딩 되었다는 소식을 듣곤 했다. 미국과 유럽의 육종가들은 포장과 들판을 누비고 다니면서도, 생명공학의 최첨단을 섭렵하며, 생물산업계의 '공장장'으로 활약하고, '대체 불가능'한 직업군으로 자리를 잡고 있다.
법관은 적으나 법률가는 무수히 많은 것처럼, 육종가는 적으나 육종학자는 무수히 많아야 한다. 학교에서 기관에서 기업에서 육종가의 필요가 적어진다고 육종학을 허투루 가르쳐서도 안된다.
전통육종학 체계는 완성된 학문이다. 그래서 모두들 분자육종학이라는 DNA 중심의 육종학으로 발전방향을 바꿨다. 그런데, 식물학과 작물학의 구별이 모호해지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20여 년 조금 공부하고 이제 조금씩 내 이름을 팔기 시작하는 용렬한 생각으로 볼 때, '전통육종학'은 뼈대이고, '분자육종학'은 근육으로 보인다. 근육이 뼈대 없이 어찌 역할을 할까.
학교에서 '전통육종학'을 당당히 가르칠 수 있기를 바라고, 그 육종학이 인기 학문이 되길 바랄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