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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지 Jun 24. 2020

바이러스를 만난 ‘시한부’ 유럽 생활

코로나와 동거 중인 워킹홀리데이 일상 이야기

퉁! 더블린에 온 걸 환영해!


준비해둔 서류를 들고 떨리는 마음으로 입국 심사대 앞에 섰다. 긴장됐던 마음과는 다르게 부드러운 눈빛으로 비자 승인서를 보던 직원은 더블린에서 살 거냐는 간단한 질문과 함께 손바닥만 한 도장을 내 여권에 찍어주었다.


워킹홀리데이 비자 1년을 받아 떨리는 마음으로 아일랜드에 왔다. 새로운 환경에 대한 기대감과 동시에 두려움도 컸지만 앞으로 보낼 1년을 알차고 후회 없이 보내야겠다는 생각에 부풀어있었다. 그리고 대학 생활 동안 꿈꿔왔던 유럽여행을 계획하면서 앞으로 가야 할 나라들을 체크하고 정보가 있다면 꾸준히 기록해두었다.


여권에 적힌 거주 승인 기간은 2020년 9월 00일. 나는 그 안에 목표했던 모든 일을 해내고 싶었다.


욕심이 많던 나는 이것저것 계획을 세웠다. 평생 다시없을 1년을 어떻게 후회 없이 보낼까 고민했고 계획했다. 계획대로 원하던 곳에서 일을 했고, 홀리데이를 받아 연말연초에 성공적인 첫 유럽여행을 마치고 1월에 돌아왔다. 그리고 오자마자 나는 다음 홀리데이를 기약하며 더 색다른 곳에 가기로 다짐했고 앞으로 가야 할 곳도 즐겨할 것도 많다며 행복한 꿈에서 허우적거렸다. 1월 말부터 뉴스 기사에서 신종 바이러스가 퍼지고 있다고 소식이 들려왔지만 크게 상관하지 않았다. 내가 그동안 경험했던 바이러스들(신종플루, 메르스)는 크게 실감하지 못하고 조용히 지나갔기 때문이다. 이번 바이러스도 마찬가지로 큰 피해 없이 잘 흘러갈 것이라고 확신했다. 그리고 몇 개월 후에 떠나는 파리행 티켓을 구입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흘러오는 뉴스를 통해 본 전 세계 현황은 충격적이었다. 한국에 있는 것보다는 이 시기에 해외에 있는 게 다행일 정도라는 말을 들었고 주변에서 물어오는 질문들도 코로나 이야기밖에 없었다. “한국은 확진자 8000명이 넘었던데, 가족들은 안전해?”


한국과는 다르게 아일랜드는 아직 확진자가 50명이 채 되지 않아서 여느 때처럼 평범하게 일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나온 손님의 의미심장한 말과 함께 뉴스 속보를 들었다.

이제 한동안 못 만날 텐데 정말로 너희 음식이 그리울 거야! 건강 조심해!


응?/ 뭐라고? 무슨 말이야?


오늘 저녁 6시부터 모든 기관, 학교들, 상점들은 문을 닫아야 합니다.


비자를 6개월 남긴 3월 12일, 코로나로 인해 모든 문이 닫혔고, 나는 한순간에 일자리를 잃었다. 갑작스럽게 닥친 상황에서 멍하게 시간을 보냈고, 상황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언제 문을 다시 열지도 모르는 상황 속에서 마음의 중심을 잡기가 매우 어려웠다.


그로부터 1주일 후, 한국인뿐만 아니라 모든 외국인들은 성급히 짐을 싸서 아일랜드를 떠나기 시작했다.

원래도 친구는 많이 없었지만 그 얼마 안 되는 친구와 동료들은 모두 떠났다. 믿을만한 의료체계도, 의지할 가족도 없는 환경에서 나는 홀로 남았다.


... 나 정말 이렇게 떠나야만 하는 건가?



**전 세계 모든 워홀러들이 매우 힘들었던 시기를 겪었고, 지금도 겪고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떠나야만 했던 사람도, 남기로 결정한 사람도 쉬운 결정은 아니었을 것이다. 분명한 것은 각자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한 선택이었다는 것이다. 나는 수많은 고민 끝에 여기 남기로 결정했으며 다음엔 왜 그런 결정을 내리게 된 것인지 기억을 되짚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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