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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xx Mar 23. 2017

7.오르세에서의 하루

예상 했던 여행의 불편함

-비 오는 날의 오르세

눈을 뜨니 캄캄한 어둠뿐이었다.

도미토리의 룸메이트들이 자는 소리가 들렸다. 눈을 꿈뻑꿈뻑거리다 아아 나 유럽이야 집을 떠난지 2주가 다 되가는데 영 익숙해지지않는 아침이었다.

파리에서의 숙소에선 2층침대의 2층을 사용했는데 처음에 사용하는 것보단 썩 귀찮은 점이 많았다.


어쩐지 심상치 않는 하루의 시작이었다.

몸이 축축 쳐지고 기운도 없고 갑자기 모든 게 다 귀찮고 하기 싫은 기분이었다. 한명이 일어나면 모두가 일어나게되는 도미토리의 법칙이 있다. 잠깐 몸을 뒤척이다 이내 일어나서 차가운 철제계단을 내려와 컴컴한 도미토리의 밤을 깨웠다.


루브르를 가기 전 사전 강의를 들었던 것처럼 오르세를 가기 전 미술작품과 건물사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인상주의에 대해서는 대중적으로도 많이 알려져 있는 편이라 오르세 작품에 관한 이야기를 들을 땐 루브르보다 더 기대가 되었다.

드디어 내가 고갱의 그림을!! 보다니!

머릿속의 기대감과는 다르게 몸은 물에 젖은 스펀지같이 무거웠다. 하지만 쉴 순 없지 오르세 미술관에 나갈 차비를 마쳤다. 비가 온다는 예보와는 다르게 아침은 맑았다.


사전 강의를 듣고 오르세 미술관 앞에 도착하니 점심 바로 전이었고 그 앞 가게에서 점심으로 바게트 샌드위치를 샀다. 중독되는 맛이었다. 입천장이 까지지만 않는다면, 딱딱한 빵 탓에 턱이 아프지만 않는다면 말이다. 테이크 아웃한 바게트 샌드위치를 들고 오르세 미술관으로 가려는 찰나에 비가 후두둑 떨어졌다. 예상보다 정확한 일기예보가 얄미워지는 순간이었다.

음식물을 들고 들어가지 못하니 미술관 입장 전 로비에 앉아서 바게트 빵을 베어 물었다.




미술관에 입장하기 전


미술관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기차역을 미술관으로 개조했다는 설명을 들은 후에 위에서 미술관의 전경을 보니 기차가 증기를 뿜으며 이곳을 드나들었단 말이지 라는 생각과 기차역으로 사용되었을 이곳과 현재 미술관으로 사용되는 이곳의 모습이 겹쳐 보였다.





-여자가 장기간 여행할 때

여자가 장기간 여행을 할 때 가장 불편한 것이 무엇인가 가장 첫 번째는 여러 범죄에 대한 두려움이 클 것이고 두 번째는 한 달에 한번 경험하는 생리기간을 어떻게 할 것이냐가 아닐까 싶다.

약을 먹어 생리를 늦추는 방법을 생각해 봤지만 여행기간 내내 시간을 꼬박꼬박 맞춰 먹을 자신이 없었기에 그냥 부딪혀봐! 생각했다.

40일 정도 가는 여행이라 언젠가는 오겠지 했는데 파리에서 생리가 터졌다. 아침의 그 무기력함과 귀찮음 짜증이 다 설명되는 순간이었고 동시에 더 강력한 분노를 느끼게 되었다.

몽마르뜨 일까
커다란 시계뒤의 사람들


-그럼에도 휘발되지 않은 기억은

이런 와중에 오르세에서의 기억은 대부분이 휘발되고 남아있는 단 하나의 작품이 있는데 모네와 드가의 작품이었다.

인상주의 작품들을 나도 무척 좋아하는데 그 이유는 작품에서 작가가 가장 잘 드러난다고 생각해서 이다. 19세기 카메라의 등장으로 더 이상 실제와 같이 섬세하고 세밀한 그림이 필요 없어지자 등장하게 된 게 인상주의.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장면, 구도를  그리기보다는 내가 보고 있는, 내가 느끼는 나를 통해 재해석된 그림들을 그리는 화가들의 모습은 변해가는 환경에서 살아나고자 하는 그들의 삶이 느껴져 좋았고 그림을 그리는 화가의 눈을 빌려 그 시대를 엿볼 수 있다는 게 좋았다.

그중에서 특히 맘을 끈 것은 모네의 작품이었다. 한 작품을 몇 분을 서서 감상했는데 갑작스런 감정에스스로도 당황했다. 코끝이 시큰해지고 어쩐지 감정이 북받쳤다. 몸이 안 좋은 상황에서도 모네의 그림 앞에서 내내 서있었다. 이후에 미술을 전공한 친구와 이 얘기를 나누고 공감했고, 똑같은 감정을 느낀 동지로 날 반겨주었다.

마지막 힘을 짜네 마네를 보고 드가의 조각까지 보고 오르세는 이만 접자고 마음먹었다.

그렇게 기대 하던 많은 작품들을 눈물을 흘리며 지나쳐 오르세를 나왔다.

진통제를 입안에 털어 넣고 아쉬우니 그냥 집에 가지 말고 근처 슈퍼에서 와인이랑 안주라도 사가자고 친구와 의견을 정했다.


어디로 어떤 가게에 갔는지는 기억에 없다. 그 파리의 건물들을 지나쳐 작은 구멍가게 같은 슈퍼에 들어갔다. 굉장히 비좁았지만 낯선 제품들에 시선을 뺏겼다. 작은 와인한병과 과자들을 취향에 맞게 골랐다. 비도 오니 숙소에 들어가서 와인이나 마시자는 계획이었다. 하지만 너무 일찍 돌아가는 거 아닌가 걱정스러웠고 역시나 우리는 숙소 밖에서 기다려야 했다. 숙소 문 앞에 주저앉았다. 어딜갈 수 있는 기분도 상황도 체력도 아니었기에그냥 거기서 문이 열리길 기다렸다.

파리의 어느 외곽 거주지 단지에 동양인 여자 둘이 앉아있다. 밖은 비 오는 소리가 들렸고, 핸드폰에 담아온 음악을 틀었다. 비가 떨어지는 소리와 음악소리가 적절하게 어울어져 나름 운치 있었다. 게다가 이곳은 어찌되었든 뭘 하든 파리였다. 비를 맞았어도 만족스러웠을 것이다.


그때 고양이 두 마리가 우리 주위로 다가왔다. 숙소에서 고양이 먹이를 두고 있어 자주 드나드는 자유로운 길 집고양이였다. 오늘 하루는 망쳤다고 생각했는데 비오는 소리와 음악이 들리고 내 옆엔 고양이가 있었다.

완벽한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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