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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xx Apr 07. 2016

1. 도하와 히드로 공항

그리고 런던의 숙소 찾기

2번의 비행기 예약, 5번의 교통수단 예약, 그리고 14번의 숙소 예약,

5개월 동안 무수히 많은 조사와 예약을 진행하면서도, 마지막 짐을 챙기는 순간에도 한국을 떠난다는 게 실감이 나지 않았다.

5월 13일 새벽 1시 30분 출발.

출발 이틀 전까지 일을 하고 5월 12일 밤 아홉 시 공항버스를 타고 인천공항으로 향했다. 아무리 실감이 안 난다 해도 처음 해외여행.

설레는 마음으로 여행 관련 노래들을  다운 받아놓고 고이고이 아껴두었다 버스 안에서 노래를 들으며 공항으로 향하는 길 설레서 가슴이 두근두근거렸다.



-나 인천공항 25년 만에 와봐! 

  음  그리고 내 나이 25살이야!!


1시간 남짓 시간이 지나고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첫 해외여행이라 인천공항도 처음이었던 나는 tv에서만 나오던 북적거리는 공항을 기대했는데 밤 10시가 다 돼가는 시간이라 공항 안에 사람들은 별로 없었다. 체크인을 위해 내가 타고 갈 외항사의 부스에 가니 그곳은 텅텅 빈 다른 곳과 다르게 패키지여행을 가는 한국사람들로 북적북적거렸다. 관광객들에게 주의사항을 설명해주는 가이드의 말소리가 들렸고, 다들 여행을 가는 설렘 때문인지 목소리가 한 톤 가량은 높아져 있었다. 물론 나와 친구도 그랬다. 공항은 떠날 사람들과 떠나온 사람들이 체류하는 곳이라는 특성 때문인지 전체적인 분위기가 둥둥 떠있는 느낌이다. 나를 포함 이런 분위기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첫 해외여행 비행기를 타기도 전에 느낀 게 있다면 병원과 공항은 기다림의 늪과 같은 곳이라는 것.

게이트 오픈이 예상보다 늦어져서 한참을 기다리고 마찬가지로 보딩 시간도 늦어져 체크인하기 전 설렘으로 생기 넘치던 얼굴은 넋이 나가 있었다.


비행기 내부 좌석과 좌석 사이의 공간은 예상보다 넓어서 별다른 불편은 없었지만 가운데 블록 4개의 좌석이 붙어있는 공간에 중간 좌석이라 상당히 불편했다. 마치 대형 양계농장의 닭장 속 닭의 시점이 된 느낌이었다.




-카타르? 도하? 

영국으로 날아가는 여정의 경유지는 카타르의 도하였다. 닭장 속 닭장의 시점에서 그렇게 13시간을 도하로 날아갔다. 도하 현지 도착시각은 새벽 6시가 조금 넘어있었다. 엉덩이는 뭉개질 것만 같았고 약간 비몽사몽 한 느낌이었다.

 한국에서 출발한 우리가 탄 비행기가 연착을 했기 때문에 안 그래도 경유하는데 걱정이 많았던 우리는 부랴부랴 환승구역으로 달려갔다. 외국이라는 실감이 없을 정도로 정신이 없던 우리는 이 환승구역에서 굉장한 컬처쇼크를 받게 되었다. 

우리가 가봤던 공항은 인천공항의 깨끗함과 모던함 그리고 편리함. 하지만 도하공항은 우리나라 지방의 고속버스터미널의 모습이었다. 상상할 수 있겠는가 지방의 시골에 친가나 외가가 있는 사람들은 쉽게 상상할 수 있을 것 같다. 건물은 정말 건물로의 기능만을 수행하고 있었고, 인청공항의 그 번쩍번쩍함은 없었다. 사진을 못 찍은 게 참 아쉬운데 정말 그때는 비행기를 놓치진 않을까 하는 두려움에 사진 찍을 정신도 없었다.

환승을 하기 위해 보안검색대 앞에 늘어선 줄은 "ㄹ" 자의 형태로 끊임없이 이어져있었고, 인도인들과 중앙아시아계의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동양인들은 우리 밖에 없었다. 앞에 줄 서 있는 인도의 전통의상 사리를 입은 중년 인도 여자는 인상을 잔뜩 찌푸리고 있었고 뒤에 늘어서있는 낯선 인종의 사람들은 동양인뿐인 우리를 쳐다보고 있었다. 어쩐지 움츠러드는 느낌에 우리는 별 다른 얘기 없이 그 긴긴 줄이 줄어들길 기다렸다. (우리가 돌아오는 6월에는 도하 월드컵을 대비해 공항이 180도 달라져있었다. 어떻게 한 달 사이에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 신기하기만 하다.) 


그렇게 어리둥절 보안검색대를 통과한 우리는 환승을 하기 전 공항 의자에 앉아 한숨을 돌렸다. 바로 앞의 삼성 휴대폰의 광고 포스터가 크게 붙어있는 게 보였다. 주위를 둘러보니 공항 검색대를 통과하기 전의 분위기와 다른 깔끔한 공항의 모습이 보였다. 잠깐 동안의 낯선 나라의 공항을 구경하고 공항직원의 안내에 따라 비행기에 탑승하기 위해 공항버스를 타고 활주로를 달렸다. 비행기를 놓치지 않았다는 생각에 조금 안심이 되어 주위를 둘러보았다. 공항은 어마어마하게 넓었다. 활주로를 달리는 버스 안 창문에 이마를 박고 마치 처음 버스를 타는 아이처럼 밖을 스쳐 지나가는 풍경들을 구경했다.  도하는 새벽 6시였지만 밖의 온도는 35도를 육박했다. 버스의 창 하나로 그 열기가 느껴졌다. 창 하나를 사이에 두고 지역의 열기와 중동의 이국적인 건물들이 언뜻언뜻 보였다. 눈이 반짝였다. 한국이 아니라는 사실을 만끽하고 있었다. 15분여를 달렸을까 버스는 우리가 탈 비행기 앞에 멈춰 섰다. 버스에서 내리니 열기가 후끈. 버스 안이 굉장히 시원했다는 것을 느꼈다. 비행기 앞에서 문이 열리기를 10분을 기다렸던 것 같다. 그 짧은 시간 한 여름을 경험했다.





-3번째 공항 히드로 공항

  마치 공항투어 여행을 하는 듯

그렇게 또 몇 시간을 날아 5월 13일 오후 1시 런던 히드로 공항에 도착했다. 런던 히드로 공항에 도착하면서 느낀 것은 인천공항이 참 좋은 공항이라는 것이다. 히드로 공항의 첫 느낌은 실용이었다. 건물 자체가 오직 고항이라는 역할만을 위해 존재하는 느낌이랄까. 색은 오직 시멘트의 회색만이 존재했다. (여행을 하며 여타 다른 공항들도 가봤지만 바르셀로나 공항 말고는 대부분 비슷한 느낌이었다.)

출발하기 전 여러 가지 조사를 하면서 런던의 입국심사가 까다롭다는 이야기에 굉장히 걱정을 했었다. 10시간이 넘게 걸려 이 곳까지 왔는데 혹시 쫓겨나진 않을까 일단 무조건 웃는 얼굴로 나는 선량한 사람입니다라는 모습으로 인터뷰해야지 결심하고 두근두근 거리는 마음으로 입국심사대에 섰다. 다행히 집요하게 질문하지 않는 심사원이라 무사히 입국심사를 통과했다.


히드로 공항에서 짐을 찾고 나와 숙소를 찾기 위해 공항과 연결된 지하철로 갔다. 그곳에서 오이스터 카드를 직원의 도움을 받아 구입하고 지하철을 타기 위해 게이트를 통과했다. 영국의 지하철은 참 조그마했다. 외국의 지하철은 우리나라와 달리 스크린도어가 없었고, 특유의 먼지 냄새 지하 냄새가 느껴졌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지하철 안은 외국인들로 가득했다. 그들에게는 우리가 외국인이지만 너무나 신기했다. 낯선 풍경과 다른 인종들과 다른 언어가 내 주위에 그득그득했다. 한 정거장 한 정거장 승객이 타는 모습과 내리는 모습 그들에게는 내가 지하철을 타고 버스를 타는 것만큼 일상적인 행동일 테지만 나는 그들의 익숙한 얼굴이 매우 신기했다. 내가 낯선 곳이라 느끼는 장소를 터전으로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다는 것은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느낌이었다. 정확한 것은 나는 완전히 이방인이었다. 자신들보다 키가 한 뼘은 더 작은 관광객인 동양인이었다. 그 완벽한 이방인의 쓸쓸함이 설레었다. 내가 처음 계획했던 대로 영국 히드로 공항에 도착해 영국에 예약한 숙소를 찾아가고 있다는 사실도 신기했다.  





-내가 가는 이 길이 어디로 가는지.. 어디로 날 데려가는지



어리바리한 우리가 신기하게도 예약한 숙소가 있는 역으로 찾아왔다. 에스컬레이터가 없는 외국 지하철에서 힘겹게 내 몸통만 한 캐리어를 끌고 드디어 온전한 런던의 지상으로 올라왔다. 주위에 아카데미와 주택들이 많아서 그런지 학생들이 많았다. 학교 근처에 느껴지는 활기참과 싱그러움과 같이 좋은 날씨 알맞은 기온이었다. 숙소 찾아오는 안내에는 역에서 숙소까지 버스를 타고 오라고 되어있었지만 기온 알맞고 날씨도 좋아던 이유로 우리는 캐리어를 끌고 걷기 시작했다. 숙소를 찾아가는 길에 눈에 띄는 것은 커다란 가로수들이었다. 우리나라의 가로수들은 가지치기를 당한 탓에 앙상한 나무들이 많지만 영국의 가로수들은 풍성한 가지에 풍성한 낙엽을 자랑하며 초록의 싱그러움으로 반짝반짝거렸다. 영국의 삭막한 히드로의 첫인상은 완전히 지워질 만큼 좋았다. 역에서 픽업장소까지 무사히 도착했다.


순탄치 않은 여행은 여기서부터 시작됐다. 설렘 가득한 마음으로 도착한 픽업 장소에서 픽업을 위해 숙소에 전화를 했다. 로밍을 해가지 않아서 숙소에 연락이 닿기 위해서는 순전히 현지의 공중전화를 이용해야 했다. 파운드로 환전해 온 돈은 지폐뿐이었기에 가까운 슈퍼에 들러 물을 한병 사 동전을 얻어 공중전화로 가 전화를 걸었다. 신호음이 몇 번 가더니 자동응답인 듯 한 여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당연히 영어로. 연결이 되지 않는다는 내용이었다. 그곳에서 서서 몇 번을 전화를 시도하였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전화는 연결되지 않았다. 그때까지만 해도 우리는 당황하지 않고 적힌 주소로 찾아가면 될 거라는 생각에 숙소를 찾아 걷기 시작했다. 영국 드라마에서 보던 주택들을 많이도 지나쳤다.

숙소인듯한 곳에 도착을 하긴 했지만 몇 층인지 어느 건물인지 몰랐던 우리는 거기서부터 크게 당황하기 시작했다. 짐은 짐대로 들고 있었고 맑았던 하늘에서 갑자기 어두워지더니 비가 쏟아졌다. 무료 와이파이가 되는 곳은 찾을 수가 없었고, 다시 한번 숙소에 전화했지만 역시나 받지 않았다. 비를 추적추적 맞으며 무작정 걷기 시작했다. 국제미아가 되기 직전이었다. 캐리어는 젖어가고 체온은 떨어지고 있었다. 이렇게 여행 첫날부터 노숙을 하게 되는 것인가 앞으로 여행을 잘 끝날 수 있을까 한국으로 돌아갈 수는 있을까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일단 와이파이가 되면 숙소 주인의 핸드폰으로 바로 연결될 수 있으므로 아무나 붙잡고 프리 와이파이가 어딘지 물었다. 마침 10대들이 무리 지어 있길래 짧은 영어로 상황을 설명하고 전화를 한 통할 수 있는지 물었다. 그들은 선뜻 전화를 빌려주었고, 역시나 연락이 닿지 않아 몇 번을 그들이 직접 전화를 해보았다. 하지만 역시나 전화는 부재중. 그들은 우리에게 프리 와이파이가 되는 역을 안다며 빅토리아역을 알려주었고, 버스정류장까지 우리를 안내해 주었다. 비에 쫄딱 젖은 생쥐꼴이 되어 그들에게 감사인사를 하고 빅토리아역으로 버스를 타고 갔다.


 첫 도착의 설렘과 흥겨움은 좌절과 두려움으로 바뀐 지 오래였다. 빅토리아 역으로 도착한 우리는 필사적으로 와이파이를 찾았지만 어느 곳도 와이파이는 연결되지 않았고, 역 안내원에게 이곳은 와이파이가 되지 않는다는 얘기만 돌아올 뿐이었다. 뭐지 그 10대 아이들의 친절은 우릴 골탕 먹이기 위한 악마의 장난인가 아니면 우리가 잘못 알아들은 것인가. 노숙의 두려움은 점점 현실이 되어가는 것 같았고,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어떡할지 고민하던 나는 역 안에 작은 소매점에 들어가 주인에게 우리의 상황을 알려주며 전화 한 통만 쓰게 해달라고 사정을 했다.(영어를 못하는 나이지만 생존이 걸린 상황에 맞닥드리자 신기하게도 영어가 나왔다.) 망설이던 역내 소매점 주인의 나의 절실함을 읽었는지 본인이 직접 숙소 주인에게 연락을 해 주었고, 결국 연락이 닿았다. 그때 시각 오후 6시가 다되어가는 시간이었다. 약 4시간가량을 헤맸던 것이다. 소매점 주인에게 무한한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그냥 돌아오기 미안하여 초콜릿 하나를 사들고 우리를 픽업 나온 숙소 사장을 만나 무사히 숙소로 갈 수 있었다.

정신도 나가고 초점도 나간 초콜릿사진




한 참 여행이 익숙해지고 영국을 떠날 때가 되어서야 그 시간 동안 근처 카페에 앉아 편안히 쉬면 되었을 걸 멍청하게도 비를 맞으며 울면서 영국의 거리를 정처 없이 헤맸던 멍청이들이었다며 친구와 여행 첫날의 우리를 비웃었다.

영혼이 나가 멍하니 숙소에 온 우리는 짐을 풀 시간도 없이 쫄딱 젖은 몸을 씻었다. 긴장이 풀리니 점심도 저녁도 안 먹었다는 것이 생각나 배가 고프기 시작했다. 숙소엔 라면과 토스트 등이 구비되어있었고, 그 정신에 밥은 먹겠다며 우리는 라면과 토스트를 먹었다. 어리바리한 우리가 이 낯선 곳에서 40일을 무사히 버틸 수 있을까 숙소 테라스에서 꽤 가까운 곳에 보이는 템즈강을 보며 멍하니 생각했다. 어쨌든 5일 동안 노숙은 안 하게 되었으니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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