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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rendipity Jan 28. 2020

에릭 클랩튼-기타의 신(2017)

Eric Clapton: Life in 12 Bars


기타의 신, 슬로 핸드 (Slow hand),  혹은 제프 벡이나 지미 페이지와 함께 3대 록 기타리스트로 불리기도 하는 에릭 클랩튼. 그 이름을 잘 모르더라도 <Wonderful tonight>이나 <Tears in heaven> 같은 곡을 한번쯤은 들어봤을 것이다.

이제 70이 넘은 백발의 전설적인 기타리스트의 삶을 조명하는 다큐멘터리 영화가 개봉되었다.

1945년 영국의 리플리에서 태어난 에릭 클랩튼은 17살 때 본인을 낳은 생모가 아이를 낳자마자 부모에게 맡기고 캐나다로 떠나버리는 바람에 조부모를 부모로, 삼촌을 형으로 알고 자랐던 불행한 어린 시절로부터 영화는 시작한다. 원래도 내성적이었던 그는 9살 할머니로부터 출생에 대한 비밀을 듣고 난 뒤 생모에 대한 분노와 함께 점점 더 내성적이 되고 고통스러워한다. 그러나 당시 영국에서는 잘 알려져 있지 않았던 미국의 흑인 음악 블루스에 심취하면서 13세 때 선물을 받은 기타로 연주를 하는 동안에는 삶의 고통을 잠시 잊게 된다.

예술학교에 진학한 에릭 클랩튼은 17세에 처음 참여한 밴드 Roosters를 시작으로 Yardbirds, Bluesbreakers의 기타리스트로 커리어를 쌓아간다.

Yardbirds시절 깁슨 레스 폴 스탠더드 기타와 마샬 앰프의 조합으로 자신만의 독특한 기타 사운드를 선보이면서 런던 거리에 Clapton is God이라는 그라피티가 그려지기도 했다.

에릭 클랩튼은 이 별명을 부끄러워 했고, 아마도 Yardbirds의 매니저가 그려놓은게 아닌가 추정하고 있다.


이 영화에서는 에릭 클랩튼이  록 기타리스트로 분류되기도 하지만 음악적 뿌리가 흑인음악 블루스였다는 것을 잘 설명해준다. 에릭은 자신이 가장 큰 영향을 받은 연주자로 B.B. King을 꼽는데 젊은 시절부터 교류를 하며 같이 연주하기도 했었고 2000년 그의 우상 B.B.King과 같이 <Riding with the King>이라는 앨범에서 멋진 블루스 연주를  들려준다.  

이런 블루스에 대한 열정때문에 Yardbirds의 인기가 한참 올라갈 즈음에 밴드의 음악적 성향이 팝으로 변하자 느닷없이 그만두기도 한다. 60년대 미국에서는 블루스가 흑인의 음악이었기 때문에 대중에게 어필하지 못했고, 아이러니컬한 점은 지구 반대편 영국의 백인 기타리스트가 블루스 연주로 인기를 얻으면서 거꾸로 미국에서 블루스 음악의 대중화가 일어나 흑인 연주자들에게 길을 열어줬다는 사실이다.


이어 Cream의 엄청난 성공과 Blind Faith, Derek and the Dominos 등의 6-70년대의 밴드 활동에 대한 내용이 소개되면서 그 유명한 짝사랑 사건의 내막을 본인의 입으로 들려준다.

여자 친구가 있었음에도 절친이었던 비틀스 기타리스트 조지 해리슨의 아내 패티 보이드에 운명적으로 끌리게 된 에릭 클랩튼은 〈Layla〉라는 유명한 곡을 만들어 그녀에게 바치면서 구애를 하나 거절당한다. 이어 음악적으로 존경했던 지미 핸드릭스의 사망과 할아버지의 사망 등에 의해 헤로인과 알코올 중독에 빠지게 된다. 그가 자살을 하지 않았던 것은 자살을 하면 술을 더 이상 마실수가 없기 때문이라고 말하기도 할 만큼 심한 중독상태였다.


이런 그를 다시 일어서게 만든 것은 그의 아들 코너 클랩튼이었다. 어머니로부터 버림받은 트라우마로 괴로워하던 그의 인생을 사랑스러운 자식이 구원해준 것이다. 영화보다 더 드라마틱한 그의 인생에서 1991년 비극이 다시 한번 그를 덮쳤다. 아들 코너가 뉴욕 맨해튼의 53층 아파트에서 추락해 사망한 것이다.

모두의 우려와는 달리 에릭 클랩튼은 어린 시절 음악으로 친모에게 버림받은 고통에서 벗어난 것처럼 다시 한번 음악의 힘으로 아들을 잃은 고통을 이겨내고 〈Tears in Heaven〉이라는 노래에 아들에 대한 그리움을 담아 발표했다. 이 노래는 1991년 영화 [Rush]의 삽입곡으로 사용되었는데 이 영화의 감독이 이번 다큐멘터리 감독인 Lili Fini Zanuck였다. 이 곡은 1992년 MTV 언플러그드 공연에서 연주되면서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고 그에게 수많은 상을 가져다주었다. 나도 이 당시 MTV 공연의 앨범을 수없이 들었고 많은 에릭 클랩튼의 LP와 CD 중 가장 아끼는 것 중에 하나이다. 사실 정통 블루스 음악을 잘 모르는, 그리고 나처럼 6-70년대 에릭 클랩튼의 전성기 밴드시절을 경험하지 못한 세대에게는 이 음반이 가장 유명하고 익숙한 셈이다.

https://youtu.be/3gWw8QSBYmI

그는 두 번째 절망을 극복하고 인생에 대한 시선이 바뀌면서 사생아였던 또 다른 딸과 화해하기도 하고, 다시 결혼해 얻은 3명의 딸들과 함께 행복한 말년을 보내고 있다.


이번 다큐멘터리의 가치는 90년대 이후의 에릭 클랩튼만 알고 있던 나에게 그의 음악의 뿌리와 신으로 불렸던 젊은 시절의 음악을 알게 해 준 것이다.

우리말 제목이 기타의 신을 되어 있으나 원제목은 Life in 12 Bars인데  마치 알코올 중독이라 12곳의 바를 전전하는 인생을 의미하는 것 같다. 그러나 이것은 12-Bar Blues라는 블루스 연주의 12마디 기준 순환 코드 (chord progression)을 의미한다. 그만큼 에릭 클랩튼 음악의 블루스적 특성을 강조하는 제목이다.

또 영화에서는 그다지 강조되지 않았지만 개인적으로 느낄 수 있었던 것은 에릭 클랩튼의 종교성이다. 다른 인터뷰에서  

“grew up with a strong curiosity about spiritual matters, but my searching took me away from church and community worship to the internal journey.”

라고 언급하기도 하는데 어린 시절 기독교적 가치관에서 자랐던 이후 영적 방황을 겪고 약물, 알코올 중독에 빠져있다가 치료시설에 들어간 어느 날 아무도 없는 방 안에서 무릎을 꿇고 투박하지만 간절하게 나에게 평화를 달라고 기도했다는 고백을 들을 수 있다.


영화에도 등장하지만 Blind Faith 시절에 하이드파크에서 라이브 공연하는 Presence of the Lord라는 곡은 마치 인생의 후반에 에릭 클랩튼이 하고 싶었던 고백처럼 느껴진다. (앨범의 표지는 이 곡과는 영 딴판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HIcESt9eYRk

<Presence of the Lord>

I have finally found a way to live

Just like I never could before

I know that I don't have much to give,

But I can open any door


Everybody knows the secret,

Everybody knows the score, yeah yeah yeah

I have finally found a way to live

In the color of the Lord


I have finally found a place to live

Just like I never could before

And I know I don't have much to give,

But soon I'll open any door


Everybody knows the secret,

Everybody knows the score

I have finally found a place to live, oh

In the presence of the Lord

In the presence of the Lord


I have finally found a way to live

Just like I never could before

And I know I don't have much to give,

But I can open any door


Everybody knows the secret,

I said everybody knows the score

I have finally found a way to live, oh

In the color of the Lord

In the color of the Lord


에릭 클랩튼이 치료받았던 시설은 의사와 사업가가 기독교 정신으로 운영하는 곳이었는데 이때 에릭은 많은 정신적 지지를 받았고, 세월이 흘러 에릭 클랩튼도  Antigua에 Crossroads Centre라는 약물 중독 치료 자선 기관을 만들어 운영하게 된다. 이 곳은 유명인을 위한 치료센터가 아니고 돈이 없어서 중독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한 곳이었다. 이 센터를 세우기 위해 100여 개의 개인 기타를 경매로 팔기도 하는데 이때 Layla를 연주했던 Brownie라는 별명의 1956 Fender Stratocaster가 45만 불에 팔리기도 했다.

또 운영 기금을 모으기 위해 199년부터 Crossroads Guitar Festival이 에릭 클랩튼이 초청한 유명 연주가들에 의해 열리고 있다.

영화의 마지막은  2007년 Crossroads Guitar Festival에 참여해 연주하던 81세의 B.B. King이 그의 친구 에릭 클랩튼에게 바치는 유머스럽고도 진심어린 헌사로 마무리된다. (아래 영상의 후반부)

https://youtu.be/201I9n2yr8k

<에릭 클랩튼-기타의 신>은 그동안 단편적으로 알고 있던, 어떤 소설보다도 더 극적인 한 음악가의 삶을 그의 목소리로 잔잔하게 들려주면서 진한 감동을 주는 영화이다. 본인의 이야기를 밝히기 꺼려하던 에릭 클랩튼은 자신이 세상을 떠난 이후 다른 사람의 입으로 전해지는 것들은 정확하지 않기 때문에 이제 스스로의 인생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고 한다. 이 영화를 보고 나서 그의 음악을 다시 한번 듣는다면 그동안 들어왔던 것과는 또 다른 느낌을 받을 수 있 ㄱㆍ다.

에릭 클랩튼을 온전히 다시 서게 해 준 것은 음악, 친구, 가족, 그리고 신앙인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B.B. King과 같이 녹음한 Riding with the King을 꺼내 진한 블루스의 향기를 느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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