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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르보르 Jun 19. 2023

소설. 젤리코리의 모험

젤리코리가 모험을 떠나는 날 온 마을 사람들이 모여 젤리코리를 배웅했어. 젤리코리가 살던 마을의 사람들은 모두 젤리코리를 사랑했어. 사실 젤리코리도 알고 있었어. 이 마을보다 더 살기 좋고 행복한 곳은 없다는 것을 말이야. 이 마을을 떠나는 순간부터 고생이 시작된다는 것도 수많은 모험가들의 이야기를 듣고 이미 알고 있었지. 젤리코리가 모험을 떠나는 이유는 간단해. 이 마을이 얼마나 행복한 곳인지 자신이 누구인지 모험을 통해서만 더 깊이 느낄 수 있기 때문이지.


배에 배낭을 싣고 있을 때, 마을의 베테랑 모험가인 고리모리가 젤리코리에게 편지봉투를 건네주었어. "젤리코리! 이 마을을 떠나는 순간부터 게임이 시작될거야. 그리고 너는 이것이 게임인지도 모르고 게임 속에 빠져들겠지. 때로는 무섭고 때로는 화도 나겠지만, 잊지마. 이건 게임이야. 하긴, 내가 이렇게 말해도 넌 곧 잊고 말거야. 모든 것이 게임에 불과하다는 것을 말이야." 고리모리의 말을 듣고 젤리코리는 웃으며 말했어. "고리모리, 걱정하지마세요. 저는 이 모험이 전부 게임이라는 걸 잘 알고있어요. 게임을 기꺼이 즐기겠지만 게임 속에 빠져 울진 않을 거예요. 모험에 관한 이야기라면 수천 번도 더 들었는걸요!" 젤리코리가 자신있게 말했어. "말이야 쉽지. 어쨌든 정말 위급할 때 이 편지를 꺼내 읽어 봐. 도움이 될테니." "고마워요. 고리모리!"


이렇게 젤리코리의 모험은 시작되었어. 시작부터 난관이 닥쳤지. 무서운 뱀상어들이 젤리코리의 배를 위협했고, 해적들이 식량을 약탈해갔어. 배가 고프고 기력이 쇠진해지자 젤리코리는 망망대해에서 하늘을 보며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어. "어째서 나한테 이런 일이 생긴거지?" 맞아. 젤리코리는 벌써부터 잊어버리고 말았어. 이 모든 것이 진정한 자신과 행복을 깨우치기 위한 게임이라는 것을 말이야.


깜박 잠이 들고 깨어났을 때 젤리코리의 배는 어느 섬에 도착했어. 푸른 색 열매가 열린 나무들이 가득한 이국적이고 따뜻한 섬이었지. 젤리코리는 열매를 먹으며 섬의 깊은 곳으로 들어갔어. 배가 너무 부른 젤리코리는 그제서야 지금까지 이 섬에서 아무런 동물을 발견하지 못했다는 걸 깨달았어. 새 한 마리, 개미 한 마리조차 보지 못했지. '정말 이상한 섬이야.' 게다가 푸른 열매 이외에 먹을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어. 이런 생각을 하며 쉬고 있는데 비가 내리기 시작했어. 빗줄기는 점점 굵어지더니 거센 바람과 함께 쏟아져내렸지. 숨을 곳이 필요했어. 젤리코리는 간신히 거대한 나무 속으로 피신해 들어갔어.


'이런, 내게는 왜 이런 일만 일어나는 걸까? 정말 너무하잖아. 나는 진심으로 마을을 떠나온 것을 후회해!" 젤리코로리는 또 다시 눈물을 흘렸어. 무서웠고 무엇보다 너무 너무 외로웠어. "개구리 한 마리라도 있었으면... 개구리 한 마리라도 있다면 난 기꺼이 목숨이라도 바칠만큼 사랑하겠어." 그 순간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들렸어. 젤리코리는 심장이 멎는 듯 놀랐어. 잠시 후, 여자의 목소리가 들렸어. "누구세요?" 뒤를 돌아보자 상상 속에서나 볼듯한 아름다운 여자가 젤리코리를 바라보고 있었어. 젤리코리의 심장은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지. 젤리코리는 벌써 사랑에 빠져버렸어. 물론 게임의 목적은 홀딱 잊어버리고 말았지.


젤리코리는 여자의 집으로 초대 받았어. 여자의 작은 집에는 푸른 열매만 가득했지. 여자는 언제부터 섬에서 살았는지 어떻게 이곳에 오게 되었는지 모두 잊어버렸다고 했어. "저는 제 이름도 잊어버렸어요." 젤리코리는 그런 여자에게 깊은 연민을 느꼈지. "당신은 어디서 왔나요?" 여자가 물었어. 젤리코리는 자신이 온 곳을 떠올려보려고 했지만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어. 그냥 머리가 무겁고 가슴이 답답할 뿐이었지. "모르겠어요. 저도 제가 왜 여기 있는지, 어디에서 왔는지 도무지 기억이 나질 않네요." 여자는 안심한 듯 웃었어. "괜찮아요. 그런 거 몰라도 사는데 아무 문제 없거든요. 여기엔 언제나 푸른 열매가 넘쳐나고 태풍이 가끔 오긴 하지만 날씨도 꽤 좋지요." 젤리코리는 여자가 있으니 여기가 어디든 아무 상관이 없다고 생각했어. 더 이상 외롭지는 않을테니까 말이야.


젤리코리와 여자는 푸른 열매를 먹고 섬을 돌아다니고 농담을 주고 받으며 그럭저럭 즐거운 날들을 보냈어. 여자가 죽기 전까지 말이야. 그날 여자는 열매를 따러 나갔다가 태풍을 속을 헤매게 되었는데 그만 감기에 걸려 죽고 말았어. 젤리코리는 여자가 죽자 거의 미칠 정도로 슬프고 화가 나서 견딜 수 없었지. 그는 더 이상 그 섬에서 살 수 없다고 생각했어. "나는 더 이상 살 이유가 없어. 그리고 이곳에 있는 건 견딜 수 없어." 비가 몹시 심하게 내리던 그날 젤리코리는 여자를 집 뒤에 묻고 다시 배를 타고 항해를 시작했어. 가슴이 무너져내려 가루가 되어버린 듯 공허했지. 젤리코리는 고향에 대해선 깨끗이 잊어버리고 말았어.


며칠 후, 젤리코리는 또 다른 섬에 도착했어. 그 섬은 사기꾼들로 가득한 섬이었지만 젤리코리가 알 리가 있겠어? 젤리코리는 그저 죽지 않고 살아있는 자신이 신기할 뿐이었어. 우습게도 젤리코리는 이 섬에 도착하자마자 또 다시 사랑에 빠졌어. 죽은 연인과 아주 닮았지만 뭔가 알 수 없는 매력이 있는 여자였지. 그 여자도 젤리코리가 싫지는 않은 듯, 젤리코리에게 섬에서 묵을 곳을 안내해주었지. 하지만 젤리코리가 잠시 한 눈을 판 사이, 여자는 젤리코리의 가방 안에 있던 보석들을 모두 훔쳐가 버렸어. 젤리코리는 홀쭉해진 가방을 보고 아주 화가나 미칠 지경이었지. 혹시 뭔가 남아있지 않을까, 가방을 뒤적이다가 젤리코리는 발견했어. 마을을 떠나기 전 고리모리가 주었던 편지를 말이야. 그게 무슨 편지인지도 까맣게 잊었던 젤리코리는 편지를 꺼내 읽기 시작했어.



안녕, 젤리코리!

이 편지를 읽고 있을 때 쯤, 너는 아마 절망에 빠져있을거야. 그리고 모든 것이 마을에서의 진정한 행복을 깨우치기 위한 게임이라는 것을 잊고 있겠지. 그렇지만 말이야. 제발 기억해 봐. 네가 누구인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 말이야. 너는 지금 게임 중이라고! 게임에 빠져서 망각 속에 허우적 될 것인지, 너 자신을 믿고 다만 가볍게 즐길 것인지, 너에게는 그 선택을 할 수 있는 힘이 있어.



젤리코리는 편지를 읽고 깊은 생각에 잠겨 한참을 걸었어.

그리고 살구빛 석양으로 물든 해안 절벽에 도착했어. 시원한 바람이 젤리코리의 이마를 훝고 지나갔어. 그리고 젤리코리는 하늘과 바다의 경계가 사라진 바다를 넋놓고 바라보았어.

'아!' 젤리코리는 문득 알아차렸어. 자신이 누구인지, 왜 이곳이 있는지. 그리고 무엇을 해야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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