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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전 Oct 28. 2021

난관에 대한 두려움으로
무능해지지 말라

프레이리의 교사론

두려움과 어려움 |


  우리는 두려움을 느낄 때
먼저, 그 두려움에 실제적인 이유가 있는지를
객관적으로 확인해야 합니다. 


  수업 시작종이 울리고 수업을 해야 하는 반으로 다가가 교실문을 열기 직전, 문득 두려움이 스쳐 지나갈 때가 가끔 있다. 방금 내가 '두려움'이라고 표현은 했지만, 사실 정확하지는 않다. 그 느낌은 '긴장'일 수도 있고 뭔지 모를 '불안'일 수도 있다. 그 당시에는 왜 그런 기분을 느끼는지 알고 있었을 테지만 지금은 구체적으로 기억나는 것은 없고 단지 이미지만 남아있다.


  프레이리는 교사들에게 어려움에 대한 두려움으로 무능해지지 말라고 충고한다. 어려움이란 어떤 상태에서 장애가 나타날 때 쓰이는 말이다. 그는 두려움을 해소시키기 위해서는 어려운 것이 무엇인지 두려움을 촉발하는 것이 무엇인지 곰곰이 잘 생각해보는 데서 시작하는 것이 가장 좋다고 하였다. 즉, 어떤 두려움을 느낄 때 먼저, 그 두려움에 실제적인 이유가 있는지를 객관적으로 확인해야 한다는 것이다.


  '두려움'이란 '실질적인 위험이나 상상 속의 위험에 대해 알기 전에 느끼는 불안감'을 의미한다. 그는 두려움의 주체와 대상 사이에 존재하는 불안감을 언급하며, 현실적인 것이든 상상에 의한 것이든 불안감은, 주체의 신체적인 힘이 부족하거나, 정서적인 안정감이 부족하거나, 과학적 인식능력이 부족한 데서 기인한다고 하였다. 여기에서 쟁점은 두려움을 유발한 그 위험이 발생할 가능성이 적거나 허구적일 때조차도 두려움을 부정할 수 없다는 점이다. 두려움 자체는 구체적이다. 그리고 문제는 두려움 때문에 무기력해져서도, 포기해서도 안 되고, 아무 노력이나 투쟁 없이 상황에 맞서서도 안된다고 강조한다.


  나의 경우, 수업 전 교실 문 앞에서 느꼈던 두려움의 원인은 학생들과의 관계나 수업 운영에 대한 것이 대부분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러나 '두려움'은 비단 학교뿐 만이 아니라 사회생활이나 개인적인 생활에서도 긴장감이나 소소하게 불안한 느낌처럼 일상적으로 느낄 수 있는 감정이다. 특히 사람과의 관계에서 오는 불안감은 누구나 겪고 있는 문제이기도 하다. 그래서 나는 학교에서 스치듯 지나가는 그런 감정을 그다지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고, 또 중요하게 여기지도 않았다. 그리고 그 순간이 어떻게든 지나가버리면... 곧 잊어버렸다.



텍스트를 이해 못 하는 사람들의 두려움 |


둘째로, 실제적인 이유가 존재한다면,
우리는 두려움의 이유와 그 이유를 성공적으로 극복하는 데
유용한 대안들을 맞대결시켜야 합니다.


  『프레이리의 교사론』에서 일관되게 '읽기'를 강조하고 있는 프레이리는 '텍스트를 이해 못 하는 사람들의 두려움'에 대한 대처 방안을 이야기하고 있다. 텍스트는 좁게는 교과서나 어떤 글의 원문 또는 읽기 자료 등을 의미하고, 넓게는 사람, 도서, 상황, 사회 문제와 같은 다양한 세계를 텍스트로 표현할 수 있겠다.


  텍스트를 이해하는 일은 교육의 핵심인 발견의 과정에 꼭 필요한 것이다. 학생들만이 아니라 가르치면서 배우기도 하는 교사에게도 말이다. 그는 누구든지 텍스트를 이해해야 하는 과제를 받았을 때, 먼저 개인의 대처능력이 과제의 수준과 일치하는지, 미흡한지, 능가하는지를 알아야 하고, 대처능력이 미흡하더라도 쉽게 포기해서는 안되며, 공부하는 일은 많은 노력이 필요한 일이기 때문에 엄격한 스스로의 내부 규율을 만들어야 한다고 한다.


  '텍스트를 이해 못 하는 두려움'을 극복하는 데 유용한 대안으로 프레이리가 제시한 내부 규율은 사전이나 백과사전과 같은 참고자료를 활용하기, 자신의 생각을 검증하지 않은 채 이해했다고 주장하지 않기, 중간 정도 읽고 다른 상상 속으로 빠져버리지 않기, 인식론적인 호기심을 가지고 텍스트를 이해하기(인식론적인 호기심이란 대상과 적절히 거리를 둠으로써 그 대상의 베일을 벗기려는 의도와 즐거운 마음으로 대상에 '접근하는' 것을 말한다), 대상을 정서와 직관의 수준에서 파악하는 것을 넘어서서 진지하고 엄격하게 탐구하기 등이 있다.


  프레이리의 글을 읽고 나는 나를 돌아보았다. 내가 느꼈던 두려움에 대한 나의 대처는 비록 스쳐 지나가는 가벼운 것이었다 하더라도 정면으로 맞서 두려움을 인지하고 극복하기보다 모른 체 외면해버린 것에 더 가까웠다. 아이들과의 관계도 마찬가지겠지만 수업을 운영할 때 느끼는 불안감에 대해서는 이유를 관찰하고 대안을 모색하여 정면으로 극복해야 한다. 그때는 나름대로 최선이라고 생각하며 대처했지만 프레이리가 강조하고 있는 '읽기'를 중심으로 대안을 생각해보진 않았다. 관계가 원인이라면 '세계 읽기', 수업 운영이 원인이라면 '텍스트 읽기'에 대한 대안들을 고민하고 대처했었다면 더 나은 교사가 될 수 있지 않았을까. 초임 시절에 프레이리를 만나지 못했던 것이 못내 아쉽다.



헌신적인 읽기 |


  프레이리에 의하면, 텍스트 읽기는 독자와 저자 간의 만남을 매개하는 텍스트와 독자 간의 교류이다. 텍스트 이해는 책장을 넘길 때마다 저절로 쌓이는 것도, 고정되어 있는 것도, 정체되어 있는 것도 아니며 오직 독자들이 밝혀주기만을 기다리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비판적 읽기는 읽은 바를 '다시 쓰는 것'이며 그래서 독자인 내가 저자의 정신을 놓지 않으면서 텍스트를 다시 진술한다는 점에서, 텍스트 읽기는 독자와 나와의 공동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텍스트의 가장 심오한 의미를 창조하기 위해 프레이리는 읽은 것에 대해 서로 대화하는 경험으로 집단적 읽기를 할 필요가 있다고 한다. 집단적 읽기란 서로 다른 관점의 제시이며, 이 가운데 각 관점들이 서로에게 노출되기 때문에 더욱 풍부하게 텍스트를 이해할 수 있게 해 준다. 집단적 읽기를 위한 준비과정에서, 각 참여자들은 개별적으로 읽고 이런저런 학습도구를 참고하며 텍스트의 특정 부분에 대해서는 다양한 해석을 한다. 읽은 것에 대한 이해를 창조하는 이 과정은, 저자의 의도가 핵심적으로 들어 있는 부분에 대해 다양한 관점으로 대화하면서 조금씩 이루어진다.


  독자들이 저자의 의도를 제대로 이해할수록 점차 텍스트의 의미를 새롭게 창조하는 사람이 되며, 이렇게 이해된 것은 텍스트 읽기를 통해 독자에게 단순히 축적된 지식이라기보다는 점차 독자가 창조해내는 지식이다. 즉 저자가 말한 대상을 비판적으로 이해할 때, 독자는 텍스트의 의미를 아는 것이고 그 의미를 공동으로 창조하는 사람이 된다. 이때 독자는 텍스트의 의미를 연구하고 또 연구한다. 따라서 읽기는 저만치 떨어져 가만히 앉아 기다리는 작업이 아니며, 여기에 읽기 활동의 어려움과 매력이 있다. 그리고 이 과정이 바로 헌신적 읽기로 이해된다.


곧장 극복할 수 없는 장애물이 있다면,
우리는 가까운 장래에 좀 더 잘 극복할 수 있는 쪽으로
조치를 취해야 합니다.


  그러나 프레이리가 지적한 대로 나는 학생들이 텍스트를 앞에 두고 그저 수동적으로 학습하도록 가르쳤던 것 같다. 자신의 말로 해석을 해보게 하는 대신 텍스트의 용어를 그대로 모방하여 암기하게 하였고, 수업 속에서 상상력을 발휘하는 기회를 제공하기보다 텍스트 내용의 담론을 기계적으로 되풀이하는데 그친 것이 아닌지 반성된다.


  '텍스트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는 것은 금방 이루어지는 일이 아니다. 그래서 이것을 당장 극복할 수는 없더라도 차근차근 극복하려는 마음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프레이리는 학생들에 대한 읽기 학습에서는 교육자가 중요하다고 하였다. 읽기 학습은 쓰기 학습과 분리될 수 없는 만큼 학습자들은 읽기와 쓰기에 동시에 몰두해야 한다. 교사가 텍스트를 도식화하는 훈련과 저자의 전체 담론에서 주제 간의 상호 작용을 알아내게 하는 등의 다양한 읽기 활동과 같은 비판적 실험을 학습자들에게 제공을 한다면, 학습자들은 언어와 의사소통 그리고 지식의 생산이 구성되고 또 재구성되는 사회적 구상을 파악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교사로서 텍스트를 이해하고 읽은 것을 다시 쓰는 비판적 읽기, 나아가서 헌신적인 읽기를 지속적으로 이루어간다면, 그저 스쳐 지나가는 것이더라도 수업 운영과 관련되는 두려움으로 인해 스스로 무능해지는 것을 멈출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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