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에게든 삶을 살아간다는 것은 쉽지 만은 않은 일일 것입니다. 아무리 좋은 조건을 갖고 태어난 사람에게도 삶은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사실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알 수 있습니다. 우리 대부분은 왜 태어났는지 정확히 모르는 상태에서 이 세계로 나와 어른들의 영향 아래 훈육되고 성장합니다. 순진한 아이는 살아가기 위해 교육 받고 환경에 적응하며 어른이 됩니다. 시간은 멈추지 않고 흐릅니다. 몸은 늙어가고 병이 들기도 하며 최종적으로 죽음을 맞이합니다.
결국 죽음이라는 종착지를 향해 달려가며, 생노병사를 겪는 존재가 ‘나’입니다.
’나’는 무엇일까요? 나에게는 몸이 있고 마음이 있습니다. 몸은 크게 머리와 몸통, 골반, 팔, 다리 등의 부위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 안에는 생명활동에 필요한 뇌와 내장기관, 그리고 눈, 코, 혀, 귀, 피부 등 감각기관 있습니다. 그 외에도 생명활동에 필요한 수많은 요소들이 활동하는 공간이 몸입니다.
몸과 함께 마음이 있는데, 마음은 몸을 통해 무언가와 접촉하면 생각과 감정을 일으킵니다. 또 몸과의 접촉이 없더라도 기억과 상상에 의존해 생각과 감정을 일으킵니다. 생존에 유익하거나 쾌감을 느끼게 하는 것, 좋아하는 것에는 쉽게 달라붙는 성질이 있고, 반대로 생존에 해롭거나 불쾌감이 느껴지는 것에는 저항하거나 회피하는 성질이 있습니다.
마음의 내용과 성질은 생명체가 환경해 적응하면서 진화로부터 물려받은 본능적인 것에서부터 문화와 사회의 영향을 받아 학습하고 프로그래밍 한 것들로 이로어져 있습니다. 컴퓨터에 어떤 소프트웨어를 담고 있는지에 따라 컴퓨터의 내용과 기능이 다르듯이 마음에 어떤 생각과 감정 패턴을 담고 있는지에 따라 사람들이 보고 느끼고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방식은 다릅니다. 사람마다 마음에 지닌 내용과 패턴, 구조는 다르지만,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어떤 대상을 만났을 때 좋아하는 마음, 싫어하는 마음 혹은 무관심한 마음으로 반응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반응들은 오랜 시간에 걸쳐 구축된 개인의 마음의 구조, 마음 속에 심어진 소프트웨어에 따른 것일 것입니다.
80억 명 이상이 살아가는 인간 집단을 떠올려볼 때, 나라는 개인은 그 중에 하나로서 전체에 비하면 아주 미약한 힘과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느끼게 됩니다. 무한이라고 부를 만큼 광활하게 여겨지는 우주에 비하면 ‘나’라고 부르는 존재는 찰라를 살다가 멸하는 작은 존재일 뿐임을 깨닫게 됩니다. 수많은 사람들과 인연들, 우주에 무수한 조건들이 만나면서 나타났다 사라지고 쉼 없이 변화하는 이 세계는 그 나름의 원인과 결과로 순환합니다. 결국 작은 나는 내가 원하는 것이 있더라도 조건이 맞지 않으면 이룰 수 없고, 영원히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 수도 없습니다. 몸은 한정된 시간 동안만 생명활동을 할 수 있는 일시적인 구조물이고, 마음 또한 영원한 실체는 아니니까요.
그런데 ‘나’의 마음은 쉽게 무언가를 욕망하고 집착합니다. 생존을 위해서 일 수도 있고, 쾌감을 느끼고 싶어서일 수도 있고, 자부심과 성취감 등 심리적으로 좋은 느낌을 얻고 싶어서일 수도 있고, 사회적으로 유익하다고 여기는 결과를 만들고 싶어서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단순히 무언가를 하는 것과 달리 욕망에는 무언가에 대해 탐하고 집착하는 성질이 있기 때문에 이 마음을 좇다보면 대상에 속박당하는 느낌을 받게 되고 그것은 괴로운 느낌으로 여겨집니다. 그럼에도 집착이 강해지면 그 대상으로부터 빠져나오기가 매우 어렵기 때문에 욕망은 괴로움으로 이어집니다. 또 집착이 강하면 원하는 결과를 해내기 위해 필요한 합리적인 사고와 선택에 어려움을 겪기 쉽습니다. 마음이 안정되지 못한 상태에서는 입체적으로 자신과 현실적 조건들을 파악하기 어렵고 신중하고 냉정한 선택을 할 수 있는 판단력이 흐려질 테니까요.
흔히 알고 있듯 사람의 욕망은 그대로 방치해두면 끝을 모르고 달립니다. 한정된 시간 동안 우주의 일부로서 생명활동을 하며 살아갈 수 있을 뿐인데, 갖고 싶은 것, 경험하고 싶은 것에 대한 집착은 한계를 모르고 커지기 쉽습니다. 원하는 이상은 크고 화려한데 현실이 그것을 따라주지 못하면, 하루 하루 일상에 평정심으로 충실하기보다 좌절감을 느끼고 우울해지기 쉽습니다. 욕망과 우울 사이를 왔다 갔다 하는 왕복운동. 그 패턴에 빠지면 현실 감각을 잃고 맙니다.
또 마음은 원하는 것에 집착하는 반면 원하지 않는 대상에 대해서는 싫어하는 마음, 혐오감을 일으킵니다. 혐오하는 마음이 작든 크든 그것은 그 자체로 불쾌한 느낌을 만듭니다. 그래서 의식적으로 혐오하는 마음을 다스리지 않으면 원하지 않는 대상을 피하거나 밀어내거나 공격하는 식으로 반응하게 됩니다. 혐오감을 느끼는 것은 스트레스가 됩니다. 생명 활동을 하는 몸과 마음에 해로운 것은 당연합니다. 게다가 무언가를 싫어하게 되면 그 마음에 휩쓸려 대상을 왜곡하게 되기도 합니다. 단지 옆에 사람이 일으키는 소음이 불편함을 일으켰을 뿐인데, 그 사람에 대해 지나치게 나쁜 평가를 일으키거나 불편함을 키워 화를 일으키게 되기도 합니다.
마음은 생명체가 진화하면서 특히 인간처럼 지적 능력이 뛰어난 생명체로 진화하면서 발달한 생존을 위한 도구이지만, 무의식적으로 집착하고 혐오하는 이 성질 때문에 쉽게 현상을 왜곡하게 하고 불안정한 심리 상태로 변하기도 합니다. 붓다를 비롯한 지혜로운 분들은 결국 고통의 본질적인 원인은 ‘무지’라고 했는데요, 마음이 무엇인지, 어떻게 마음이 만드는 고통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는지에 대한 지혜의 부족과 능력의 부족함을 의미한다고 여겨집니다. 마음을 이해하고 길들이는데 부족하고 미숙하고 서투르기 때문에 생노병사를 겪으며 괴로움을 반복할 수밖에 없다면, 어린 아이가 자전거를 배우듯이 수영을 배우듯이 마음에 대해 배우고 마음을 훈련하는 방법 밖에 다른 길은 없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배우고 훈련하며 성장하는 것보다 큰 즐거움이 또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