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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xx Jul 19. 2016

4. 런던에서의 마지막

미련 없이 걸어 다닌 런던 

영국에 있던 날 중 가장 피곤했던 날이었다.

아침에 일어나니 몸이 천근만근이었다. 유럽여행을 하는 내내 마냥 좋은 날이었던 것은 아니었다. 

휴양을 바라고 간 여행이 아니니  여행의 대부분의 날들은 피곤하고 지치는 날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자기 전 일기를 쓰는 순간엔 다시 오지 못할 내 인생의 소중한 날들이라는 생각에 마음이 벅찼다. 


영국에서의 마지막 날은 여유롭게 특별한 계획 없이 돌아다녔다. 여행 계획을 세울 때 각 나라마다 하루는 꼭 자유롭게 기분 내키는 대로 다니는 것을 원칙으로 삼았다. 몸도 쉬고 마지막일 도시를 여행자의 마음으로 둘러보기 위해서였다.


하루의 기분이 날씨에 참 많은 영향을 받는 나여서 영국 날씨에 걱정을 많이 했는데 마지막 날도 역시 맑음이었다.

무작정 걸었다.

버킹엄을 지나쳐 걸었다.

헨젤과 그레텔처럼 지나온 곳을 표시하는 사진을 찍었다.

유럽 거리를 걷다 보면 여기가 저기 같고 이곳이 저곳 같은데 저렇게 표지판이 있어서 지도를 보고 목적지를 쉽게 찾을 수 있었다.

 영국의 차(tea)를파는 가게 포트넘 앤 메이슨을 목적지로 피카디리 서커스에 발이 닿았다. 사실 이곳이 피카디리인지 어딘지 잘 모르고 무작정 걸어갔는데 

이 피카딜리 서커스 광장을 보고 이곳이 피카딜리 서커스라고 인식했다. 영국 드라마 셜록을 재미있게 봤었던 터라 셜록 오프닝에 나오는 이 곳이 내 눈 앞에 있다는 사실에 기분이 들떴다. 


카메라로 사진을 찍는 사람을 찍는 카메라를 든 나


영국 피카딜리 서커스 하면 빼놓을 수 없는 게 뮤지컬이다. 영화 레미제라블을 인상 깊게 봐서 뮤지컬 레미제라블을 보고 싶었다. 퀸스 극장을 내 눈앞에서 보다니 뮤지컬을 안 보고 넘어갈 수 없었다. 극장에 들어가 가격을 물어봤지만 예산이 걸려서 쉽게 결정을 내릴 수가 없었다. 

일단 너무 배고팠으므로 점심을 먹고 생각해 보기로 하자 


길을 걷다가 아무 가게나 들어갔다. 너무 배가 고파서 메뉴를 고를 여유도 없었다. 점심시간이어서 그런지 어느 가게에나 사람들이 가득했는데 우리가 갔던 곳은 사람들이 그다지 많지는 않았다. 피쉬 앤 칩스와 저 이름이 기억 안 나는 멕시칸 브리또(?) 같은 걸 시켰다. 가게 안의 사람들이 우릴 뚫어지게 쳐다보는 게 느껴졌는데 펍에서 맥주는 안 시키고 음식만 시키는 우리가 신기했나 보다. 저 멕시칸 브리또(?)는 양이 정말 많았다. (그렇게 썩 맛있지도 않았다. ) 


거리를 걸었다. 뮤지컬은 포트넘 앤 메이슨에서 차를 구입한 다음 생각하는 걸로 미뤄졌다. 

 바로 결정하지 않는 것은 그만큼 간절함이 부족해서 일 것이다. 포트넘 앤 메이슨을 찾다가 영국 캐스 키드슨을 발견하고 구경해보는 마음으로 들어갔다. 너무 이쁜 인테리어와 취향을 마구 저격하는 제품 때문에 지갑이 열릴 것만 같았다. 지갑을 꽉 움켜쥐고 돌아서려는 순간 캐드키드슨 직원이 한국말로 우리에게 말을 걸었다. 이야기를 해보니 워킹홀리데이를 온 한국인이었다. 반가운 마음에 이야기를 하다가 제품 설명도 듣고 인사를 하고 나왔는데 글쎄 어느새 내 손에는 캐드키드슨에서 산 물건들이 다발로 들려져 있었다. 캐스 키드슨은 그 워킹홀리데이를 온 한국인에게 인센티브를 주어야 할 것이다. 영어로 영국인들에게 물건을 팔고 한국말로 한국인들에게도 물건을 파니 말이다.

(그래도 싸게 구입한 게 세일 제품들과 국제학생증을 보여주고 더 할인을 받아서 샀다. 런던의 캐스 키드슨을 갈 의향이 있는 학생분들은 국제학생증을 보여주면 할인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그래도 가기 전에 할인이 되는지 다시 확인해보시는 게 좋겠다)


포트넘 앤 메이슨에 왔다.

수족냉증으로 겨울에 손발이 차서 고생할 때는 따뜻한 차를 끓여 먹는 게 내 낙일 만큼 차 마시는 걸 즐긴다.

영국에 유명한 찻집이 포트넘 앤 메이슨과 트와이닝스라고 하는데 선물할 걸 고르고 있어서 포장이 더 고급스러울 것 같은 포트넘 앤 메이슨을 갔다.

처음 얼그레이를 접하는 사람은 편하게 마실수 있는 레이디 그레이를 구입하라는 추천글을 보고 직원에게 레이디 그레이를 찾아달라고 했다. 친절한 직원이 건네준 상자를 보니 countess grey라고 쓰여 있었다. lady grey는 트와이닝스에서 생산하는 차 이름이고 countess grey는 포트넘 앤 메이슨에서 생산하는 비슷한 차 종류인 모양이다.(다른 종류의 차도 샀는데 한국에 와서 모두 마셔본 결과 countess grey가 단연 최고였다. 향과 첫맛은 과일향이 달콤하게 나고 끝 맛은 얼그레이 맛이 나는데 얼그레이  잘 못 마셨던 나도 얼그레이를 좋아하게 하는 차였다. 다시 가면 큰 박스로 사 올 것이다.)


Green Park로 향했다.  영국의 공원은 숲 같은 느낌이다. 어딜 보나 초록이 빈틈이 없다.

잔디밭에 털썩 주저 앉은 사람이 참 많은데 저 사진에 보이는 의자가 돈을 내고 써야 하는 탓인 걸까

양 손에 들린 쇼핑백을 들고 벤치에 앉아 쉬었다. 뮤지컬은 잊힌 지 오래였다.   사람들로 시끌벅적하기도 하고 나무의 초록으로 적막함이 느껴지기도 했다.  

역시 영국의 마지막은 공원이어야 한다. 


오늘도 역시나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서만 버스를 탔다. 딱히 교통비를 줄이자고 한 일은 아니었다. 다른 나라에 와서 걸으면서 눈에 스쳐 지나가는 것도 더 천천히 보고 싶어서였으리라.

영국에 와서 못해본 것들이 너무 많았다. 뮤지컬보기, 근교 여행하기, 맛있는 디저트 먹으며 노천카페에 앉아 있기 여행의 끝은 항상 아쉬움이 남지만 그 아쉬움으로 다시 이 곳을 찾길 바라며 영국에서의 마지막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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