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딸 일기
결혼을 하고 나서는
엄마는 자주 보는데, 아빠를 뵐 일은 거의 없다.
내가 친정에 가는 날이면
마치 일부러 비켜가듯 집에 안 계셨고,
가족 모임이 있어도
일이 있다며 나오지 않으셨다.
철없이 서운하면 좋은데, 슬픈 짐작이 간다.
아마 그즈음, 주머니 사정이 넉넉하지 않았을 것이다.
시집가고, 임신까지 한 딸에게
한 번쯤은 크게 턱 쏘고 싶었을 텐데
그러지 못하는 것이 마음에 걸렸을 것이다.
아빠는 그런 사람이다.
있으면 다 주고 싶고,
없으면 차라리 피하는 쪽을 택하는 사람.
그 핑계로 소주 꽤나 하셨겠지.
매일같이 일을 나가셔도
그 수고가 우리에게 넉넉히 돌아오지 않는다는 걸
아빠도, 나도, 가족들도 모두 안다.
평생 그랬으니까.
하지만 그건 아빠의 잘못이 아니다.
아빠는 늘 최선을 다했다.
세상이 착한 그를 자주 배반했을 뿐.
그럼에도 삶을 포기하지 않고 다시 일어서 주었다.
사람들에게 베풀고 나누는 것은 놓지 않았다.
사람 된 도리를 하고 최선을 다해 예를 갖추셨다.
나는 그런 아빠가 참 자랑스럽다.
그 수많은 덕이 돌고 돌아
내 삶에 운처럼 스며든 건 아닐까.
어쩐지 매일 운이 좋았단 말이지.
아빠 딸이라 다행이야.
아빠의 더 주지 못해 애달픈 마음,
있다면 온 세상이라도 녹여
내게 건네고 싶었을 그 마음을 먹고
나는 자랐다.
통닭 2마리를 시킬 수 있게 되기 까지
아빠는 닭다리를 드신 적이 없었고
생선의 대가리부터 집어가셨다.
그래서 나는
아빠를 쉽게 놓지 못한다.
북한이 두려워한다는 중2 시절에도,
피가 끓던 스무 살의 시간에도,
마음 한편의 먹먹함을
나는 늘 아빠와 겹쳐보며 지나와
맘 놓고 원망을 하지 못했다.
아빠의 사랑은
크게 말하지 않아도
일생이 묵언수행을 같아도
늘 그렇게, 내 말 다 들어주고
내 안에서 매일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