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주 치악산, 비로봉에서 바람과 친구가 되다.

강원 20대 명산 인증 챌린지 제11편

by 원 시인

강원 20대 인증 챌린지, 치악산에 반하다

20240428_110620.jpg

봄은 무엇을 하기 좋은 계절일까요.
누군가는 농사를 떠올리고,
누군가는 여행을,
그리고 산을 좋아하는 사람은
자연스럽게 등산을 떠올립니다.

나는 봄의 문턱에서
치악산을 향했습니다.
‘악(嶽)’ 자가 들어가 힘들다는 편견을 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번은 꼭 넘어야 할 산처럼.


구룡사에서 세렴폭포까지, 걷기 좋은 길

20240428_112631.jpg

치악산 구룡사에서 세렴폭포까지 이어지는
약 2.1km의 길은
산이라기보다 숲길 산책에 가까운 길입니다.

손을 잡고 걷기 좋은 길,
천천히 걸으며 이야기를 나누기 좋은 길,
숲의 냄새가 마음을 먼저 풀어주는 길입니다.

구룡사는
신라 의상대사가 아홉 마리의 용을 물리치고 세웠다는 절.
그중 한 마리가 세렴폭포까지 도망쳤다
치유를 거쳐 승천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지금은 물이 많지 않지만
여름비가 쏟아지면
폭포는 제 격을 되찾습니다.


세렴폭포 이후, 본격적인 치악산

20240428_115132.jpg


2024년 4월 28일 일요일.
오전 11시 6분, 구룡사에서 출발해
11시 44분, 세렴폭포에 도착했습니다.

여기까지는 평지에 가깝습니다.
그러나 그 이후부터
치악산은 본색을 드러냅니다.

끝없이 이어지는 계단,
돌계단,
그리고 숨이 고르는 사이마다
다시 나타나는 오르막.

세렴폭포에서 정상까지
약 2시간 10분.
아이젠 대신 인내가 필요한 길이었습니다.

아이들이 정상에 올라와 있는 모습을 보고
문득 생각했습니다.
게임 대신 국립공원 산행이라니,
이보다 더 건강한 선택이 있을까.


비로봉, 바람과 함께 머무는 곳

20240428_135316.jpg


해발 1,288m, 치악산 비로봉.
정상에서는 바람이 먼저 맞아줍니다.

50여 분을 머물며
간식을 먹고,
다람쥐와 눈인사를 나누고,
사진 한 장을 남깁니다.

정상에는
용왕탑, 산신탑, 칠성탑
세 개의 돌탑이 서 있습니다.

원주에 살던 한 사람이 꿈에서 받은 ‘미션’을
실행하며 쌓았다는 탑.
무너졌던 것을 국립공원공단이 다시 세웠다고 합니다.

탑을 바라보며
저도 조용히 빌어봅니다.

소원은 말하지 않아도
산은 알고 있을 것 같아서요.


내려오는 길에서야 보이는 것들

20240428_144155.jpg


오를 때는 숨이 가빠
풍경을 볼 여유가 없었습니다.
내려오면서 비로소
치악산의 봄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연둣빛 새순,
바위 위에 뿌리를 내린 소나무,
참나무와 나란히 자라는 숲길.

사람들은 말합니다.
성장 속도가 빠른 참나무가 소나무를 이긴다고.

하지만 바위 위에서는 다릅니다.
참나무는 버티지 못하고,
소나무는 끝내 살아남습니다.

삶도, 산도 환경이 전부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숲이 좋은 이유

20240428_134544.jpg


숲에서는
뛰는 사람이 없습니다.

자연스럽게 속도가 느려지고,
마음도 함께 내려앉습니다.

어릴 적,
비포장 신작로를 4km 걸어 학교에 가던 기억.
겨울이면 논을 가로질러 다니던 길.

그래서인지
이 흙길이, 이 숲길이
나에게는 낯설지 않습니다.


치악산, 나에게 남은 한 문장

20240428_124038.jpg


강원 20대 명산 인증 챌린지
열한 번째 산, 치악산.

정상에 빨리 오르는 데 집중했던
초반의 산행을
조금 반성하게 됩니다.

앞으로 남은 산들은
조금 더 느리게,
조금 더 머물며 오르고 싶습니다.

인증보다 기억이 남는 산행,
숫자보다 이야기가 남는 산행으로.

치악산의 봄은
진달래와 철쭉,
그리고 연둣빛 숲으로 남았습니다.

나는 지금
행복의 길을 걷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길을
더 많은 사람이
각자의 속도로 걸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