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받아들임'과 '내맡김'
지난 글에서 '감정'에 대한 첫 이야기를 시작했는데요, "감정은 내가 마음대로 조종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며 그냥 사라지지 않는다."라는 문장으로 요약할 수 있겠네요. 정말 그래요. 특히나 오랫동안 가슴속에 묵혀놓은 감정은 당연히 내 마음대로 바꿀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가라앉힌다고 결코 저절로 사라지지는 않아요. 오히려 해결하려고 들고 나서면 해결되지 않고 오히려 감정은 제멋대로 날뛰게 됩니다.
감정은 해결하려고 들면 해결되지 않는다.
감정... 통제할 수도 없고 가라앉힌다고 완전히 사라지는 것도 아니라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제가 공부와 실험을 통해 지금까지 알게 된 감정을 대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받아들임'과 '내맡김'입니다. 그런데 '감정을 받아들인다', '감정을 수용한다'는 것이 참 묘해요. 감정을 수용한다는 것이 아주 헷갈리거든요. "화가 나고 억울해 죽겠는데 이걸 수용한다는 게 말이 돼? 억누르는 것과 뭐가 달라?" 이런 생각이 들 겁니다. 아니면 또 이런 경우도 있겠죠. 예를 들어, 누군가를 죽이고 싶을 정도로 미운 감정이 든다고 해볼게요. 이 감정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가 어려울 수 있어요. 누군가를 극단적으로 증오하는 감정은 부정적 감정이라고 여기기 때문에 이 감정을 헤아리고 공감하려고 시도하기가 꺼려지는 건데요, "누군가를 이렇게 증오하면 안 돼!" 이런 생각이 자동적으로 튀어나올 수 있습니다. 그 증오의 감정을 보았을 때, 그 감정이 예상보다 훨씬 크고 거셀까 봐 두렵기도 하고 그런 무서운 감정이 나를 막무가내의 행동으로 이끌 수도 있고, 또는 그 감정을 느끼는 것 자체가 죄책감까지 느끼도록 만들 수 있기 때문에 그 증오의 감정을 열어보기 싫을 수 있습니다. 당연합니다. 그리고 함부로 열어보지 않는 것이 지혜로울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내버려둬도 감정은 사라지지 않기 때문에 언젠가 열어볼 용기를 내야할 시점이 올 텐데요, 억지로 받아들일 수는 없기 때문에, 뒤따라오는 방법이 '내맡김'입니다. 내가 이 감정을 품기에는 역부족이니, '나'는 감정을 받아들이거나 통제하기를 포기합니다. 대신, 내 마음 깊은 곳의 모든 것을 품는 거대한 사랑, '더 큰 나'가 내 감정을 받아들여 치유하도록 내맡기는 겁니다. 그 거대한 사랑에게 내 마음을 거짓을 전혀 붙이지 않고 아주 솔직하게 여과 없이 다 털어놓고 풀어놓고 그것이 해결하도록 완전히 내맡겨두는 거예요.
거짓없이 여과없이 아주 솔직하게 다 털어놓고 풀어놓고
그러면 이 거대한 사랑이란 뭘까요? 사실 '거대한 사랑' 혹은 '더 큰 나'라는 것은 일시적으로 붙인 이름일 뿐이지 '거대한 사랑'을 '거대한 사랑'이라고 표현하는 것도 좀 어색한 것 같고, '더 큰 나'라는 표현이 적절한지 도 잘 모르겠어요. 아무튼 이것을 말로 표현하기는 아주 어려운 것 같아요. 하지만 저는 우리 모두 안에 이것이 있다고 믿어요. 음, 어떤 분들은 이 말을 들으면 종교적인 것이라고 생각하실 수도 있지만, 굳이 종교적인 개념이나 철학을 빌리지 않아도 일상 속에서도 이것이 작동한다고 생각해요. 저 자신도 종교적 체험을 한 것이 아니고요.
사실 전 종교가 있는 것도 아니에요. 엄마를 따라 성당을 다녀보기는 했지만, 왠지 잘 가게 되지 않았어요. 하지만 문학, 예술, 철학 그리고 삶의 경험들을 통해서 사람의 마음속 깊은 곳에는 일상적인 감정을 넘어선 훨씬 큰 무언가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죠. 사실 이런 느낌을 우리는 드물게나마 직접적으로 간접적으로 경험하게 되는 것 같아요. 마더 테레사나 이태석 신부님처럼 자신의 개인적 행복 너머 고통받는 사람들을 위한 사랑을 실천하신 분들을 보면서 우리는 우리 안에도 모든 아픔을 끌어안을 수 있는 힘과 수용의 마음이 있다는 것을 어렴풋 짐작하게 되지요. 꼭 특정한 봉사의 삶을 실천한 삶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주변 사람들 혹은 자기 자신 속에서 경험을 통해 이 거대하고 제한 없는 사랑을 때때로 경험하게 됩니다. 그럴 때 우리는 가슴이 뭉클해지며 눈물을 쏟기도 하고, 활짝 마음이 열려버리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그 마음(모든 것을 품는 거대한 사랑)에 내 고통과 아픔, 모든 감정들을 '내맡기'는 거예요. 꼭 커다란 아픔이 아니더라도 작은 짜증이나 슬픔 등도 그 마음과 함께하면 따뜻하게 품어져요. 칼에 베어진 상처가 아물듯 자연스러운 치유 과정이 일어나도록 되어 있는 것 같아요.
한 사람의 마음속에는 인류가 겪었던 수많은 감정들, 생명체가 탄생하면서부터 누적된 본능들이 있지요. 그런데 인간의 편의를 위해 인간 스스로 만든 기계적이고 통념화된 문화 속에서 우리의 수많은 느낌들이 쓸모없고 걸리적거린다고 무시되기 일쑤예요. 그리고 무시된 마음들은 무의식 속에 누적되어 아픔이 됩니다. 때문에 개인적으로 우리 모두 마음을 돌보는 일이 생활을 가꾸고 건강을 신경 쓰는 일만큼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오늘은 감정을 대하는 방식인 '받아들임'과 '내맡김'에 대해 간단히 이야기를 해보았는데요, 구체적인 사례가 부족해서 보충이 많이 필요할 것 같아요. '받아들임'과 '내맡김'과 관련한 흥미로운 에피소드들을 차례차례 풀어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