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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xx Oct 19. 2016

6.켜켜이 쌓인 시간에 보내는 찬사(1)

온전한 하루를 루브르에


대학교 1학년 교양수업으로 들었던 <세계 미술의 이해>가 있었다. 정말 아무것도 몰랐었던, 신입생이 되기도 전의 나는 입학할 날에서 몇 주를  앞두고 2월 내일로 여행을 떠났었다.

여행 도중 알게 된 수강신청기간,

찜질방 컴퓨터에서 말 그대로 현기증을 느끼며 시간표를 짰고, 다음날 강릉의 한 피시방에서 정말 아무거나 무작정 수강신청을 신청하다가 어쩔 수 없이 들었던 과목이다.

2학점 짜리 수업은 <세계 미술의 이해>라는 세계의 명화들을 설명해 주는 수업이었고, 나는 정말 격렬하게 졸았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의 이 지적 허영심이 자라나지 않았었던 시기였었다. 입시 준비만 하느라 체력이 바닥이었던 나는 하루 종일 수업을 마치고 마지막 6,7교시에 있는, 불을 다 꺼놓고 피피티 영상을 봐야 하는 이 수업에서 졸지 않기란 대단히 어려웠다.

그럼에도 내가 뚜렷이 기억하는 교수님의 말씀

"여러분도 졸업 전 파리에 가겠죠? 간다면 꼭 루브르 박물관에 가서 우리가 배운 미술작품들을 감상해 줬으면 좋겠어요. 직접 가서 감상하는 것은 이렇게 피피티 영상을 쏘면서 보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죠 "

나는 이 말이 마치 주술처럼  날 둘러싸고 있다고 믿는데 왜냐하면 교수님이 저 말씀은 그 수업을 듣는 100명의 학생들 모두가 반드시 꼭 파리에 갈 거라고 확정을 해 놓으시고 하는 말투였고, 그날부터 난 수업도 열심히 듣고 필기도 열심히 할 뿐만 아니라(하지만 학점 눈물이 난다.) 예술문화에 대한 지적 허영심이 '가열차게' 높아졌기 때문이다.




5월 19일.

유럽 여행을 온 이후로 시간 개념이 없어졌다. 13일에 출발해 13일에 도착한 시차 때문일 것이라 생각하지만 그만큼 정신없이 다녔기 때문이리라

어제의 미친듯한 스케줄에 비해 오늘은 여유로운 날이었다. 내가 그토록 고대하던 루브르에 온전히 하루를 바치기로 한 날이었기 때문이다. 파리의 숙소를 선택하는데 플러스의 이유가 되기도 하였던 숙소 서비스 루브르 박물관 무료 사전 가이드! 를 아침에 듣기로 했다. 루브르 박물관 가이드는 여행사에서 하는 것이 있다. 하지만 우리가 듣기로 한 것은 숙소에서 제공해 주는 루브르 소장품의 사전 강의 같은 개념이었다. 아침 일찍 일어나 여유롭게 준비하고 아침으로 나온 한식 닭곰탕을 먹고 가이드(?)분이 숙소 로비로 오시길 기다렸다.  


9:00 AM  마른 편인 체구에 안경을 쓰시고 긴 머리를 늘어뜨리고, 전체적으로 건조한 분위기를 풍기는 여자분이 자료들과 노트북을 들고 오셨다. 파리에서 미술을 공부하시는 분이라는 간단한 자기소개를 듣고 보니 외향적 분위기와 하시는 일이 매치가 되는 느낌이 들었다. (편견일까? 편견이지 싶다)


루브르 박물관은 원래 궁전을 개조한 것이라는 설명과 루이 14세가 베르사유 궁전으로 왕이 거주할 궁전을 옮기기로 결정하고 루브르를 전시를 위한 공간으로 사용하면서 오늘날의 박물관이 되었다는 이야기를 해주셨다. 이런 건축역사부터 시작해 주요 관람할 그림들을 설명해 주시는데 대략 2시간 여의 시간이 지나있었다.

나의 몰입도와 리액션은 막 생방송에 날 투입시켜도 좋을 만큼 열정적이었다. '오! 아아~'와 같은 중간중간 추임새는 물론이고 마지막에 너무너무 설명 잘해 주셔서 이해가 쏙쏙 되고 2시간 하나도 지루하지 않았다는 감사인사 또한 잊지 않았다. 그만큼 사전에 듣는 미술작품 설명도 좋았고 나의 지적 허영심의 게이지는 종을 울리고 있었다.


오늘의 파리는 여전히 태양의 우주적 입지를 확인시켜주는 날씨였다. 내가 벼였다면 정말 맛있게 익어갈 날이었다.

파리의 공포스러운 지하철을 타고 루브르 박물관에 도착했다. 사전 강의에서 궁전이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루브르의 커다란 스케일에 놀랐다. 문 하나만 통과하는 박물관이 짜잔하고 나올 줄 알았는데 문을 통과하고 들어선 루브르 궁전은 너무너무 너무 거대한 'ㅁ'자 형의 모습이었다. 영화 다빈치 코드에서 그렇게 나오던 유리 피라미드도 보였다.  사람도 너무너무 많았으며(영국의 버킹엄 궁전 앞에서 보다 사람이 많은 느낌이었다),  루브르 박물관에 들어가기 위한 줄은 내가 상상하지 못한 길이였다. 이 사람들의 이 열정.

한 번에 입장 가능 다하던 뮤지엄 패스 입구도 못 찾을 것만 같은 지경이었다.


뮤지엄 패스로 정말 너무 길었던 줄을 패스하고 들어선 루브르 박물관엔 내가 그동안 교과서에서 정말 화석 같은 취급을 했던 작품들이 여기저기 있었다.

이게 정말 진품인 거야? 정말?

들어서자마자 보였던 것은 밀로의 비너스

'뭐야 나 이거 도덕책에서도 보고 미술 교과서에는 당연히 보고 여기저기에서 다 보던 건데 이게 아무런 가림막도 없이 그냥 있잖아?'

수도 없이 듣고 봤던 작품들을 보는 것뿐만 아니라 내가 감히 헤아릴 수 없는 영겁의 시간을 견디고 버틴 피사체에 대한 존경심과 황홀한 감정이 들었다. 모든 작품들의 그림자 하나 , 결 하나에서부터 시작해 모든 게 나에게 이런 감정의 썰물을 안겨주었다. 온 벽에 걸려있는 작품들이 있는 기다란 구역에 앉아 피곤한 다리를 쉬며 고개를 들어보면, 이리 보고 저리 보아도 예술작품이었다. 예술의 방이었다. 그곳에 이렇게 있음에 감사를 표하고 싶어 지게 만드는 풍경이었다.

사전 강의를 하시며 숙소에서 작품에 대한 설명을 해주시던 가이드분께서 너무 큰 루브르에서 본인이 추천해주시는 작품들과 그 경로까지 자세히 알려주셨기에 망정이지 하루 종일 있으라 해도 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루브르를 다 보기 위해서 한 달도 부족하다고 했던 나에게 지적 허영심을 안겨주신 교수님의 말씀이 생각났다.


밀로의 비너스에서 시작해 그 유명한 국사책 첫 페이지에 나오는 함무라비 법전,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세례 요한과 모나리자(그 유명하고도 유명한!) 외젠 들라크루아의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 요하네스 페르 메이트의 레이스 뜨는 여인,  자크 루이 다비드의 나폴레옹의 대관식 등등 사전 강의에서 들은 것뿐만 아니라 스쳐갈 뻔하다가 걸음을 멈추게 한 1학년 그 교양과목에서 배웠던 작품들을 봤다. 정말 신기한 것은 잊고있었던 교양과목에서의 배움들이 작품을 보자마자 생각났던 것. 이 작품은 작가의 어떤 의도가 들어가 있고, 이러한 표현에는 무엇을 말하고 싶었었는지 등에 대한 것이 작품을 보는 나의 시선에 따라 생각이 났다. 알 수 없는 묘한 기쁨을 느꼈다.

정말 루브르를 꼭 가보시고 싶은 분들은 가이드 투어를 하셨으면 좋겠다.

구름을 걷는 듯한 몽롱하고 황홀란 느낌으로 작품을 감상했지만 서서히 아파오던 발바닥의 통증이 다리 전체로 번지는 걸 느꼈다. 더 보고 싶지만 체력이 따라주지 않는 억울함에 아침에 들었던 추천작품들은 기를 쓰고 보려고 노력했다. 마지막으로 모나리자를 보고 (보는 것도 아니었다. 너무나 많은 사람들 때문에 가까이 작품 가까이 가기도 힘들었고, 정말 예상 밖의 작품크기는 다른 작품들처럼 시간을 들여 감상하기에는 어려움이 따랐다.) 지하로 내려와 늦은 점심을 먹기로 했다. 빵과 음료수를 파는 가게들이 보였고, 여기저기 사람들이 북적북적거렸다. 어린아이들과 다른 관광객들이 음식을 파는 루브 르내 카페테리아에 지쳐서 앉아있는 게 보였다. 그곳을 비집고 자리를 겨우겨우 잡았다. 식탁은 빵조각들과 음료 자국들로 더러웠지만 이걸 치워줄 여유로운 직원도 없었고, 우린 바게트 샌드위치도 겨우겨우 주문했다.  

바게트 샌드위치는 어디서든 볼 수 있는 파리 사람들의 우리나라로 치면 주먹밥 같은 느낌이었다. 우리는 예산을 아끼기 위해 커다랗고 푸석푸석한 바게트 샌드위치를 우걱우걱 씹어먹었다. 맛은 있었지만 입천장과 턱 뼈가 나갈 것 같은 퍽퍽함과 까칠함에 당황스러웠다. 하지만 이 퍽퍽함과 까칠함 매력 있다. 이 매력을 느끼며 아쉬움에 루브르에 더 머물렀다.

 


어젯밤 도미토리의 다른 룸메이트가 번쩍이는 에펠탑 모형을 자랑했었다. 번쩍번쩍 크리스마스트리처럼 빛나는 그 에펠탑을 어디서 샀느냐 물어보았고 에펠탑 근처에서 보따리장수에게 샀다는 말을 들었다. 하루를 루브르에 투자할 것이라는 계획이 약간 수정하기로 했다.

이제 때가 되었다. 에펠탑

어제 실패한 에펠탑으로 가기 위한 여정을 추가하기로 했다.



 

(2편으로 이어집니다! 사진이 많아서 파리 편들은 나눠서 글을 쓰게 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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