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일에 한 번씩 시골에서 택배가 온다. 엄마의 택배이다. 택배 상자 속에는 부추, 상추, 토마토, 블루베리, 아스파라거스 등 한 주 동안 먹을 야채와 과일이 들어있다. 모두 엄마가 손수 재배한 것들이다. 상자를 열 때마다 뭉클 따뜻함이 밀려온다.
정년을 채우지 않고 엄마는 교수직을 내려놓으시고는 고향 마을로 떠나셨다. 그리고 농부가 되셨다. 농부의 딸이었던 그녀는 세 살때부터 할아버지가 밭에서 채소를 기르는 모습을 지켜보곤 했다고 한다. 그때의 기억이 평생 그녀의 마음속에 생생하였다. 농사는 어린 소녀의 마음에 매우 흥미로운 일로 느껴졌던 것이다. 그 기억은 언젠가 농부가 되겠다는 마음으로 이어졌고, 농부의 꿈은 타지에서 직장생활을 하고 아이를 기를 때에도 거침없이 자라났다.
예순 살이 넘어 몸이 더 이상 버텨주지 못하게 되자 엄마는 미련 없이 서울을 떠났다. 그때쯤 아빠와도 이혼이나 마찬가지인 상태로 몇 년째 왕래를 하지 않고 있었고, 성인이 된 나와 동생도 평생 우리에게 싸늘했던 엄마를 미워하고 있었다.
엄마가 농사를 짓든 말든 아프든 말든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아니 그럴 수가 없었다. 나도 허리 통증으로 다니던 항공사를 그만두게 되었고, 평생의 소울메이트라고 생각했던 사람에게 매정하게 버림받았다. 내 아픔이 너무 커서 엄마를 돌 볼 겨를이 없었다. 돌이켜보면 그럴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 이해되면서도 아무런 가족의 지원이나 격려도 없이 땅을 일구고 새로운 삶을 개척한 엄마의 강인함이 존경스럽다.
엄마가 보내주신 택배 상자엔 가끔 벌레들이 딸려 들어온다. 3년 전이었나? 처음 보는 거대하고 징그러운 벌레가 택배 상자를 열자마자 기어 나왔던 기억이 있다. 순간 나는 집이 떠나갈 듯 비명을 질렀다. 죽이기도 무서워 신문지에 싸서 후다닥 밖에 내던졌다. 그리곤 성화를 내며 엄마에게 전화했다. "어떻게 이렇게 보낼 수 있어? 얼마나 놀랐는 줄 알아? 그냥 보내지 마!"
그래도 엄마는 계속 택배 상자를 보내셨다.
"내가 이걸 왜 기르는데, 나도 먹지만 너희 먹이려고 기르는 거잖아." 그렇다. 엄마는 자신만을 위해 유기농 채소들을 정성껏 기르는 것이 아니었다. 가족들에게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으로 사랑을 표현하고 계신 것이었다. 엄마의 마음을 헤아리고 나서부턴 벌레가 끔찍이 무섭지만, 군말 없이 참기로 했다. 하긴, 벌레는 커봤자 엄지 손가락보다 크지는 않다. 나보다 훨씬 작은놈이 나를 죽일 수는 없을 것이다. 무섭고 징그럽기는 하지만, 그건 단지 느낌이니까 엄마의 정성과 마음을 헤아려 그냥 견디자!
며칠 전, 택배상자에는 커다란 달팽이가 들어있었다. 달팽이가 들어있는 건 처음이었다. 또 달팽이를 본 것도 아주 오랜만이었다. 아무 데나 버리기는 어려워서 상춧잎 몇 장과 함께 뒷산으로 가져가 풀어주었다. '이곳에서라면 짐승들 먹이가 될 수는 있어도 사는 동안 잘 지낼 수 있을 거야.'
달팽이를 한참 바라보았다. 당연한 거지만 무지하게 느릿느릿 움직였다. 그 모습이 나와 참 닮았다고 생각했다. 나는 정말 급한 순간을 제외하곤 뭐든 느린 것을 좋아한다. 행동이 마음의 속도보다 빨라지면 불안하다고나 할까? 걸을 때도 천천히 걷고 작업을 할 때도 내 속도에 따라 움직인다. 그래서인지 달팽이를 보자 친근감이 느껴졌다. 어쩌면 달팽이는 '느림'의 메시지를 전해주려 나를 찾아온 것일지도 모른다.
집으로 돌아와 야채를 씻으며 엄마의 마음을 헤아리고 품어보았다. 여자로 살아온 힘겨움, 홀로 두 아이를 길러온 고통과 외로움, 타지에서 성공을 붙잡으려 쉼 없이 달려왔을 불안함과 수많은 두려움, 억울하고 서러웠을 순간들... 그리고 자신과 가족의 생에 대한 열정과 사랑... 그 모든 것은 내 안에도 살아있는 감정들이었다. 엄마가 기른 야채를 씻으며 그 모든 감정들은 눈물 한 방울로 떨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