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 눈꺼풀이 한 2주째 계속 심하게 떨린다. 마그네슘 영양제를 먹어도 나아지질 않는데, 신경이 예민해졌거나 눈을 많이 써서 그렇거나 아니면 카페인 중독? 어찌 되었든 그 떨림이 더 심해지는데 휴식을 취할 동기가 마련되었다. 밤에 넷플릭스를 보다가 자는데 종종 켜 놓은 채 자는 것이 문제가 될까, 하여튼.
음반을 모으는 것이 참 재미없어졌다고 생각했었다. 향뮤직이 온라인 매장을 안 한다고 선언해서였다. 정말로 음반의 수가 확 줄었다. 그런데 영업을 연장한다고 하고, 모바일로 들어가면 예전처럼 주문이 가능하다. 잘 모르지만, 몇 장을 주문 넣고 계좌이체로 돈을 보냈다. (최종 공지는 2022년인데, 한번 확인코자 시도를...)
어제 규담이가 여자 친구를 데리고 갑자기 집에 방문했다. 결혼식장에 하객으로 다녀오는 길인데, 아마 전에, 둘이 공항에서 돌아오는 도중, 차 사고를 당했을 때 우연히 마주치게 되었지만 경황이 없어서 인사를 못한 것이 마음에 걸렸나 한다.
외국인이어서 어설픈 한국말이라도 이야기를 하려고 하길래, 그냥 영어로 하라고 했고, 서로 편하게 대화가 가능했다. 내가 음악을 좋아하는 것이 인상적이었는지, 왜 음악을 좋아하냐고 물었다. 그런데, 다른 사람에게 대답할 때보다 더 솔직하고 편한 대답을 해야 할 것 같았다.
글쎄, 음악을 좋아하게 된 것은, 아마도 '중독'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합법적인 중독이잖아? 그렇게 대답했더니, 수긍이 된단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최근에 자신의 클래식 레코드 수집반에 대한 작가로서의 감상문 모음을 내었다. 좀 아쉽다면 음반을 들을 수 있는 QR이라도 넣어주지 생각했다가, 이 양반은 그럴 인물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애써서 차곡차곡 자신이 컬렉션을 하거나, 음반을 하나하나 닦는 즐거움에 대한 고생을 사서 할 사람이니까.
전형적인 '중독자'의 행태다. 나도 그런 중독 자니까 잘 이해된다.
사고 싶은 음반이 있으면 하나하나 구입을 하는데, 늘 지출 면에서 다른 것들과의 기회비용에 대한 '내적 갈등'을 한다. 이때, 중독자의 행동이 결정된다. 생활비냐, 음반이냐.
간혹 누군가가 이상한 물건을 사서 자랑을 한다. 그러면 이런 생각이 든다. '아니, 저것 살 돈이면 음반이 대체 몇 장이냐?'
종종 아침에 일어나 밤에 꿈에서 보았던 레코드샵이 생각나고, 그렇게 찾아 헤매던 음반들이 가득 벽을 채운 독일의 LP 샵을 본 것이 유럽 여행 중 가장 좋은 순간이었다면, 일본의 타워레코드를 일부러 찾아간 것을 일본 여행의 즐거운 순간으로 기억한다면, 일단 1차 합격 정도는 될 것이다.
음반을 어떻게 알고 사냐는 질문에, '그냥 산다. 느낌이 온다'라고 했다. 손가락 두 개로 새로 입고된 음반들을 빠르게 뒤적이며, 손가락과 느낌, 그리고 새 주인의 시선과 궁합이 맞아떨어지는 음반들을 취하는 행위의 짜릿함을 설명할 수 있다면, 2차 합격일 것이다.
구태여 왜 요즘 같은 세상에 CD와 LP, 카세트를 올리느냐 하는 질문에, 오히려 '그 올리는 즐거움'을 설명할 수 있으면, 또, 음반을 하나하나 손질하고 닦아서 다시 넣을 수 있다면, 그리고 음반의 위치와 종류를 시간이 날 때마다 재정리할 수 있다면, 최종 합격이 될 것이다.
음반을 수집하는 젊은 시절의 돈은 없지만 불이 붙은 컬렉터에게 절대 해서는 안될 말이 좋은 오디오 예찬일 것이다. 오디오광이 되어서는 좋은 음반을 살 수 없으니까. 가장 큰 기회비용인 셈이다. 한편, 최고의 선물은 음반장이다. 음반 사느라 정리할 음반장을 사지 못하니.
음반 수집을 하다가 조금 불이 꺼질 때쯤, 심난한 벽과 방을 정리하느라 몇 개의 음반장을 맞추고 평생을 가자고 하는 게 음반 컬렉터이리라.
음반 컬렉터에게 가장 이쁜 자식은 같이 음반을 꺼내 봐 주는 자식이며, 가장 좋은 친구는 희귀 음반의 가치를 알아주는 친구다.
우리나라 90년대 학번, 70년대 생의 음반광에도 두 가지가 있다. 대를 이어 음반을 수집하는 집 출신, 금수저라고도 할 수 있는데, 일찍이 클래식부터 체계적인 음반을 수집하고, 아무것도 모르다가 음반에 빠진 컬렉터들은 보통 팝과 락부터 수집한다.
클래식은 오래될수록 귀한 음반이기에, 수집이 왕성해져 종종 음반을 정리할 때 오히려 오래된 음반을 소장하지만, 나처럼 흙수저 수집가는 오히려 처음에 모았던 많은 음반들을 주거나 팔거나 버렸었다. 아직 뭐가 뭔지 모르고 산 음반들에 대한 한 때의 부끄러움 때문에?
무라카미 하루키는 재즈와 클래식 음반을 다수 사 모으면서, 가장 좋은 음반이 무엇인가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한다. 느낌이 좋아 사고 들어보니 괜찮아서 음반장에 꽂히고, 두고두고 종종 생각나는 음반이면 되는 것이다.
몇 년 전부터 중학교 시절 들었던 유로댄스 그룹인 모던토킹의 LP를 중고로 다시 구입하면서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우리 반에서 내가 제일 먼저 A-ha를 친구들에게 소개해 줬는데, 집이 부유하지 못해 카세트테이프 밖에 없는 내 앞에서, 며칠 뒤 LP를 사서 자랑하던 친구 녀석에게 분노했던 기억이 난다.
음반 수집 세계에도 부익부 빈익빈이 있고, 경제가 있다. 당연히 희귀반은 재발매 시점까지는 엄청난 가격이 되고, 어둠의 경로와 언더그라운드 정보망을 통해, 구전으로 그 위대함이 나타나곤 했다.
이 모든 낭만과 생각들이 디지털의 등장과 함께 사라졌다. 음원이 물질이라면, 풍부하고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음원들이 오히려 숨은 명작과 설레는 데이트를 할 수 있는 수많은 기회를 잃게 만들었다.
무엇인가를 수집하는 것은 지성, 감성, 그리고 중독이 뭉쳐진 진화의 산물이고, 문명은 결국 어떤 천재적 수집가들의 집착의 산물이다.
* 아래는 음반수집에 대한 기능적인 답변을 한 글이다. 대부분 동의하는데, 특히 음악가들을 후원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며, 모든 장르의 음악이 성장할 수 있게 하고, 창작을 고무한다는 측면에서 가장 좋다고 생각한다.
https://temple-resistance.tistory.com/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