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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xx Apr 22. 2016

2. Londoner와 Lundon 뚜벅이

런던 :  뜻밖의 여정

어느 정도 민감함을 타고난 성격인 건지 나는 낯선 곳에서는 쉽게 잠들지 못한다. 명절 때 시골에 가거나, 혹은 짧게 여행을 떠날라 치더라도 항상 걸림돌은 잠잘 곳의 환경이었다. 그곳이 객관적으로 편한 곳이든 아니든 익숙하지 않은 곳에서는 항상 잠을 설치곤 했다. 이번 여행에도 나의 걱정거리 중 하나는 바로 이것이었다.


영국시간 새벽 6시쯤

낯선 곳에서 눈을 떴다.

숙소 찾기로 온 몸이 긴장해서 인지 낯선 땅 낯선 방에서 잠드는지도 모르고 잠이 들었다. 씻고 침대에 누워 눈을 감은 것 같은데 눈을 떠보니 아침이 밝아오고 있었다. 잠시 동안 멍했던 것 같다.

그러곤 '아 여기 영국이지'

룸메이트들은 이미 나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왔다 갔다 부스럭거렸다는데 중간에 깨지도 않고 잘 잔 거 보면 어지간히 피곤했었나 보다. 잠자리를 가리는 것 따위 피곤함에 쉽게 져버렸다.


뭉그적거리다 보니 아침 일곱 시가 다돼가고 있었다. 친구와 아침을 먹기 위해 숙소 부엌으로 향했다. 숙소는 매우 작은 집이었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면 바로 앞에 부엌이 있었는데 문을 여닫아 부엌으로 들어갈 수 있는 구조여서 부엌도 방 같은 느낌이었다. 현관과 마주 보는 부엌의 벽에 작은 직사각형 창을 두어 그렇게 답답해 보이지 않았다.

아침에 일어나 그저 멍한 느낌뿐이었다. 하지만 그 부엌의 작은 문을 열고  들어가니 알 수 없는 영국 특유의 냄새와 새벽의 서늘한 공기가 더해져 가슴이 두근거렸다. 전혀 다른 공간처럼 느껴졌다. 발을 내딛을 때마다 발바닥에 느껴지는 얼음장 같은 차가움도 아직 까지 생생하다. 이상하게 그 차가움이 가슴을 더 요동치게 만들었다.



아침으로 시리얼과 토스트를 먹었다.

다양한 잼들과 버터가 있었다.

보통은 잼을 많이 발라 먹었는데 버터가 마치 잼과 같은 그룹 인양 옆에 있으니 '오오 이것이 런더너의 아침 식사인 것인가' 하고 빵에 버터를 발라먹었다. 영 내 입맛은 아니었다.(하지만 여행 한 달 차에 접어들자 빵에 버터가 아니면 뭘 발라먹는단 말인가! 를 외친 나였다.)


밥을 먹고 부엌과 연결된 발코니로 나왔다. 런던의 아침이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다시 한번 무사히 잠을 잤다는 것에 감사하며 집으로 인터넷전화를 했다.

집에 잘 도착했다는 안부전화와 어제 노숙할 뻔한 사연을 전하였다. 엄마의 한껏 고조된 목소리에서 내가 이 먼 땅에 도착해 하루를 보냈다는 것에 나만큼이나 신기해하는 것이 느껴졌다.



지도를 찾아보니 숙소와 버킹엄 궁전은 그리 멀지 않아서 아침 공기를 마시며 걸어가기로 결정했다.

날씨도 좋고 기분도 좋았다. 조깅을 하는 사람 자전거를 타고 운동하는 사람들이 몇몇 보였다.  버킹엄 궁전에 가까워 오자 처음 숙소를 나섰을 때보다 사람들이 많아지더니 어느새 북적북적 거리기 시작했다.

우리는 이곳을 즐기러 가고 이 곳 사람들은 일을 하러 가고 있었다. 어쩐지 승자의 느낌이었다.


싱그러운 아침이었다. 햇살은 눈부셨고, 하늘엔 구름 한 점 없었다. 날씨가 의외로 쌀쌀했다. 일교차가 큰 초봄이나 초가을 같은 느낌이었다.



울창한 숲과 같은 세인트 제임스 공원의 모습이 보였다.

교대식까지는 아직 시간이 있었다. 그냥 기다릴까도 했었지만 너무 추워서 버킹엄으로 오다가 보았던 카페에 가기로 했다.


카페에 들어가니 중년의 영국 여자가 우릴 쳐다보았다. 약간 몸집이 있었고 갈색 머리를 가지고 있었다. 그다지 온화해 보이는 인상은 아니었다. 오히려 약간 서늘한 인상쪽에 더 가까웠다.

커피와 핫초코를 주문했다.

원어민에게 영어를 하는 것은 실로 오랜만이라 어버버 거리면서 주문했다.


어색한 주문을 마치고 카페 안쪽으로 들어와 자리를 잡았다.

중년커플과 잘 차려입은 노년의 신사가 자리를 잡고 앉아있었다. 잘 차려입은 그 신사는 등 뒤로 햇볕이 들어오는 자리에 앉아 조용히 신문을 들여다보고 있었고, 옆 테이블의 중년커플은 마주 보고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Londoner의 일상을 훔쳐보는 느낌이었다.

따뜻한 커피가 나오고, Londoner에게 향한 눈을 돌려  카페를 둘러보았다. 카페는 무척 아기자기했다. 각 테이블 위에 올려둔 생화가 이곳의 분위기와 카페 주인의 정성을 말해줬다.

카페 안에는 화장실도 있었는데 화장실마저 굉장히 섬세한 소품들로 잘 꾸며져 있었다.

무료 와이파이 아기자기한 소품들 , 그리고 런더너의 일상, 우연히 들어온 것 치고는 참 마음에 들었던 곳이었다.


아침 10시 45분쯤 다시 버킹엄 궁전으로 갔다.

처음 갔을 땐 텅텅 비어있던 곳이 어느덧 관광객들로 발디들 틈이 없었다.


작은 키 덕분에 잘 보이진 않았지만 그리 큰 의미를 둔 곳은 아니었기 때문에 자리를 털고 다음 장소로 향했다.



궁전을 등 뒤로 하고 런던아이의 모습이 보였다.

가까울 것 같아 걸어가 보자 하고 그곳까지 걸었다.


영국에 있는 동안 공원이나 가로수 들이 참 웅장하다는 것을 많이 느꼈다. 나무들도 우리나라에서는 쉬이 볼 수 없는 큼직큼직한 나무였다.

나뭇잎들이 햇살을 받아 반짝반짝 빛났다. 광관객 들은 공원에 사는 다람쥐에게 먹이를 주기도 하고 사진을 찍기도 하면서 여행을 즐겼다. 그 평화로운 모습이 참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이 공원에는 공중화장실이 있었다. 그것도 무료인 공중화장실 말이다.

유럽에서의 무료화장실이라니. 그것도 이렇게 야외에서! 돈 없는 가난한 여행객들은 무료화장실을 만나면 무조건 들어가고 본다.

우리나라에서는 그토록 흔하던 공중화장실 사용이 이곳에서는 감동이었다.



Admiralty Arch


Big Ben
Palace of Westminster
Westminster Abbey


London Eye


런던아이를 따라 무작정 Birdcage walk를 걸어갔다. 버킹엄 궁전에서 빅벤까지 연결되는 길이었다. 영국의 상징물인 빨간 2층 버스와 빨간 전화박스가 곳곳에 보였다. 지극히 유럽풍의 건물과 영국의 국기도 곳곳에 보였다. 다섯 발자국 걸을 때마다 눈 뜬 심봉사처럼 두리번두리번거리 곤 했다.

그렇게 얼마나 걸었을 까 빅벤의 모습이 보이는 듯했다. '빅벤인가? 저게 빅벤 맞나?' 기대감에 점점 걸음은 빨라졌다. 여행을 오기 전 세부일정은 명확히 정한 게 아니어서 자세한 정보는 없었지만 걸음을 걸을 때마다 명확해지는 것은 빅벤의 모습이었다.

빅벤 뒤에는 해가 걸려 있어서 눈을 똑바로 뜨고 볼 수 없었다. 한 손으로 햇빛을 가리며 한 동안 빅벤을 쳐다봤다. 나에겐 이곳이 영국이다! 는 랜드마크가 빅벤이었다.   





빅벤을 첫 번째로 웨스트민스터 사원, 국회의사당, 런던아이를 보고 딱히 목적 없이 이곳저곳 걷기 시작했다.  점점 배가 고파져 눈에 보이는 Tesco에 들어갔다. 샌드위치가 종류별로 많았는데 음식에 관해 명성(?)이 자자한 영국이어서 무난한 치킨으로 골랐다. 역시나 닭은 우릴 배신하지 않았고 샌드위치는 너무 맛있었다.



간단히 점심을 해결하고 내셔널 갤러리로 들어갔다.

내셔널 갤러리는 주로 중세부터 초기 르네상스 시대까지 작품들을 전시하는 곳이다. 보티첼리, 렘브란트, 베르메르, 터너, 고흐, 세잔 등의 작품을 전시하고 있는 미술관이라고 한다.

또 한 번 말하지만 여행을 오기 전 거의 조사를 안 해왔던 터라 내셔널 갤러리에 어떤 작가들의 작품이 있는지 몰랐다. 여행 무식자들은 그저 여행을 떠나는 것에만 의의를 둔 것이다.


대학교 1학년 때 미술교양과목을 들었었다. 신입생일 때 수강신청에 실패해서 혼자 들었던 강의였는데 조별과제까지 있던 수업이었다. 지금은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그래도 나름 미술에 관심을 가지게 만들어준 수업이었고, 교수님이 여러분들도 유럽여행을 가거든 미술관을 가보세요  분명히 갈 기회가 있을 거예요라고 했던 게 기억난다. 나에겐 너무나도 멀게 느껴지는 루브르라던가 오르세라던가 바티칸을 교수님이 갔다 왔다는 게 부럽고 신기했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앞으로의 인생에 내가 유럽에 갈 거라는 것은 생각도 안 해봤고, 그런 기회가 없으리라고 생각했었다. 오 년이 지난 지금 생각해 보면 너무나 많은 가능성을 가진 시절이었는데 스스로를 한계 짓고 규정했었던 것 같다.

그런데 내가 지금 영국의 국립미술관인 내셔널 갤러리 앞에 와 있다. 내셔널 갤러리에 어떤 작가들의 작품이 있는지 몰라도 들어가 볼 가치는 충분했다. 아니 차고 넘쳤다.


내셔널 갤러리 앞에는 사람들이 북적였다. 버스킹을 하는 사람들 혹은 우리처럼 앉아서 간단히 요기하는 사람들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 활기찬 모습이었다. 오히려 미술관 안에는 사람들이 별로 없었다.

작품들을 보면서 너무나 대단한 작품들이라는 것은 느껴졌지만 이 작품에 어떤 이야기가 담겨있는지 모르니 깊은 감동은 오지 않았다. 그게 무척이나 아쉬웠다.


아침부터 걸어 다녀서 어느 정도 체력이 떨어질 시간이었다. 내셔널 갤러리에서 멍하니 앉아있다가 근처에 캠든 마켓으로 향했다.  

원래 계획은 많은 관광객들이 찾는 노팅힐의 포토벨로 마켓을 가는 것이었지만, 토요일에 마켓이 가장 크게 열린다는 말을 듣고 계획을 접었다. 하필 우리가 떠나는 요일이 토요일이었다.


캠튼 마켓은 고스 펑크 등 하드록풍 의류나 액세서리를 파는 곳이기 때문에 그 분위기가 독특하다. 그 독특함에 놀란 사람이 바로 나인데 하드록 풍의 물건들을 파는 곳인 지 모르고 갔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또 한번 사전조사의 중요성을 느낀다. 액세서리나 의류를 파는 상점들은 빽빽하게 들어차 있어서 물건을 구경하는 것이 마치 미로를 거니는 듯했다. 나는 고스 나 펑크 쪽과는 거리가 멀기 때문에 사고 싶은 것이 아무것도 없었지만 친구가 스카프를 사고 싶다 하여 한 상점을 들어갔다.

상점에서 물건을 파는 사람은 주인은 아닌 듯했는데 판촉을 하는 행세나 어딘지 모르게 눈빛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기분이 그런거겟거니 했지만 우리는 이 곳에서 사기를 당할 뻔했다. 

일명 '밑장 빼기'

예를 들면 사기 의도를 가진 점원은 손님에게 10파운드를 받고 그 10파운드를 원래 가게의 거스름돈으로  가지고 있는 5파운드 밑으로 집어넣는다. 그리고 5파운드에 물건값을 뺀 거스름돈을 준다. 그러면 당연히 손님은 거스름돈을 적게 줬다며 항의를 한다. 하지만 점원은 자기가 받은 돈은 5파운드라며 돈 통의 5파운드를 보여주며 불 과 몇 초전 본인이 손님에게 돈을 받고 돈통에 넣었을 때의 행위를 재현한다. 이게 얼핏 보면 그런 건가 싶지만 그 5파운드 밑에는 손님이 낸 10파운드가 숨어있다.

글로 이해 될지 모르겠지만 하여튼 우리 눈 앞에 사기꾼이 서있었다. 호락호락 넘어갈 우리가 아니었다. 우리는 설치된 cctv를 보자며 강하게 항의했다. 결국 제대로 거스름돈을 거슬러 받았다. 하지만 이 실랑이는 너무 안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다. 다시 영국에 가서 똑같은 사기를 당하면 (운이 좋아 그 사기꾼이 다시 나타나면) 타짜의 김윤석 배우처럼 손목을 낚아채리라

쉽지 않은 여행 쇼핑도 쉽지 않다.


버스를 타고 숙소로 돌아가기 전 현금을 인출하기 위해 캠든 마켓 근처 ATM기를 찾았다. 쉽게 찾을 수 있었지만 놀라운 것은 ATM의 모습이었다. 보통 우리나라의 ATM은 은행 안에 있거나 혹은 부스 안에 있는데 여기는 ATM이 그냥 길거리 벽에 붙어있었다. 아무런 가림막도 없고 그냥 정말 누가 ATM 화면만 벽에 박아놓은 것처럼

고스, 펑크 하드록풍을 파는 캠든 마켓의 분위기와 ATM 화면이 말 그대로 벽에 붙어있는 광경을 상상해보시라 

혹시라도 있을 소매치기를 막기 위해 필사적으로 돈이 나오는 곳을 사수하며 돈을 뽑았다. 그리고 돈을 꼭 움켜쥐고 그대로 그곳에서 달아났다.  

문화충격이었던 인출을 마치고 후에 숙소에 돌아와 들으니 다른 나라는 몰라도 영국에서는 안전하다고 했다. 오히려 지나가는 사람들이 인출하려고 하면 일부러 눈을 다른 곳으로 돌린다고... 하지만 어쨌든 이건 돈을 뽑는 사람이나 그곳을 지나가는 무고한 행인이나 피곤한 일임에 분명하다.





런던은 낮보다 밤이 더 아름답다는 말에 즉흥적으로 야경을 보러 나왔다. 우리 숙소 앞을 다니는 버스는 24시간 운행되는 버스였기 때문에 마음 놓고 숙소를 나섰다.  그래도 늦은 시간이라 무섭긴 했지만 거리엔 사람들이 많았다. 여러 코스툼 복장을 하고 사진을 찍어준다고 친절히 접근하여 돈을 요구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런던아이와 빅벤의 야경을 보러 가는 길에 이런 장사꾼들이 너무 많아서 떼어내는대도 고역이었다. 영국이란 나라에는 이런 행위들이 없으리라 생각했지만 그건 나의 편견이었다. 세계 어딜 가나 사람들은 치열하게 살아가고 있었다.


아침에도 약간 쌀쌀했는데 밤이 되니 너무 추웠다. 오월의 일교차를 예상 못하고 가벼운 차림으로 나온 우리는 아름다운 야경보다 따뜻함이 우선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덜덜 떨면서 만족할 만한 수의 사진을 찍고, 버스정류장으로 향했다.

하지만 숙소로 돌아가는 길도 우리에겐 쉽지 않았다.  숙소로 가는 버스가 한국의 버스 노선처럼  내린 방향의 반대편에서 타면 자신이 왔던 곳으로 데려다주는 양방향 노선이 아닌 일방향 이었던 것이다. 우리는 당연히 양방향 노선을 생각하고 내렸던 버스정류장의 반대편으로 갔지만, 그곳은  버스가 오지 않았다. 결국 근처의 버스정류장을 돌아다닌 끝에 새벽 12시가 넘어서야 제대로 된 방향의 버스를 타고 숙소로 갈 수 있었다.

머리가 나쁘면 몸이 고생이라는 말이 맴돌았다. 제대로 된 여행 첫날 숙소에 들어가는 길도 방심하면 안 됬었다.

버스를 타고 오는 동안 우리는 말이 없었다. 그렇게 무사히 숙소로 돌아왔다. 어제처럼 단잠을 잘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고단한 여행 둘째 날의 마무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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