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남과의 데이트

소심한 만남

by 다은


코로나 사태가 2019년부터 시작되었으니 올해가 햇수로 3년 째이다. 2020년 하반기부터는 본격적으로 마스크를 쓰기 시작했고, 서로의 얼굴은 마크스에 가려진 얼굴로 이미지화되어 있다. 덕분에 나는 아주 가끔 화장끼 없는 민낯으로 출근하기도 한다.

마스크에 얼굴이 가려져 아무도 노메이컵을 눈치채지 못할 것이고 그런 날은 점심시간에만 조심하면 된다.


오늘 낮에는 이대남(20대 남자) 들과 식사를 하게 되었다. 처음 마주한 노마스크 얼굴이 반가웠다. 이런 얼굴이었구나, 역시 우리 회사 이미지에 맞게 정감 있고 호감 가는 용모이다.


이 글로벌한 이슈에도 우리 회사는 신규직원을 지속적으로 채용해왔다. 가뜩이나 좁은 취업의 문턱을 코로나가 더욱 좁혀놓았으나, 다른 회사의 채용 가뭄 덕분에 우리 회사는 유사 이래 최고의 스펙을 갖춘 MZ세대들이 새내기로 들어오는 것이었다. 일부에 해당되는 이야기 이겠지만 줄넘기도 과외한다는 그들이 갖춘 실력과 소양이 앞으로의 100년을 책임져주기를 진심으로 바라고 있다.


어제는 다른 기관에서 자금이체가 지연되는 바람에 각 팀에서 마감업무를 맡고 있는 신규직원들의 퇴근이 모두 늦게 되었다. 팀별 두 명 이상씩은 함께 남아 있는데 유독 혼자 남아 뒤처리까지 하느라 고생한 직원이 있어서 위로차 오늘 점심을 함께 하기로 했다.


다른 팀과 식사를 하자고 하려면 일정, 참석인원, 메뉴, 대화 주제 선정에 유의해야 한다. 상대방도 일정이 있을 것이므로 최소한 2주 전에는 시도를 해야 하며, 인원은 최근 코로나 방역지침을 준수해야 하므로 나를 포함한 4인 이내여야 한다. 참석자들의 친소관계도 사전에 알아두어야 할 정보이다. 또한 오늘처럼 신입 세대를 만날 때에는 메뉴도 힙한 것으로 고려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함께 나눌 대화의 주제 선정이 가장 중요한데 말을 많이 하면 꼰대가 될 수도 있고, 주제 선정을 잘못하면 엄근진(엄중, 근엄, 진지) 모드로 보이거나 가벼운 사람으로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자칫 자주 대면할 기회가 없는 이들에게 부정적 이미지로 남을 공산이 크다.


오늘의 약속은 어젯밤 함께 자금을 기다리며 잽싸게 일정을 잡았다. 함께 늦은 퇴근을 하면서 제안을 했는데 흔쾌히 약속을 허락했다. 몇 년 전부터 나는 해가 지날수록 누구에게 무언가를 청하거나, 의사를 물어본다는 것이 매우 망설여지고 용기를 필요로 하는 일이 되어가고 있다. 그래서 그들과의 약속이 흔쾌하고 허락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이다.


메뉴는 물어보아서 대답을 해주면 좋은데, 제일 어려운 대답은 "아무거나 잘 먹습니다!"이다. 머릿속에 미리 쌀국수와 스파게티를 생각해 놓았었는데 물어보니 역시 "아무거나 잘 먹습니다!"였다. 쌀국수는 어떠시냐 물었더니 좋다고 대답이 돌아왔다. 회사 근처가 아닌 조금 낯선 곳으로 방향을 잡았다. 쌀국수가 거기서 거기다 할지 몰라도 조금 먹어본 나로서는 가게마다 국물이나 면발에 차이가 있음을 알기에 새로운 맛을 경험하게 해주고 싶었다.


아침 출근길에 눈을 반짝이며 포털사이트의 기사를 검색했다. 오늘 점심시간에 풀어야 할 썰의 주제 선정을 위한 것이다.


주로 정치섹션에 많은 기사가 있지만, 그건 너무 위험하다. 지지하는 방향이 다를 수 있기 때문에 첫 대면에서 나눌 대화로는 주제가 무거워질 수 있다.


연예섹션은 가벼워 보일 우려가 있으므로 제외했다. 게다가 BTS 멤버 이름도 모르는 내가 아는 범위는 2천 년대 가수이거나, 최근 스캔들로 물의를 빚은 연예인들일 것이므로 가벼움과 무지함의 이미지로 거리감까지 커질 수 있다.


그나마 사회면이 안정적이다. 담백한 사실을 공유할 수 있기 때문에 감흥은 각자의 몫으로 두어도 된다고 생각이 들었다.


주문한 쌀국수가 나왔고 일행 중 한 명이 여자 친구에게 사진을 보내어 놀리고 싶다며 이름도 낯선 사이드 메뉴를 하나 주문해서 사진을 찍었다. 한참 식사를 하다가 "펀슈머"라는 개념과 함께 양-말-곰의 이름을 가진 맥주, 소주 모양을 한 디퓨저가 있다더라 하면서 툭 주제를 떨구었다.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보니 알고 있는 것이다. 다행이다. 골뱅이 맥주라는 것도 있는데 맛이 별로였다고 한다. 양-말-곰-맥주는 SoSo!! 그 외 내가 미처 모르는 다른 펀슈머 아이템들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역시 이름만큼이나 재미난 상품들이 많다.


한참 먹느라 말하느라 바쁜데 옆자리 손님이 내 얼굴을 바짝 들여다본다. 놀라 쳐다보니 후배 팀장님이시다. 가벼운 농담으로 인사를 나누고 다시 우리 대화에 집중했다. 그가 먼저 식사를 마치고 자리를 뜨면서 또다시 얼굴을 바짝 들여다보며, 우리 테이블 식사값을 계산하고 나가겠다고 한다. 어젯밤 무슨 꿈을 꾸었지 횡재인가 잠깐 생각했지만 곧 민망했다. 내가 밥을 산다고 만든 자리인데 어쩌지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일단 감사의 인사를 온 얼굴로 전하며 식사를 계속하는 중에 이 민망함을 해결할 방책을 떠올렸다.


위층에 아이스크림가게가 떠올랐다. 커피는 아침에 마시는 것을 본 것 같고 특별한 디저트를 생각하다 보니 심하게 달달한 아이스크림이었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려보니 가게가 철수를 한 것이 아닌가! 코로나가 장기화되면서 절대적인 유동인구가 줄어드는 데는 소상공인뿐만 아니라 대형 프랜차이즈도 버텨낼 재간이 없었던가 보다.


옆 가게에 사람들이 모여있다. 키 오츠크로 주문하는 음료 매장이다. 이럴 때는 얼른 연장자가 메뉴를 결정해주는 것이 좋다. 그래야 다음 사람이 메뉴 선택의 가이드로 참고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각자 원하는 메뉴를 골라 자리를 잡았다. 나는 달달한 수박주스였고, 하나는 요거트 하나는 아이스커피였다.


2부 주제는 재테크이다. 부동산에 관심이 있다고 한다. 3년을 목표로 열심히 종잣돈을 모으고 있지만 시간이 아득하다고 했다. 이제 1년 차인데 3년이 길게 느껴질 수 있겠다 싶어 용기를 불어넣어 줄 요량으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일단 저질러라 원하는 목적물이 발견되면 발품을 팔아야 한다. 주변도 탐색하고 근처 부동산 사장님과 안면도 터놓고 급매물이 나오면 내가 떠오를 수 있게 그리고 적어도 2년은 탐색을 해야 할 필요도 있다고 했다.


나는 꼰대질과 조언 사이에서 수위 조절에 신경을 썼지만, 이미 나는 그들에게 기득권이므로 나의 순수가 100퍼센트 전달되지 못했을 것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또한 천정부지로 향하고 있는 시장 상황을 놓고도 저지르라 말하는 내게 괴리감을 느꼈을 테지.


나는 다만 용기를 주고 싶었을 뿐인데 조금이나마 진심이 전달되었기를 바라본다. 종잣돈을 모으는 와중에도 적절한 규모와 일정을 안배해가면서 각자 동생들에게 버릇이 나빠지지 않을 만큼 용돈도 주고 있다고 한다. 참으로 건실한 청년들이다. 준수한 용모에 예의도 바르고 가슴 따뜻한 가족애를 품고 있는 것이다. 어느 분 이신지 참 잘 키우셨다. 부러웠다. 동시에 아직 철없는 우리 아이들이 오버랩되었다.


끝으로 나보다는 훨씬 길게 남은 조직생활이 늘 즐겁고 보람되길 바란다는 멘트와 함께 이후에 언제든지 밥친구를 하자고 제안했다. 진심으로 다음번에 나를 한번 불러주기를 바라면서...



6월인데도 싱그러운 오후 시간을 맞이하게 되었다.

소심하게 시작한 이대남들과의 점심 데이트 덕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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