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9 나쁜 줄 알면서도 즐기는 것

눈치 보느라 재미없는 게 제일 나쁘다.

by 왕민아


이 말을 듣는 순간 곧바로 '나쁜 기호품'을 떠올리지 않을까. 그러면 그 다음 떠올리는 건, 당연히 술과 담배일 거고. 여기서 말하는 '나쁜'의 기준을 철저히 건강의 범주에만 둔다는 걸 제일 먼저 말하고 싶다. 건강의 문제가 아니라면 술과 담배는 절대 '나쁜' 게 아니라는 게 내 생각이다. 술을 마시고 담배를 피운다고 모든 사람들이 말이든 행동이든, 나쁜 결과를 보이는 건 아니다. 두 가지 모두 잘 즐기는 사람이 있고, 뭘 하든 정말 지저분하게 즐기는 사람이 있다. 후자의 경우라면 '즐긴다'는 말을 붙이고 싶지도 않다.

술을 좋아하고, 술을 좋아하는 사람을 좋아한다. 술을 좋아한다는 것도 얼마나 다양한 의미가 있는지. 늘 함께 말하는 비유이긴 한데, 이제 술을 마시기 시작한 여느 대학교 신입생들처럼 내가 얼마나 더 많이 마시나 줄 세워서 '퍼붓는' 식의 사람들은 제발 제외하자. 그건 잘 마시는 게 아니라니까. 지인 중에 나름대로 주량이 '세다'는 사람이 있는데 한 마디로 말하면, 정말 싫다. 저건 술을 마시는 건지, 술을 붓는 건지, 술 맛이나 느끼고 식도로 넘어가는지 궁금하다. 참, 술에도 맛이 있다. 그냥 알콜을 병에 담아서 그걸 들이붓고 정신을 놓으라고 파는 게 아니라는 거다. 물론 향도 있다. 그래서 늘 마시기 전에 향을 맡는다. 흔하고 흔한 소주와 맥주라고 해도 이왕이면 코부터 먼저 갔다 입으로 간다. 의식적으로 한 건 아니었고, 어느 날 보니 그러고 있더라.

그러니까, 술을 잘 즐기는 게 좋다는 거다. 탐구욕까지 있으면 더 좋다. 기회가 닿는 대로 새로운 술을 만나보고 싶은 마음이 있다. 그래서 이것 저것 술을 다양하게, 두루두루 즐길 줄 아는 사람이 좋다. 그런 사람에게는 술이 '들이붓고 정신을 잃는 독한 알콜'이 아니라 '맛이 있고 향이 있는 기호식품'이니까. 그런 사람과 술을 함께 즐길 때 더없이 즐겁다. 술을 마시면서 맛이며 향이며 술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사람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이렇게 말하면 내가 얼마든지 마시고도 아무렇지 않은 사람처럼 보일 수도 있겠지만 취할 때가 있고, 가끔은 과하게 취해 힘들 때도 있다. 그렇지만 여러 사람 힘들게 하는 지저분한 술버릇이 없는 건 늘 다행이라 생각하고, 큰 사고를 친 적도 없다.(술버릇이 '실실 웃기'라는 결론을 내렸다.) 그러려고 노력한다는 건, 애주가 중에서도 그런 애주가가 좋다는 거다. 취하는 게 나쁜 건 아니다. 취할 줄 아는 게 얼마나 좋은 건데. 기분 좋게 취하긴 해도 지저분하게 판 뒤집어 엎고, 더한 상황도 만들고, 그런 사람이라면 술에 욕 먹이는 짓 할 바에야 그냥 술을 마시지 말아줬으면 한다. 두루두루 잘 즐기고, 세상 술에 탐구욕도 있고, 맛과 향도 즐길 줄 알고, 깔끔하고 즐겁게 취할 줄 아는 사람. 다 모으면 이 정도가 될까. 어렵긴 한데, 어쨌든 이 비슷한 사람이라면 누가 됐든 반하지 않을 수가 없다는 거다.

늘 술과 함께 묶이면서도 별개로 취급하는 게 담배. 사회적으로, 공식적으로 점점 밀어내고 있다. 그렇다고 담배를 나쁜 것이라 생각한 적은 없다. 물론 여기에서도 기준은 철저히 건강의 범주에. 그렇다고 해서 "엄연한 기호식품인데 왜 자꾸 담뱃값 인상해서 흡연자들 힘들게 하냐"고 말할 만큼은 아니다. 나도 그 누구보다도 담배 연기를 싫어하는 사람이고, 길을 걸을 때 앞에서 담배 피우는 사람이 있으면 아무리 무거운 짐이 있더라도 전속력으로 뛰어서 그 사람을 앞지르는 사람이다. 담뱃값 인상은 그렇다고 쳐도, 더 이상 합법적으로 담배를 피울 공간이 없어서 건물과 건물 사이의 좁은 틈에서 피우고 있는 사람들을 보고 있자면 도대체 이게 순서가 어떻게 된 건가 싶은 생각이 든다. 국민의 건강 증진이니 뭐니 할 거면 정확하게 분리된 공간을 만드는 게 우선이지 않을까. 그게 정말 국민의 건강 증진을 위한 거란 말이다. 그러니까, 적어도 흡연자들을 위한 정확한 공간은 확보해줬으면 한다. 흡연 자체는 결코 나쁜 게 아니다. 참, 나는 비흡연자다.

아버지께서는 30년 넘게 흡연가로 살고 계신다. 집 안에서 피우신다거나 그런 일은 전혀 없었다. 항상 베란다에 나가서 문을 열고는 고개까지 쑥 내밀어서 피우시는 편이었다. 물론 아직도 하루에 한 갑이나 피우신다는 건 점점 더 신경 쓰이는 일이지만. 정확하게 말하면, 주위에 담배를 접할만한 환경이 없어서 안 피운 거라고 해야겠다 나는.

담배를 피우는 여자들에 대한 삐딱한 시선도 머리 아프다. 남자라고 다르고, 여자라고 다를 건 없다. '여자는 피우면 안 된다'는 생각으로 담배를 피우지 않는 사람도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가임자인 여성으로서 어쩌고 하는 이유인 것도 아니고. 언제든 생명을 잉태할 수 있는 몸이 여자의 몸이라는 건 사실이고, 가임자의 몸에 흡연이 좋지 않다는 것도 당연히 맞는 말이다. 그렇지만 그건 정말 말 그대로 '가임'을 염두에 둔 사람이어야 한다. 각자의 선택인 거다. 당장에 가임을 염두에 둔 사람도 아니고, 그렇다고 임신이 최종의 궁극적인 목표도 아니다. 일단은 그렇다는 거다. 간혹 '나중에 결혼을 위해', '나중에 아기를 위해'라는 말을 늘 달고 사는 여자들을 만날 때가 있다. 그들 중에 당장 내년에라도 결혼하고 싶은 남자가 있는 사람이 있다면야 할 말은 없겠지만. 개인의 선택이니까, 별 할 말은 없다. 어쨌든 난 그렇게는 못 살겠다는 거다.


세상엔 나쁘다는 게 얼마나 많을까. 뭐든 '적당히 적절한 선'에서 즐길 줄 아는 사람을 사랑한다. 참, 어떤 이유로든 술을 즐기지 못하는 사람은 그 얼마나 불행한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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