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성 휴, 불타고 다시 세워진 건봉사에 머물다.

by 원 시인

불타고 다시 세워진 자리에서, 시간을 건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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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성에서 건봉사를 찾는 길은
조금은 조심스러워진다.
이곳이 단순한 사찰이 아니라,
전쟁과 복원의 시간을 함께 품고 있기 때문이다.

건봉사는
신라 법흥왕 때 창건된 천년 고찰이다.
한때는 설악산 3대 사찰로 불리며
수많은 전각과 승려의 수행으로 가득했던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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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6·25 전쟁은
이 사찰을 거의 모든 흔적에서 지워버렸다.
전각 대부분이 불타고 터만 남은 시간이 오래 이어졌다.

지금 우리가 걷는 건봉사는 그 잿더미 위에 다시 세워진 사찰이다.

능파교를 건너며 나는 잠시 걸음을 늦춘다.
‘물결을 능히 건넌다’는 이름처럼
이 다리는 단순한 통로가 아니라
과거와 현재를 잇는 경계처럼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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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웅전 앞에 서면
화려함보다는 단정함이 먼저 다가온다.
다시 세워졌기에
더 조심스럽고, 더 절제된 모습이다.

연등 아래를 지나며 고개를 들면
수많은 소망들이 바람에 흔들린다.


이곳의 기도는
크게 외치지 않아도 충분하다.
전쟁을 견딘 땅 위에서는 조용한 마음이 더 깊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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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봉사에는 사명대사의 흔적도 남아 있다.
나라가 흔들리던 시절,
기도와 실천을 함께 품었던 승려의 자취는 이 사찰이 단지 종교 공간이 아니라
역사의 한 장면임을 말해준다.


나는 이곳에서
‘복원’이라는 단어를 다시 생각한다.
예전 그대로를 되돌리는 일이 아니라,
잃어버린 시간을 인정한 채
다시 살아가는 힘.


건봉사는 불타고도 사라지지 않은 자리다.
그래서 더 고요하고,
그래서 더 오래 머물게 된다.


고성에서
잠시 마음을 낮추고 싶다면,
이곳 건봉사에서
천천히 시간을 건너보아도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