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아무 연고도 없는 사진관으로부터 "가족사진, 리마인드 웨딩사진 무료로 찍어드립니다."라는 문자를 받았다.
어찌 무료이겠는가, 옷 대여비도 있을 테고, 사진 액자라도 해야 하겠지 생각하다 보니 나의 웨딩드레스를 리마인드 하게 되었다.
서른을 훌쩍 넘겨 결혼을 하면서, 많은 준비와 다짐이 있었을 법 하지만 정작 내 인생의 모멘텀이 될지도 모르는 그 역사적인 순간을 나는 단순히 들뜬 채로 맞이 했다.
애초에 결혼을 하려는 생각이나 곁에 남자 친구를 두려는 생각이 머릿속에 아예 없었으므로 더욱 그랬을 것이다.
간혹 남자 친구의 팔짱을 끼고 나타나 한 껏 애교와 비음을 발사하던 친구들이 부럽기보다는 낯설고 오히려 내가 겸언쩍기 까지 했다.
회사를 학교 다니듯 다니는 나는 회사의 선배 후배들과의 시간이 금쪽같았다. 아주 가끔 정신이 들어 야간 대학교를 다니거나, 자격시험을 준비하는 시간 이외에는 그들로부터 배운 여흥과 여유의 시간이 청춘의 전부였다.
하나둘씩 시집이라는 굴레로 들어가는 친구들 덕분에 곁이 허전해진 나는 야간대학을 다니기 시작했다. 졸업을 한 후에는 운이 좋게 지방 발령이 나는 바람에 의도치 않게 엄마로부터 독립까지 하게 되면서 그 허전함이 메꾸어졌다.
27살 내가 맞이한 청주는 충청북도의 수도임에도 상상한 만큼 번화하거나 화려하지 않았기에 다소 배타적인 내륙도시에서 타인으로서 적응하기 어렵지 않았고 그곳에서 다시 맺은 인연들과 소중한 시간이 차곡차곡 쟁여졌다. 그 후 3년여 지나 다시 서울로 올라올 때는 아쉽기까지 한 지방의 독립생활이었다.
다시 서울로 와서 엄마의 사정거리 안에 들어왔을 때 나는 이미 서른이었다. 여차한 이유로 소위 어른들이 말씀하신 때를 놓치고 돌아온 딸에게 엄마는 엄마로서 마지막 인생 미션을 나의 결혼 독촉으로 정한듯했다. 물론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는 잔소리의 일부로 받아들였었지만 가랑비에 옷이 젖는다고 한 두 번쯤은 내가 사람으로서 제대로 된 의무를 다하지 못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보기도 하였다.
그 한 두 번쯤 드는 죄책감에 가끔 엄마가 연결한 선자리나 주변 동료들이 주선한 소개팅 자리에 나가 앉아 있어도 당최 알람이 울리지 않았다.
선과 소개팅이 무슨 차이인지 아직도 잘 분간이 안 가지만, 주변의 모든 인력을 동원에 나서는 그런 억지 인연 맺기 프로젝트도 별 성과가 없었다. 평생의 인연을 만나면 혈액이 집중된 심장이 나대고 귀에서 종소리도 울린다는데 당최 그런 소식은 내게 감감 무소식 이었다.
결혼은 내 운명에 없는 것인가! 이렇게 건조할 수 있는가! 그것과 별개로 내 인생은 무얼 하면 끝까지 즐거울까! 즐거울 것인가! 보람될 것인가! 지금 생각하면 고작 서른 남짓에 그런 진지한 고민을 했다는 것이 기특하다.
그러던 중 마지막으로 딱 다섯 번만 선을 보기로 하면서 작정하고 만나는데도 내게는 별 감흥이 없었지만, 상대방으로 부터 애프터도 없이 지나거나 몇 번 더 만나 보았어도 결혼까지 하기에는 용기가 나지 않는 그런 상대들이었다. 그들의 면면이나 됨됨이와는 별개로 나와의 인연이 이어지지 않는 것이었다.
그러다가 딱 다섯 번째 마지막 그자가 현재의 내 남편이 되었다. 그동안의 내 나름으로 이미지화해놓은 이상형에 전혀 가깝지 않았고, 현재의 나를 다른 계층으로 올려줄 멘토도 아니었고, 나의 이상을 함께 실현할 동반자도 아니었음에도 한 번에 그 모든 것이 뇌를 스쳐갔지만 셔츠가 땀으로 젖을 만큼 긴징하고 있는 그와 결혼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운명이었다.
만나서 6개월 만에 결혼하는 동안 내가 출장을 간 3일을 제외하고는 매일 만났다. 양쪽 어머니들은 다 크다 못해 늙어가는 서로의 자식들이 혹여라도 결혼 전 남들에게 설명하기 민망한 역사라도 만들까 노심초사 9시만 되면 귀가 독촉을 하실 정도였다. 지금 생각하면 역사는 긴 시간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물론 우리 둘은 그런 민망한 역사도 만들줄 모르고 결혼식을 했다.
결혼은 많은 것들을 준비하고 계획하고 조율해야 했다. 예식은 기독교식으로 할 것인가 일반식으로 할 것인가, 결혼식장은 누구네 집에 가까운 쪽으로 해야 하는지, 음식은 어떤 것으로 해야 하는지, 예단은 얼마나 해야 하는지, 시댁에서 신혼을 시작하는데 가구는 얼마나 해야 하는지, 이러한 것들에 쫓기다 결국 나의 웨딩드레스는 내 몸에 맞는 것이 최선이 됐다.
우아해야 할지, 살짝 귀여워야 할지, 가슴은 얼마나 파야할지, 어깨는 드러낼지, 손목까지 덮을지 지금도 떠올리면 내가 입었던 드레스 모양이 떠오르지 않는다. 게다가 결혼식 당일 호르몬이 활성화되는 바람에 얼굴의 여드름이 드레스를 덮어버린 탓이기도 할 것것이다.지금도 책꽂이 가장 높은 곳에서 먼지를 머금고 있는 사진첩을 열어볼 용기가 나지 않을 정도이다.
내후년이면 결혼 20주년이 된다. 앞서 인연이 전혀 없던 어느 사진관에서 제안한 리마인드 웨딩사진을 조심스럽게 계획해 보고 있다. 물론 같이 사진을 찍어야 할 그에게는 아직 이야기 시작도 하지 않았지만, 다시 찍게 된다면 나의 매력을 한껏 발산할 웨딩드레스를 고심하고 고심하여 고른 후에 멋진 사진 한 장 남기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