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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르보르 Aug 24. 2023

일단 시작은 속닥속닥, 웅성웅성

기후위기, 일단 작은 대화부터

"행복의 첫번째 조건은 인간과 자연의 관계가 끊기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_ 레오 톨스토이


2주 전 쯤이었나? 연희동에서 친구를 만나기로 했다. 지하철 홍대입구역에서 내린 후, 연희동의 어느 식당까지 걸어야 했다. 그날도 역시 너무 더웠다. 폭염주의보가 떨어진 상황이었다. 15분 쯤 빠른 걸음으로 걸었다. 지글지글 끓는 땡볕 아래에서 피부가 녹는 듯했다. 대학 졸업 후, 중동의 어느 항공사에 취직해 카타르에서 살았던 경험이 있다. 한낮 기온이 50도가 넘는 사막의 도시를 걸을 때면 붉게 달궈진 프라이팬 위를 걷는 듯 엄청난 열기를 느끼곤 했다. 그런데 그날 홍대입구역에서 연희동까지 걸었던 15분, 분명히 이곳은 한국인데 시간을 거슬러 중동의 어느 사막 도시에 있는 기분이었다.


친구와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뭔가 마음 깊은 곳에서 답답하고 슬픈 감정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가방을 집어던지고 바닥에 주저 앉아 울음을 터뜨렸다. 이 눈물은 어디서 온 것일까? 울고 있으면서도 우는 이유를 몰랐다.


마음을 진정시킨 후, 차분히 울음의 원인을 더듬어보았다. 그러니까 그날 내가 느낀 공기의 질감은 한국의 여름의 것이 아니었다. 한국에서는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열기였다. 이런 열기가 올 여름 계속되었을텐데도 대부분의 시간을 에어컨이 있는 실내에서 생활하다보니 여름의 기후가 이정도로 변한 줄 몰랐다. 그런데 그 날, 홍대입구역에서 연희동까지 걸었던 15분 동안 나의 신체는 분명히 감지했다. 현재진행중인 심각한 기후위기에 대하여.


그런데 생각해보니 이상했다. 많은 사람들이 해마다 여름이 더욱더 더워지고 있고, 올여름도 심각하게 덥다는 것을 느끼면서도 기후위기에 대한 열띈 토론을 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는 사실이었다. '덥다. 덥다.', '오늘도 정말 덥다.'라는 대화가 수도 없이 오가지만, 막상 기후위기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면, '너는 기후위기에 관심 있니?' 라고 되묻거나 다른 쪽으로 말을 피해버리는 친구들도 있었다. 그럴 때면 조금 안타까웠다. 이건 우리 모두의 문제이고 그래서 함께 나누고 싶은 건데, 어떤 이들에게는 아직까지도 기후 위기에 대하여 관심을 갖는 것이 예외적이고 특이한 일인 것처럼 여겨진다니 말이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 기후위기에 대해 떠들어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은 할 일도 많고 고민도 많아서 기후위기까지 신경쓰기 어려울 수 있다. 또 기후위기라는 문제는 쉽게 결론이 나지 않는 복잡한 이슈이기에 회피하고 싶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분명히 우리에게 닥친 현실이고, 이것을 피한다면 그것은  화살이 내 앞으로 다가오는데 피할 생각은 않고 눈을 감는 것과 마찬가지이지 않을까. 우리가 함께 불편한 부분을 솔직하게 이야기하고 아주 작은 아이디어나 정보라도 떠들다보면 문제에 덧씌워진 두려움이 줄어들면서 창의적인 대안들이 나타날 수 있다. 그리고 국제 기구나 정부에서 추진하는 기후위기에 대한 대응에 대해서도 더욱 협조적인 자세를 취하거나 자신의 자리에서 어떤 역할을 더하는 등 뭔가 능동적인 태도를 취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까 기후위기에 대해 떠든다는 것은 삶을 대하는 삶에 대한 능동적인 태도의 실현이다. 문제를 회피하지 않고 받아들이면서 타인과의 소통을 통해 연결성을 회복하는 자발적인 과정인 것이다. 이런 능동적이고 자발적인 태도야말로 반복되고 피로한 일상의 패턴에서 벗어나 삶에의 의지를 회복시키며, 호모 사피엔스가 지닌 창의적인 능력을 최대치로 끌어올릴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한다. 특히 기후위기의 문제는 모든 사람의 생존이 걸린 공동의 문제이고, 그 안에 사회적, 문화적, 역사적 맥락이 긴밀하게 얽혀있는 문제인 만큼 우리가 이 문제에 대해 이런 저런 생각들을 허심탄회하게 떠들어 댈수록 인간 사회의 갈등과 고통을 수면 위로 끌어올리면서 자신과 타인, 사회에 대해 더 깊이 이해하고 대응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니 좀 시끄럽게 떠들어야겠다. 기후위기, 그리고 생명의 경이로움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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