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52
요 며칠 너는 통 잠을 자지 않고 있어.
의학적으로는 이 시기의 아기에게 하루 평균 14시간 이상의 수면을 권장한다는데, 그 기준에는 한참 못 미쳐서 걱정이 많아.
그런데 우리의 마음과 달리 너는 아주 편안해 보여.
기질인 걸까?
우리끼리는 농담처럼 말하지. "강철체력인가 보다"하고.
아빠도, 엄마도 고집으로는 집에서 한가락 했던 자녀들이라
네가 쉽게 잠들지 않으려는 모습이 그리 놀랍지는 않단다.
몇 분의 까치잠을 자고는
‘하마터면 잘 뻔했네’ 하는 얼굴로 눈을 번쩍 뜨는 너를 보면
아직은 그저 귀엽기만 해.
엄마는 어느 날부터인가 고집을 잘 부리지 않게 되었어.
고집이라는 건, 생각해보니
엄청난 자신감이 있어야만 부릴 수 있는 거더라.
내가 옳다고 믿었던 것들이
사실은 너무도 많이 달랐다는 걸 알게 되었거든.
틀렸다기보다는, 달랐지.
내가 아는 것이 곧 세상은 아니었어.
나는 내가 살아온 세계만을 알고 있었고,
그 세계를 바라보는 나만의 시각만을 가지고 있었던 거야.
그걸 깨닫고 난 뒤로는
오롯이 내가 책임질 수 있는 나 자신에 대한 일에서만
고집을 부리게 되었어.
오늘은 아빠의 고집과 너의 고집이
처음으로 정면에서 마주하는 날이구나.
어떻게든 스스로 잠드는 연습을 시켜보겠다고
아빠는 네 등센서를 무력화하려 애쓰고 있어.
너는 나만의 아이가 아니니까,
나는 기다려보려 해.
아빠의 삶에서는
이런 한바탕의 시도가 필요했을지도 모르니까.
너의 안전이 보장되는 선에서는
그의 의견도 존중해주려 해. 물론, 너의 건강이 상하지 않는 선에서 말이야.
육아에는 정답이 없으니까.
살면서 너무 고집이 없으면
너 자신이 힘들어질 수 있으니
엄마는 네 고집을 함부로 꺾지 않으려 해.
너도 언젠가는 배우겠지.
부디 너무 아프지 않게 배우기를 바란다.
욕심을 낸다면,
직접 겪지 않더라도
세상에는 참으로 다양한 삶이 있고
모두가 저마다 애써 답을 찾아왔다는 사실을
외면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엄마는 고집이
살아가며 꼭 필요하다고 생각해.
엄마와 아빠에게
네 첫 고집을 보여줘서 고맙다.
참 강단 있는 아이구나.
하지만 꼭 기억했으면 하는 게 있어.
고집을 부리는 첫 번째 이유는
언제나 너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여야 한다는 것.
네가 다치거나, 아프게 된다면
그 앞에서는
고집도, 자존심도 중요하지 않단다.
너를 지키는 고집이 아니라면
유연하게 굽히고
너 자신을 위한 것을 취할 줄도 알아야 해.
어쩌면
고집으로 버티는 것보다
훨씬 더 어려운 일이겠지.
그래도 그게 현명한 선택이야.
많이 알고,
많이 보고,
많이 경험하고,
그래서 겸손함을 잃지 않기를.
그리고 필요하다면
조금 비굴해지더라도
너를 지키기 위해
기꺼이 고집을 꺾을 수 있는 용기를
가졌으면 좋겠다.
그게
엄마가 너에게 바라는
가장 단단한 고집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