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79 집을 떠난다는 것

내 입 내가 채우며 산다는 건 얄짤 없는 거지.

by 왕민아


나라고 알았을까. 어지간하면 결혼하기 전까진 평생 혼자 살 일이 없을 줄 알았다. 그게 좋아서 그러고 싶다거나, 아니면 그게 싫다거나, 그런 건 아니고 그냥 그럴 줄 알았다는 거다. 대학생 때 갑자기 이사를 하면서 학교까지 거의 두 시간이 걸렸음에도 집에서 착실히 다녔다. 그렇게 왕복 네 시간 가까이를 오다니며 다니던 학교는 어느 날 갑자기 뚝 끊겼다. 끊긴 게 아니라 끊었다고 해야겠지. 어느 해 3월 넷째 주까지는 학생이었지만 4월 1일부턴 여의도 건물 7층에 교육생으로 앉아있었다. 그렇게 해서 '집을 떠난' 게 되었다, 정말 정신 차리고 보니.

갑작스럽게 일주일 만에 지낼 곳을 알아보고, 짐을 두고, 그렇게 곧바로 교육받으러 나가고, 정신이라고는 하나도 없었다. 여차저차 그렇게 해서 잡지 만드는 일을 하면서 살게 됐지만, 처음 그 땐 이렇다 저렇다 할 생각은 별로 없었다. 그렇다고 '하다가 안 되면 언제든 내려가면 되겠지' 싶은 생각은 결단코 아니었다. 계속해서 쭉 여기에서 살게 되겠다는, 일종의 예감은 느꼈지만 실감은 안 났다고 해야 할까. 부산에 있는 느낌도, 서울에 있는 느낌도 아니었다. 물론 그건 지금이라고 전혀 없는 마음은 아니지만.

혼자 사는 건 좋은 일이기도 하면서, 아득하기만 한 일이다. 집을 떠난다는 건 결국 어떻게든 막막하고, 깊고도 깊은 마음이 되는 일. 혼자 살고 싶다고 노래를 부르는 사람도 막상 혼자 살다 보면 결국 그런 마음이 될 걸. 집과 가족이란 건 생각보다 훨씬 더 큰 덩어리들이다.

오래전에 편집장님께선 식사하다 문득 이것 저것 물어보셨고, "너는 어쩌다 그렇게 갑자기 여기로 올 생각을 했니"라고도 물으셨다. 집을 떠나고 만나는 사람들이 어지간하면 꼭 던지는 질문. 그럴 때마다 이렇게 저렇게 대답하는데, 답을 하면 할수록 정말 내가 여기 어쩌다 왔는지 내가 모를 지경이다.

겨울 중에서도 가장 추운, 가장 정중앙의 어떤 겨울날 아침을 생각해본다. 너무 이른 시각이라 아직 해도 미처 뜨지 못했고, 가로등 몇 개가 불그스름하게 급하게 걸어가는 몇 안 되는 사람들을 겨우 비춰주는 길을 떠올린다. 그런 날에 몸을 잔뜩 웅크리고 괜히 불안정한 마음으로 바쁘게 길을 걸어가는 내 마음을 다시 느껴본다. 그게 집을 떠나 서울이라는 곳에서 혼자 사는 내 마음 정도 되겠다. 나는 늘 그런 마음.

집을 떠난다는 건 그런 거다. 이런 저런 마음을 쉽게 정리할 수가 없다. 뭐든 명확하지 않고, 조금씩은 꼬여 있기도 하고. 사실은, 이 모든 것들에도 불구하고 집을 떠나 혼자 살기에 겪을 수 있었던 좋은 일들도 많긴 했다. 나름 더 성장하기도 했다, 누가 뭐라고 하든.

매거진의 이전글139 나쁜 줄 알면서도 즐기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