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본 고레에다 히로카즈감독의 세 번째 영화
※스포일러 주의
누구나 한 번쯤은 꼭 해볼 만한 생각.
나는 어떤 어른이 되어있을까?
나는 아주 어렸을 때부터 확고한 이상형이 있었다. 멋진 커리어 우먼
내 일을 똑 부러지게 해내고 스스로를 제대로 정돈하면서 사는 사람
내가 꿈꾸는 어른이었다.
료타도 이상형으로 정해둔 어른의 모습이 있었까.
하지만 지금 그의 모습은 한심하다. 남들 다 가지고 있는 직장 하나 없고 경륜과 복권에 얼마 없는 돈을 건다.
한 때는 꿈을 이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본인의 이름을 건 첫 소설을 냈을 때 누구보다 부푼 마음으로 세상에 대한 야심으로 가득 차 있었을 것이다.
지금 그는 연립주택에 사는 어머니의 집에 무언가 팔만한 것이 없나 아버지의 유품을 뒤지고 어머니의 비상금을 찾는다. 양육비 줄 돈도 없는 료타는 엑스 와이프의 뒤를 밟으며 현재 그녀의 남자 친구를 비난한다. 인생이 왜 이렇게 됐을까?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최근 개봉작 태풍이 지나가고 의 남자 주인공의 모습은 너무도 현실적이어서 흠칫 놀라게 만든다. 료타의 모습은 픽션 속 남자 주인공의 모습이 아니라 현실 속 내 옆을 스쳐가는 누군가의 삶처럼 느껴진다. 어렸을 적 나라면 저런 사람의 인생은 잔혹동화 속 머나먼 나라에서 전해지는 어느 불량한 이야기겠거니 하겠지만 지금 나에겐 내일 당장이라도 내 모습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영화를 보는 내내 묵직한 돌덩이 하나 내 가슴에 올려놓은 채로 봐야 했다.
료타의 지금 모습은 료타 자신에게도 낯설지 않다. 돌아가신 아버지의 모습이 겹쳐 보이기 때문이다. 영화 속 료타의 돌아가신 아버지 모습은 현재를 살고 있는 그를 알던 사람들이 툭툭 내뱉는 말로 알 수 있다. 너 지금 이러는 거 아버지를 닮았다며 아버지도 이 곳에 와서 나에게 돈을 빌렸지 라는 누나의 말과 아버지의 유품을 팔아 돈을 받으려고 간 전당포 아저씨에게 듣는 아버지의 거짓말 아버지처럼 살기 싫었어 라며 자신의 장래희망에 대해 이야기하는 료타.
아버지처럼 살기 싫어 공무원을 꿈꿨다는 료타의 모습은 아버지를 닮아있다. 유쾌하고 뻔뻔한 그 이지만 가족들에게 그 이야기를 들으며, 혹은 문득 자신의 모습에서 아버지를 볼 때 순간 료타의 눈은 텅 비어있는 것 같다.
꾀를 냈다.
엑스 와이프가 어머니에게 약하다는 것을 알고 아들과 같이 어머니댁으로 간다.
태풍이 온다고 하는데
계산해 두고 짜 놓은 상황인 지 모르겠지만 태풍이 와서 엑스 와이프 쿄코와 아들 싱고는 어머니 댁에 발이 묶인다. (정확히 말하자면 태풍과 어머니 그리고 료타의 합심으로)
어렸을 적 아버지와 그랬던 것처럼 태풍이 오는 밤 료타는 싱고를 데리고 연립주택 앞 놀이터로 간다.
그곳에서 료타는 아들 싱고에게서 자신의 모습을 본다.
아버지를 닮기 싫어했던 자신의 모습
태풍으로 인해,
하룻밤 사이에 휘리릭 바뀌는 그런 이야기가 아니다.
태풍은 그저 그동안 인지하고 있었지만 받아들이기 힘들었던 것들을 직접 말로 꺼내고 같은 공간에 있으면서 느낄 수 있게 만든 계기가 되어 준 것뿐이다.
어머니가 새벽에 일어나 료타에게 말했던 것처럼 어쨌든 살아간다는 게 중요하다.
쿄코는 이전과 같은 실패가 싫어 높은 연봉의 남자와 미래에 대해 생각하고,
료타와 쿄코가 다시 합치길 은근히 바라왔던 어머니 요시코는 울먹이며 쿄코를 놓아주고,
태풍이 치던 날 싱고의 모습에서 자신의 모습을 보고, 다음날 아버지의 벼루를 팔기 위해 간 전당포에서 아들을 사랑하는 자신의 모습과 닮은 아버지의 모습을 본 료타는 벼루를 그냥 들고 나온다.
인생을 산다는 것은 저런 것 같다.
일단 어쨌든 한 발 내딛는 것
그 행동이 반드시 나를 긍정적인 방향으로 이끄는 것인지 확실하진 않지만, 어쨌든 나아간다는 것이 중요하다.
멈추지 않고 움직이는 것 살아간다는 것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