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erendipity Dec 16. 2020

REMEMBER me


어제 이탈리아의 B교수와 메일을 주고받으면서 그날 이탈리아에서는 12000명의 환자와 약 500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사망자 숫자에 가슴이 멍해지면서 메일 끝의  "Italy has been devastated by COVID and we are all waiting for vaccination early (mid January) 2021" 문장에서 그동안의 겪었을 어려움과 절망감, 그리고 희망을 동시에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의사는 환자의 병을 고치고 살게 하는 직업이지만 역설적으로 죽음에 익숙해져야 합니다. 


해마다 강의를 할 때 학생들에게 보여주는 슬라이드가 있습니다.

2008 퓰리처상을 받은 사진작가 Preston Gannaway의  <Remember Me>라는 작품입니다.

Gannaway는 Carolynne St. Pierre라는 여인의 죽음을 2006년부터 2년간 기록합니다. 


Remember Me: A multimedia documentary about one family's struggle to deal with the loss of a parent (conmon.com)

Gannaway는 이 사진 연작을 통해 가족이 그녀의 병에 어떻게 대처하는지, 그녀가 없는 삶을 어떻게 준비하는지, 그리고 그녀의 죽음으로 인한 영향을 어떻게 감당하는지 담담하게 보여줍니다.


조산사였던 Carolynne은 Rich와 가정을 이루어 살면서 아이를 낳고 2002년 막내 EJ가 태어납니다. 그녀는 2004년 드문 간암을 진단받게 되는데, 몇 주 뒤 남편 Rich와 결혼을 하지요.


Carolynne은 그녀가 어떻게 죽고 싶어 하는지 알았습니다. 

사랑하는 사람들 가운데서 죽음을 맞고 싶어 했지요.  

또 그녀는 죽기 전 그녀의 삶과 사랑하는 세 자녀 15세의 Melissa, 13세의 Brian, 5세의 EJ에 대한 사랑을 기록하고 싶어 했습니다. 

Carolynne이 가장 두려워했던 것은 막내 EJ가 자신을 기억하지 못할 것이라는 걱정이었습니다. 이것이 그녀가 더 열심히 힘든 항암치료를 견디며 하루라도 더 살고 싶어 했던 이유였지요.


사진 연작을 보면 그녀가 병원에서 항암제를 맞는 동안 남편이 같은 침대에 누워 있기도 하고 철없는 EJ가 떠들고 놀기도 합니다. 집안 침대에서 애처롭고 사랑스럽게 EJ를 바라보는 Carolynne의 모습이 쓸쓸하면서도 아름답습니다.


시간 지나면서 그녀는 점점 약해지고, Rich와 가족들은 그녀의 죽음을 준비합니다. 

Rich는 아내의 장례식에 사용할 관을 보러 간 사진에서는 참 묘한 감정을 느끼게 됩니다. 

마지막 생일파티에서는 멍한 Carolynne 주변에서 일부러 웃고 즐기는 가족과 친구들의 모습이 한 화면에 같이 보이기도 합니다.  

그녀는 2007년 2월 44세의 나이로 집에서 가족들에 둘러싸인 채 삶을 마감합니다. 


제가 이 작품을 보면서 낯설었던 것은 죽음을 자신의 집에서 가족 친구들과 같이 맞이하는 것이었습니다. 

한국과 가장 다른 모습인데, 우리는 대부분 병원에서 죽음을 맞이하는 경우가 많지요. 그래서 의사들이 자기 환자의 마지막을 가족과 같이 지켜보게 됩니다. 이런 의미에서 한국의 의사들은 좀 더 죽음을 대하는 자세와 환자와 가족들을 위로하고 도와주는 방법을 배워야 하는 것 같습니다. 


심지어 암이 진단이 되었는데 본인에게는 숨기고 가족들만 알고 있다가 정작 이유도 모르고 시름시름 앓다가 사망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한 번은 어떤 나이 많으신 할아버지께서 내시경을 하고 위암을 진단받았는데 항상 혼자 오시던 분이라 결과를 알려드렸습니다. 그런데 다음날 가족들이 몰려와 어떻게 아버지에게 암을 알려줄 수 있냐고 외래에서 난리를 피운 적도 있었지요.


저는 가족들에게 병명을 정확히 환자에게 알려주기를 권고하고 그것이 원칙이라고 얘기해줍니다. 특히 말기 암의 경우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을 헛되이 보내기보다는 스스로 삶을 정리할 수 있도록 소중하게 쓸 수 있으니까요.


이렇게 죽음을 맞이하는 문화가 서양과 우리가 다른데 하루에 사망자가 급격히 늘어난다면 아마도 우리나라는 혼란이 더 클 것 같습니다. 이런 이유가 아니더라도 현 상황이 더 악화되지 않고 빨리 좋아지기를 바랍니다.


이 사진 연작은 Carolynne의 죽음에서 끝나지 않고 Rich가 한부모로서 자녀들을 키우는 어려움을 계속 보여줍니다. 둘째의 행동장애로 인한 어려움, 어린 막내와 같이 놀아주기 등. Carolynne은 Rich에게 여름마다 EJ를 Story land 놀이공원에 데려가 달라고 부탁을 했는데 그 말에 따라 해마다 EJ와 같이 놀이공원을 갑니다. 또 유치원에 가는 첫날 같이 등교하는 사진에서는 긴장한 EJ얼굴과 자랑스러워하는 Rich의 표정 위로 그녀가 그날을 얼마나 기다렸을지 하는 생각이 떠오르더군요.


기억되고 싶은 것, 기록을 남기는 것이 인간의 본능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EJ가 자신을 기억하지 못하는 게 가장 큰 걱정이었던 Carolynne처럼 어린 손자가 당신을 기억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을 하시던 아버지 생각이 납니다.


모두에게 좋은 기록만이 남겨지면 좋겠는데 뭐 우리의 삶이란 게 꼭 그런 건 아니니까요. 

12월을 보내면서 오랜 시간 뒤에 2020년은 어떻게 기억이 될지 궁금해집니다.

전 인류를 덮친 죽음의 그림자를 극적으로 극복해 이겨낸 시기로 기억되기를.

작가의 이전글 Ice Castles (1978)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