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길"
예술도 시험을 보기 위해 외워야 했던 중고등학교 때 배웠던 것 중 하나는 미술은 공간 예술, 음악은 시간 예술이라는 분류였다. 그런데 음악을 단순히 시간 예술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다양한 측면이 있다.
미술과 달리 같은 곡을 여러 연주자가 연주하면서 그 느낌이 달라지기도 하고, 콘서트장에서 라이브로 듣는 것과 오디오로 레코딩을 듣는 것은 전혀 다른 것이기도 하다. 또 음악 중에서 노래는 가사라는 또 하나의 면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듣는 사람들이 멜로디 외에 가사에서 느끼는 감정적 변화가 매우 다를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특별한 공간에서, 특별한 시간에, 특별한 사람들이 불러주는 노래는 누군가에게 눈물을 흘리게 할 수도 있고 큰 위로가 되기도 하고, 깨달음을 얻게 할 수도 있다.
어제 새벽에 봤던 비긴어게인의 노래들을 다시 한번 들어본다.
이번 팀은 밝은 미소와 함께 목소리가 가장 뛰어난 악기라는 것을 증명해주는 소향의 노래, 천재라는 것을 마음껏 뽐내는 헨리, 어떤 노래도 다 어울리는 수현의 맛깔난 목소리, 질투가 날 만큼 감미로운 정승환의 노래의 조합이 참 좋다.
다른 음악프로그램에서 이태리어로 하는 노래도 좋긴 하지만 아무래도 팝을 많이 불러주는 비긴 어게인이 더 개인적 취향에 맞는데 소향과 크러쉬의 "Stuck with U"는 그야말로 최고였다. 사실 영어라서 알아듣는다는 게 아니고 그냥 익숙한 발음이기 때문이고 편한 악기 소리 같은 개념이다.
https://tv.naver.com/v/14979701
그런데 노래 자체의 완성도보다는 가장 인상적인 장면을 꼽으라고 하면 GOD의 "길"을 모두 같이 노래하면서 생각에 빠진 크러쉬의 표정과 눈물이었다.
내가 가는 길이 어디로 가는지... 이게 정말 나의 길인가
GOD의 노래로 들었을 때보다 어젯밤 비긴어게인 멤버들의 목소리로 들려준 가사는 아.. 이게 이런 내용이었구나 하며 훨씬 더 명료하게 들리면서 여러가지 생각을 하게 해 주었다. 아마도 이 때문에 관객들 뿐만 아니라 무대에서 노래들 들여줘야 하는 가수마저도 자신이 살아온, 살아가고 있는 길을 다시 한번 되돌아보게 하면서 눈물을 흘리게 하지 않았을까.
이 장면이야 말고 "이해할 수 있는" 가사가 어울리는 멜로디에 얹혀 아름다운 목소리로, 그리고 전주 경기전이라는 특별한 공간에서 연주될 때 어떻게 인간의 감정을 건드릴 수 있는지 보여주는 장면이다.
게다가 높은 소나무 아래 기와가 얹힌 돌담에 조명이 너무나 멋지게 비치며 최고의 효과를 발휘할 수 있는 고즈넉한 여름밤이라는 게 이런 효과를 극대화한 게 아닌가 싶다.
https://tv.naver.com/v/14980087
보기 드문 라이브 프로그램인 비긴 어게인은 아무래도 내가 잘 모르던 젊은 가수들의 진짜 재능을 느끼게 해주는 프로그램이다. 크러쉬라는 가수가 이렇게 분위기 있는 목소리를 가지고 있다는 걸 미처 몰랐다. 사실 당연한 게 들어본 적이 없으니...
이번 팀의 공연을 보면서 어라 기타를 잘 치네... 하는 생각이 들어서 저 친구는 누구인가 한번 찾아보게 되었다. 중학교 때부터 기타를 배우기 시작했다는 적재라는 싱어송라이터다. 아무튼 내 귀에는 다른 연주자들보다 이 친구의 기타 연주 솜씨는 좀 특별해 보인다.
이런 연주를 들을 때마다 나도 중학교 때 기타를 쳤더라면.... 우리 아들이 기타를 좀 배웠으면... 하는 쓸데없는 아쉬움이 들지만 그냥 즐겨보자.
90년대 미국 대중가수들의 실력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면서 큰 인기를 얻었던 MTV unplugged처럼 비긴어게인도 꾸준하게 좋은 음악을 들려주기를 기대한다.
MTV unplugged 하면 바로 Eric Clapton의 연주가 떠오르는데 San Francisco Bay Blues는 시작할 때 틀려서 여러 번 다시 연주하면서 live의 현장감이 느껴지기도 했다. 슬라이드 바를 이용해 세련된 기타 연주를 보여주는 "Running on faith"를 오늘의 마지막 곡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