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도 좋고, 운전도 좋다.
좋은 차의 주인이 될 만한,
좋은 운전자가 되고 싶은 욕심이
항상 크다.
아주 어리긴 했지만, 그럼에도 아버지가 몰았던 차들을 거의 모두 기억한다. 엄마에게 전해들어 내가 태어나기 전에 몰았다는 차도 알고 있다. 굳이 알아야지 하고 알았겠냐만은, 어릴 때부터 차에 관심 많은 여자아이였던 걸로 기억한다. 중학생 때는 창 밖으로 들리는 소리로 아빠 차가 오는 걸 알았고, 아빠 차가 아닌 소리들은 어떤 차종인지 구분하기도 했다. 정말로. 그 때는 지금처럼 자고 일어나면 새 모델이 몇 개씩 출시되는 때가 아니었으니까, SUV 소리들을 들으면 각 어떤 차종인지도 알았던 거다.
대부분 기아 차였다. 아버지 친구분 중에 기아 직원분이 있었기 때문은 아니었다. 그 분을 통해 산 건 나중에야 만난 엄마의 첫 차 한 대밖에 없었다. 별다른 이유는 없어도 부모님께서 '기아가 차 잘 나오더라' 하시는 말을 늘 하셨던 탓에 어릴 때는 차를 새로 사게 되면 기아 차를 사야 하는 거라 생각했다. 물론 현대와 기아가 한 테두리 안에 있는 시대를 사는 지금까지 그런 생각을 하는 건 아니다. 세상에 차가 얼마나 많은데. 새로운 차를 이리저리 살펴보는 건 대체로 흥미로운 일이다.
내 눈으로 직접 본 첫 차는 빨간색 프라이드, 다음은 진한 자주색 엘란트라(현대 차를 이 때 만났다), 그 다음이 은색 카니발. 이 다음에는 잠깐 고모의 차와 맞바꿔 쓴 적도 있다. 고모 차도 은색 스타렉스, 모두 '큰 차'들이다. 이 즈음에 고모며 아버지며 유통업을 했다는 게 여기에서 드러난다. 여차저차 그렇게 바꿔가며 쓰던 시기를 지나 그 다음으로 바꾸게 된 차도 다시 카니발이었다. 더 신형이었을 뿐, 여전히 큰 차가 필요해서 이전에 사용해보고 만족한 차종을 다시 선택한 거다. 그 차가 지금 아버지가 몰고, 어머니도 모는 '우리집 차'로 지내고 있다.
6년 전에 면허를 땄다. 당시에도 대부분 2종 면허를 따고 있는 추세였지만 늘 운전이며 자동차며 관심이 많았기 때문에 별 고민 없이 1종으로 선택했다. 그렇게 경쾌하게 면허를 따고 나서 곧바로 운전대를 잡은 게 지금 아버지가 모는 카니발이다. 아버지 동승이라는 전제 조건을 붙였다고 해도, 별도의 연수 없이 처음으로 운전한 차가 경차도 아닌 SUV였다니. 뒤에 커다란 짐칸이 달려있는 트럭이 더 어렵지 않냐고 묻는다면, 1종 보통 면허를 따는 과정에서 트럭을 한 번이라도 몰아본 사람이라면 알 거다. 아무리 큰 짐칸이 뒤에 달렸다고 해도 트럭은 앞 쪽에 튀어나온 부분이라고는 전혀 없고, 카니발은 엄청난 길이의 보닛이 있다. 딱 그만큼의 추가 거리 감각을 더해야 하는 거다. 좌회전이든 우회전이든, 항상 눈에 보이는 것보다 훨씬 더 큰 덩어리를 앞에 달고 운전한다고 생각하면 된다. 어쨌든, 내 운전 역사는 시작부터 '필연적으로' 초급이 아닐 수밖에 없었던 거다.
결과적으로는 그 사실이 나에게 미친 건 거의 없다. 덕분에 어떤 차를 만나든 겁날 게 없을 거라는 마음을 얻었다는 것 말고는 운전에 어려움을 겪지도, 정이 떨어지지도, 사고를 내지도 않았다. 운전은 면허를 따기 전부터 좋아했고, 면허를 따는 과정에서는 강사님께 웬만한 남자보다 낫다며 수강생 주제에 '속도 내기 허용권'을 척 올린 엄지와 함께 받기도 했다. 자가 운용 차가 없다보니 자주 운전하진 못하지만 2년 가까운 시간이 흐른 뒤에 오랜만에 했을 때도 '어제 운전했냐'는 말을 들었다. 자랑 아닌 자랑 맞음. 일종의 내 장기이자 능력 아니겠나.
펠리컨 입 마냥 툭 튀어나온 우리 아버지 차를 몰면서 어려워지면 어쩌나 걱정했던 운전은 오히려 더 즐거운 것이 되었다. 운전과 아버지와 어머니, 이 세 가지에 대해선 이야기들이 꽤 많다. 그것들을 우선 제쳐두고서라도, 나는 어릴 때부터 '보고 자란' 게 많은 경우다. 아버지의 준수하면서도 신사적인 운전을 보면서 많이 배웠다. 기술만 말하는 게 아니다. 운전을 할 줄 알기 전부터도 정말 운전을 생활에서 하는 사람들만 아는 좋은 습관이나 매너 같은 것들을 먼저 익혔기에, 그것들이 당연한 것인 줄 알고 자랐다. 늘 감사하다. 아버지가 어머니와 나를 태우고 전국 곳곳으로 몰던 여러 차들에서 쌓은 추억도 많고, 배운 것들도 많다. 통장 잔고가 험난한 이 시대를 살면서 내 차를 언제 사게 될지는 감히 예측도 안 되지만, 언제고 운전을 할 때면 아버지의 차와 그 차를 몰던 아버지의 뒷모습을 단단히 기억해야 할 거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