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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rendipity Apr 03. 2021

에릭 사티 Gymnopedies

힘들었던 한 주를 마치고 봄비를 맞으며 집에 돌아온 후 잠시 멍하니 누워있다가 Pascal Roge가 연주한 Erik Satie의 Gymnopedie를 들어본다. 

세기말을 보냈던 모든 예술가들이 그렇지만 에릭 사티는 그 누구보다도 미스터리하고 비밀이 많은 예술가이다.

노르망디의 진주로 불리는 ‘옹플뢰르"라는 항구도시에서 태어나 피아노를 배운 사티는 음악학교에서도 재능은 있으나 게으르다고 쫓겨났고 군대도 적응을 못한 채 탈영을 했다. 이후 파리의 몽마르트르 언덕에 있었던 그 유명한 ‘검은 고양이’(Le Chat Noir)라는 카바레에서 피아노를 연주했다. 이곳에서 드뷔시나 피카소와 같은 다양한 예술가들과 어울리며 작곡을 했는데 이런 교류의 결과로  1917년 장 콕토의 시나리오와 피카소가 무대와 의상을 디자인한 발레 <Parade>가 공연된다. 

https://youtu.be/_Chq1Ty0nyE

에릭 사티는 몽마르트에 살던 1988년  <3개의 짐노페디>라는 곡을 작곡하는데 Gymnopedies는 고대 그리스에서 소년들이 벌거벗고 춤을 추는 것을 의미한다고 한다. 한꺼번에 작곡된 것은 아니고 상당한 시간이 지난 뒤에야 3곡이 모두 완성된다. 3/4박자의 느리고 단순한 선율의 반복이지만 안정적이고 생각에 잠기게 하는 한다. 불필요한 장식을 모두 걷어내고 최소한의 멜로디만으로 구성된 이 곡은 정보없이 음악을 먼저 듣고 나중에 19세기 후반의 음악이라는 것을 알게되면 깜짝 놀랄정도로 현대적이다.

마치 현대의 뉴에이지 음악과도 비슷하지만, 그 고요함과 고독함 때문에 중세의 그레고리안 성가에서 변형된 종교적인 느낌을 주기도 한다. 아니면 미술관에서 그림을 감상하면 긴 회랑을 따라 조용히 걸어갈 때 들리면 딱 어울릴 것 같기도 하다.  이런 특성으로 현대에서는 카페 뮤직이나 furniture music으로 알려지기도 했지만 에릭 사티의 음악이 이렇게만 소비되는 것은 너무 안타까운 일이다.


사티는 자신의 작품을 세 개씩 분류하는 것을 좋아했다고 하는데 <3개의 짐노페디>(Trois Gymnopedies)에는 각각 

1번: 느리고 비통하게(Lent et douloureux) 

2번: 느리고 슬프게(Lent et triste) 

3번: 느리고 장중하게(Lent et grave) 

라는 설명이 달려있다. 


이 피아노곡은 "느리게"가 얼마나 느리게인지, 그리고 건반 터치를 얼마나 적당한 무게감으로 하는지에 따라 상당히 다르게 들린다. 개인적으로는 Pascal Roge의 연주(1983)를 가장 좋아하는데 그야말로 적절한 느림과 섬세한 터치가 돋보이는 연주이다. Aldo Ciccolini는 약간 더 빠르게, 그리고 경쾌하게 연주해주는데 Roge보다 10초 정도 연주시간이 짧은 것을 볼 수 있다. 


없는 게 없는 유튜브에는 Pascal Roge가 New York City’s Steinway Hall에서 라이브로 연주하는 영상이 작년에 올라와 있다. 1983년 연주보다 약간씩 박자를 밀고 당기는 것이 달라진 점인데 이 연주도 좋지만 역시 1983년 연주가 최고인 듯하다.

https://youtu.be/cic1RNHXa-k

피아노와 가장 비슷한 악기인 기타로 연주된 짐노페디도 들을 만하다. 

Classic guitar https://youtu.be/NtFmhaILEkY

Electric guitar https://youtu.be/yDYilQci4ss

Roge의 앨범에는 사티의 다른 곡들도 담겨있는데, Gnossienne 역시 간결하고 몽환적인 멜로디의 묘한 곡으로 역시 영화에서도 종종 사용된다.

4번 곡인 Je te veux는 귀엽고 발랄한 왈츠곡으로 에릭 사티가 몽마르트의 화가들의 유명한 뮤즈 수잔 발라동을 사랑하면서 작곡한 곡이라고 한다. 나중에 화가가 되었던 발라동은 사티의 초상화를 그리기도 했다. 피카소와  장 콕토 역시 사티의 초상화를 남겼다. 

장 콕토(좌)와 발라동(우)이 그린 사티
피카소가 그린 그린 사티

짐노페디는 영화음악으로 많이 사용되었는데 나도 이 곡을 처음 들은 것은 어떤 흑백영화에서였다. 

무슨 영화였는지는 기억이 안 나는데 아마도 루이 말의 도깨비불 (Le Feu follet, 1963)이었을까? 

차가운 화면과 주인공의 심리를 잘 반영하는 듯한 음악은 영화 자체보다 더 깊이 내 머릿속에 남았다. 

자, 음악을 감상했으니 이제 영화를 한편 봐야 되나 하는 찰나에 일주일 미뤄진 칼럼이 생각났다. 


음..... 조금만 더 쉬면서 상상 여행을 다녀온 후 시작하자.

사티의 고향 노르망디 해변가의 옹플뢰르를 떠올려 본다. 에릭 사티 박물관을 방문해보고 싶었으나 몽셀미셀에 가는 도중 잠깐 들렸던 것이라 길가의 표지판만 보고 아쉬움을 달랬다.

언젠가 다시 렌터카를 빌려서 돌아볼 수 있는 날이 오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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