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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xx Sep 12. 2016

태풍이 지나가고

내가 본 고레에다 히로카즈감독의 세 번째 영화

※스포일러 주의


누구나 한 번쯤은 꼭 해볼 만한 생각.

나는 어떤 어른이 되어있을까?


나는 아주 어렸을 때부터 확고한 이상형이 있었다. 멋진 커리어 우먼

내 일을 똑 부러지게 해내고 스스로를 제대로 정돈하면서 사는 사람

내가 꿈꾸는 어른이었다.



료타도 이상형으로 정해둔 어른의 모습이 있었까.

하지만 지금 그의 모습은 한심하다. 남들 다 가지고 있는 직장 하나 없고 경륜과 복권에 얼마 없는 돈을 건다.

한 때는 꿈을 이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본인의 이름을 건 첫 소설을 냈을 때 누구보다 부푼 마음으로 세상에 대한 야심으로 가득 차 있었을 것이다.

지금 그는 연립주택에 사는 어머니의 집에 무언가 팔만한 것이 없나 아버지의 유품을 뒤지고 어머니의 비상금을 찾는다. 양육비 줄 돈도 없는 료타는 엑스 와이프의 뒤를 밟으며 현재 그녀의 남자 친구를 비난한다. 인생이 왜 이렇게 됐을까?

태풍이 지나가고 스틸 컷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최근 개봉작 태풍이 지나가고 의 남자 주인공의 모습은 너무도 현실적이어서 흠칫 놀라게 만든다. 료타의 모습은 픽션 속 남자 주인공의 모습이 아니라 현실 속 내 옆을 스쳐가는 누군가의 삶처럼 느껴진다. 어렸을 적 나라면 저런 사람의 인생은 잔혹동화 속 머나먼 나라에서 전해지는 어느 불량한 이야기겠거니 하겠지만  지금 나에겐 내일 당장이라도 내 모습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영화를 보는 내내 묵직한 돌덩이 하나 내 가슴에 올려놓은 채로 봐야 했다.


-아버지처럼 살기 싫어

료타의 지금 모습은 료타 자신에게도 낯설지 않다. 돌아가신 아버지의 모습이 겹쳐 보이기 때문이다. 영화 속 료타의 돌아가신 아버지 모습은 현재를 살고 있는 그를 알던 사람들이 툭툭 내뱉는 말로 알 수 있다. 너 지금 이러는 거 아버지를 닮았다며 아버지도 이 곳에 와서 나에게 돈을 빌렸지 라는 누나의 말과 아버지의 유품을 팔아 돈을 받으려고 간 전당포 아저씨에게 듣는 아버지의 거짓말 아버지처럼 살기 싫었어 라며 자신의 장래희망에 대해 이야기하는 료타.

아버지처럼 살기 싫어 공무원을 꿈꿨다는 료타의 모습은 아버지를 닮아있다. 유쾌하고 뻔뻔한 그 이지만 가족들에게 그 이야기를 들으며, 혹은 문득 자신의 모습에서 아버지를 볼 때 순간 료타의 눈은 텅 비어있는 것 같다.



-나는 아버지를 닮고 내 아이는 날 닮고

꾀를 냈다.

엑스 와이프가 어머니에게 약하다는 것을 알고 아들과 같이 어머니댁으로 간다.

태풍이 온다고 하는데

계산해 두고 짜 놓은 상황인 지 모르겠지만 태풍이 와서 엑스 와이프 쿄코와 아들 싱고는 어머니 댁에 발이 묶인다. (정확히 말하자면 태풍과 어머니 그리고 료타의 합심으로)

어렸을 적 아버지와 그랬던 것처럼 태풍이 오는 밤 료타는 싱고를 데리고 연립주택 앞 놀이터로 간다.

 

그곳에서 료타는 아들 싱고에게서 자신의 모습을 본다.

아버지를 닮기 싫어했던 자신의 모습



-그래도 한 발

태풍으로 인해,

하룻밤 사이에 휘리릭 바뀌는 그런 이야기가 아니다.

태풍은 그저 그동안 인지하고 있었지만 받아들이기 힘들었던 것들을 직접 말로 꺼내고 같은 공간에 있으면서 느낄 수 있게 만든 계기가 되어 준 것뿐이다.

어머니가 새벽에 일어나 료타에게 말했던 것처럼 어쨌든 살아간다는 게 중요하다.

쿄코는 이전과 같은 실패가 싫어 높은 연봉의 남자와 미래에 대해 생각하고,

료타와 쿄코가 다시 합치길 은근히 바라왔던 어머니 요시코는 울먹이며 쿄코를 놓아주고,

태풍이 치던 날 싱고의 모습에서 자신의 모습을 보고, 다음날 아버지의 벼루를 팔기 위해 간 전당포에서 아들을 사랑하는 자신의 모습과 닮은 아버지의 모습을 본 료타는 벼루를 그냥 들고 나온다.


인생을 산다는 것은 저런 것 같다.

일단 어쨌든 한 발 내딛는 것

그 행동이 반드시 나를 긍정적인 방향으로 이끄는 것인지 확실하진 않지만, 어쨌든 나아간다는 것이 중요하다.

멈추지 않고 움직이는 것 살아간다는 것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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