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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xx Apr 07. 2016

지금이 아니면 안 되겠어

프롤로그  

1년 반이나 지나 많이 옅어진 기억들을 다시 꺼낸 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글을 쓰게 되는 이유는 지난달 졸업을 하고 그렇게도 두려워하던 취준생이라는 명칭을 얻은 기념으로 쓰는 도피성 글이다. 물론 그냥 흘려보내기 아쉬운 나의 시간들을 기록하고 싶어서인 마음이 더 크다. 여행을 끝내고 귀찮음에 놓고 있었던 이야기를 시작해본다.



2013년 어느덧 3학년 1학기를 마치고 방학을 맞이한 때였다. 하루하루 무료한 날이었고, 미래에 대한 고민과 현재에 대한 혼란이 겹쳤었던 때였다.(지금도 그렇게 다르지 않지만)

다음 학기를 기다리 던  어느 날 "우리 유럽여행 갈래?"라는 말 한 마디로 이 여행은 시작됐다.

매일을 붙어 다녔던 동네 친구와의 산책길 던진 한마디로 결정된 여행은 나의 휴학 신청으로 급물살을 탔다.

방학이 끝나자마자 아르바이트를 구해 안 쓰고 안 먹고 돈을 모으기 시작했다.

나의 대학시절이 이렇게 속절없이 가는 것이 아쉬웠다. 요즘에는 대학생들이 졸업하기 전 유럽 여행은 필수코스라던데! 나도 이 필수코스를 밟고 싶었다.

그렇다고  오랜 여행을 통해 나를 깨닫고 오자. 새로운 나라와 사람들을 보고 현재의 나를 되돌아보자 이런 거추장스러운 것들이 아닌 그냥 여행이 떠나고 싶었다. 학교를 다니면서 내내 결과를 얻는 삶을 살아왔는데 여행까지 그렇게 의미를 주입해 엄청난 것으로 포장하기 싫었다.

그리하여 나와 내 친구의 유럽여행의 모토는 여행을 위한 여행.


여행을 떠나는 것이 쉽지만은 않았다. 여러 가지 난관이 있었다.


첫째. 부모님의 우려와 반대

대학을 남들보다 늦은 나이에 입학하였기 때문에 졸업 후 나의 나이는 일반적으로 대학에 입학해 스트레이트로 대학을 졸업하는 이들보다 많았다. 일 년 휴학을 하고 졸업을 하면 그보다 더 늦어질 나이. 뭐 나와 함께 여행을 결심한 친구도 이미 2년 차 직장인이었다. 부모님은 빨리 부담을 덜기 위해 내가 졸업해서 취직을 하길 노골적으로 바라셨다. 너무도 이해하는 부모님의 마음이고 나도 그렇게 되길 바랬지만 지금 이때가 아니면 다시는 이런 기회가 올 것 같지 않으리라는 생각이 머릿속에 가득했다. 출국하기 전까지 부모님의 장난 섞인 핀잔이 비수가 돼서 꽂힌 적이 많아 포기할까도 많이 생각했었지만 결국 등록금의 반을 보태겠다는 조건으로 더 이상의 가타부타 말없이 부모님은 날 보내줬다.


둘째. 돈 모으기

아르바이트로 모을 수 있는 돈은 많아봐야 백만 원.

휴학 동안 두 개의 아르바이트를 했지만 그마저도 휴학 첫 아르바이트는 주 3일을 하는 아르바이트여서 한 달에 벌 수 있는 돈이 많지 않았다. 그것도 단기 아르바이트여서 3개월 시한부. 3개월 동안 아무것도 쓰지 않고 내 통장으로 차곡차곡 돈을 보아봐야 180만 원 이었다. 하지만 어떻게 한 푼도 안쓰로 모을 수 있을까 이 아르바이트가 끝나고 할 다음 아르바이트는 반드시 주 5일을 꽉 채우고 하루 8시간을 일하는 아르바이트를 구하리라. 여러 가지 나의 욕심 때문에 아르바이트를 구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휴학 첫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한 달가량은 구직에만 온 정신을 쏟고 살았다. 하루에도 몇 번씩 구직사이트를 들락날락 한 끝에 드디어 내가 원하는 조건의 아르바이트를 구했다! 집과의 거리는 좀 있었지만 2년이 지난 지금도 이때 이 아르바이트를 시작한 것은 나에게 큰 행운이었다. 내가 훗날 취직하고서 이런 상사들을 만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매일 이 생각으로 5개월가량 일을 했다. 그래 일을 했다. 출국 이틀 전날까지 일을 했더랬다...... 한 푼이라도 더 벌기 위해



셋째. 처음 나가는 해외, 항공권 예약과 숙소 예약

처음 나가보는 해외 모든 것이 너무 어려웠다. 여권도 없었던 나.

어느 날 인터넷에 뜬 항공사 프로모션으로 난리를 치렀던 적이 있다. 프로모션 기간은 얼마 남지 않았는데 나에겐 여권이 없었고 평일에 일을 하러 가는 나는 시간이 별로 없었다. 일을 구하기 전 여권을 미리 만들어놓을걸 후회했다. 유럽 왕복 항공권을 90만 원 대에 예매할 수 있었는데!! 부랴부랴 여권을 만들었다. 동네에서 추례한 모습으로 여권사진을 아무렇게나 찍고 시청에 가서 여권신청을 해 여권을 받았다. 하지만 정말 너무나도 초보였던 우리는 해외 결제를 하기 위해서는 비자 카트나 마스터카드가 있어야 한다는 것을 몰랐다. 결국 마스터카드 비자카드 아무것도 없었던 우리는 이 프로모션을 놓쳤고 눈물을 훔치며 바로 다음날 비자카드를 만들었고 이것은 여행 무식자들의 고난 예고와 같은 것이었다.



그 후 2014년 1월 20일 일을 하던 도중 친구에게 연락이 왔다. 다른 프로모션 소식이었다. 유럽여행 왕복 80만 원!!! 첫 번째 실패했던 프로모션보다 더 저렴한 가격이었다. 일단 나는 근무 중이었기 때문에 친구에게 항공권 예약을 맡겼다. 친구는 적금을 깨고 나는 그동안 모아두었던 돈을 친구에게 보내주었다. 80만 원 대의 거금의 돈을 보내는데 손이 후덜거렸지만 내 손은 88만 원 송금 버튼을 누르고 있었고, 근무시간 내내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항공권 예매에 성공했다는 답신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하지만 친구는 미션을 성공하지 못했고 내가 퇴근한 후 같이 진행하기로 했다. 여권도 준비됐고, 비자카드도 있고, 아직 부족한 예산이긴 하지만 항공권 88만 원은 계좌에 있었다. 모든 준비는 끝났고 결제만 하면 됬었던 것이다.


바람을 가르며 퇴근한 후 노트북과 USB 내 비자카드와 여권을 들고 친구와 나는 비장한 모습으로 동네 카페에 들어갔다. 내 카드로 이리저리 시도해 보았지만 내 카드도 성공하지 못했다. 얼굴까지 벌게지며 뚫어지게 모니터만 바라보던 우리는 혹시 몰라 들고 온 아빠의 비자 신용카드로 마지막 시도를 해보기로 했다. 출국자와 결제자의 명의가 다르다고 해도 항공사에 증명하면 된다는 것을 찾았다. 항공권 예매에 필요한 나와 친구의 여권번호, 이름, 주소, 출국날짜, 입국 날짜, 인 아웃하는 나라를 입력했다.(민망하지만 사실 이것도 첫 번째 프로모션 결제 때 한글로 입력하는 게 아니라 영어로 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 우린 완전 무식자였던 것이다.)

"톡톡 토도독"

조심스레 카드의 번호를 눌렀고 완료 버튼을 클릭했다.

결과는 성공.

친구와 나는 부둥켜안고 숨죽여 울었다.

이 이후 테제베, 유레일, DB버스, ALSA버스, 유럽 내에서 이동할 저가항공 예매 , 숙소 예약을 가기 전까지 부지런히 진행했고, 하나하나 모든 것이 쉽지 않았지만 항공권 예매는 유럽 준비의 반을 끝낸 것 같은 느낌이 들게 할 만큼 너무나 고된 작업이었다.

항공권 결제하지 마자 든 생각은

진짜

우리가 유럽을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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