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무엇일까요? 40년 남짓한 시간 동안 ‘나’라는 것을 들여다보았지만 외부와 구분되는 무언가 특별한 것을 ‘나'로부터 찾을 수는 없었습니다. 몸은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유전자와 섭취한 음식으로 만들어졌고, 마음은 유전자에 입력된 정보들과 교육받은 내용들, 경험한 것들, 그리고 입력된 내용들을 편집하여 만든 기억들과 사유들로 이루어졌습니다.
‘나’라고 부르는 것은 의식이 기억을 직조해 만든 하나의 이야기일 뿐, 본질적인 실체는 없는 것 아닐까요? 기억들을 직조하여 이야기를 만들고, 그것을 ‘나’라고 인식하며 붙잡고 있지만, ‘나’는 새로운 경험을 하며 계속 변화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나’와 지금의 ‘나’ 사이에는 분명 차이가 있습니다. 지금의 ‘나’와 100일 후의 ‘나’는 또한 다를 것입니다. 몸을 구성하는 세포들도 새롭게 만들어질 것이고, 그 사이의 경험과 사유에 따라 다른 마음을 지니고 있을 것입니다.
‘나’라는 것이 변화하는 것이고, 본래 지닌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면, 얼핏 허무한 듯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면 그 만한 자유도 없는 것 같습니다. 먼지 한 톨보다 더 가벼운 존재로 ‘나’를 상상하면, ‘나’에 부여한 바윗덩이 같은 무게는 사라지고 민들레 씨앗처럼 홀연해지는 것입니다. 그러면 뭔가 꼭 그럴듯한 ‘나’, 남들에게 인정받아야 하는 ‘나’가 되어야 할 이유가 없어집니다. 억지로 틀지어 놓은 강박관념과 기준들도 저 멀리 날아가버립니다. ‘그저 지금 이렇게 살아있는 자체로 충분하다.’ 미풍에 흩날리는 스카프처럼 가뿐해집니다.
‘나’가 비워지면 그만큼 다른 사람이 좀 더 잘 보입니다. 나와 다른 생각과 취향을 가진 사람들에게 날을 세울 필요가 없습니다. 내 취향, 내 생각도 수많은 취향과 생각들 중 하나일 뿐이며 언제든 변할 수 있는 것이니까요. 내가 덜 중요해지는 만큼 타인을 존중할 능력이 생기는 아이러니. 세상은 다양한 모습들이 공존하기에 그만큼 더 흥미로워집니다.
‘나’를 만들어 다른 것들과 경계를 짓고 보호하려는 마음의 습성은 고질적입니다. 경계 지어진 울타리를 빼내어 서로를 잇는 다리로 만들면 더 넓고 흥미로운 세계가 열리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