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천 휴 96편 < 홍천 남산에서 일몰을 맞이하다 >
홍천 남산에 오르면
해가 지는 일은 늘 같지만,
그 빛을 바라보는 마음은 해마다 달라집니다.
저 역시 그랬습니다.
보내야 할 것과 품어야 할 것이 뒤섞인 채
조용히 산길을 걸어 올라왔습니다.
해가 천천히 능선을 넘어가며
홍천 시내에 긴 그림자를 드리울 때,
저는 비로소 올해의 제 속도를 이해했습니다.
앞만 보고 달리기에는
삶은 늘 조금은 빠르고,
멈춰 서기에는
마음이 늘 조금은 바빴습니다.
그러나 남산의 일몰은
그 모든 마음을 천천히 눌러 앉히듯
하루의 끝을 가뿐하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노란 들꽃이 저물어 가는 빛을 받아 반짝이고,
홍천강 물줄기가 은빛으로 흐르고,
멀리 겹겹의 산들은
낮보다 더 깊은숨을 내쉬는 순간.
저는 거기서
‘휴(休)’의 다른 얼굴을 보았습니다.
멈추는 것이 아니라,
다시 걸어가기 위해 나를 가만히 들여다보는 시간.
남산의 일몰은 올해의 저를
따뜻하게 덮어주었습니다.
저는 그 빛 아래에서
지난 한 해를 놓아주고,
다음 길을 품었습니다.
홍천의 하루와
저의 한 해가
같은 자리에서 천천히 저물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