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은 이루고 싶은 가족상이 확실한 사람이었다. 가정을 꾸린다면 적어도 아이 둘을 낳을 것이라고 자주 이야기했었다. 언젠가 그에게 꿈을 물었던 적이 있었는데, 거기에도 '4인 가족'이라고 답했던 그였다. 그 말이 남일 같지 않아 꽤나 허걱스러웠지만, 나 역시 유년시절 남동생과 어울려 커왔던 기억이 좋았기에 나쁘지 않겠다 생각했다.
문제는 시기였다. 결혼을 하고 나서부터 아이에 대한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나누기 시작했는데 서로 생각하는 시기가 많이 달랐다. 나는 그와 합치고 1년 정도 신혼을 보낸 후 임신을 시도해 보자는 생각이었고, 남편은 빠르면 빠를수록 좋겠다는 입장이었다. 결혼 당시, 우리의 나이 만으로 서른. 생물학적 나이로 치자면 임신, 출산하는데 결코 빠른 것은 아녔지만, 주변에 결혼한 지인도 손에 꼽는 나로서는 여전히 많이 빠르게 느껴졌다.
한 번은 내가 아이를 주저하는 마음을 이해해줬으면 해서 EBS 다큐 '저출생'을 같이 보자고 이야기했었는데, 그는 그 콘텐츠를 같이 보자는 이유가 무엇이냐며, 내 불안에 정체가 있는 건지를 이성적으로 분석하려 들려했다.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임신, 출산, 육아의 과정을 앞두고, 나의 마음은 불안과 두려움으로 가득한데, 자꾸 늦었다, 늦었다 채근하니 나의 마음은 되려 뒷걸음질 치는 듯했다.
그리고 결혼한 해 2023년의 마지막날에도 우리는 이를 주제로 다시 언쟁을 치렀다. 당시 나는 새로운 직장에 이직 시도를 계속하고 있었는데 아무래도 새 직장을 들어가면 적응하는 시간도 있어야 되니, 아이 한 명을 낳고 둘째는 그때 가서 생각해 봐도 되지 않을까 툭 얘기했는데, 그는 그게 무슨 말이냐며 잔뜩 상기된 얼굴로 울분을 토했다. 그리고 나는 그가 마지막으로 덧붙인 말에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나는 더 이상의 불확실성을 만들고 싶지 않아."
직장문제로 결혼 직전에 기약 없이, 기어이 서울로 훌쩍 떠나온 나는 말문이 막혔다. 생각해 보면 그는 정말 많은 걸 감수하고 있었다. 커리어를 포기하고 싶어 하지 않는 나를 존중해 방학부부의 삶을 견디고 있었고, 나의 서울행을 불안히 여기는 시가의 방패막이가 되어주고 있었다. 게다가 그의 꿈이라고 하는 4인 가족조차 결국 나의 고집대로 서울에서 우리가 합치고 난 후부터 고려하기로 했고 말이다. 어쩌면 그의 밀어붙임은 기반이 단단치 않은 우리 관계에 어떤 '확실'을 심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그다음 해, 그가 겨울방학이 되어 서울에 올라와있을 때, 나는 그의 불안한 마음을 달랠 겸 먼저 산전검사를 제안했다. 서울에서 지원해 주는 것이라 금전적인 부담 없이 편안한 마음으로 신청했고, 예약이 밀려있어 약 2달 뒤쯤 검사를 받게 됐다. 검사는 간단했다. B형 간염, 빈혈 등 기초적인 내용을 건강상태를 혈액검사로 점검하고 남자는 정액검사를, 여자의 경우엔 AMH(난소나이기능검사)와 부인과 초음파를 추가로 진행했다.
그리고 1주쯤 뒤였나, 검사 결과가 나왔는데 아니 웬걸 나의 AMH 수치가 내 나이를 훨씬 상회하게 나온 것이다. 퇴근길에 결과를 확인한 나는 적잖이 충격을 받아 길거리에서 5분 정도 우두커니 서있었다. 내가 기대한 결과는 이런 것이 아니었다. 주에 3~4일 러닝 하고, 체력도 여자치고 꽤나 좋은 편이라 나는 당연히 좋은 결과일 거라고 자신했고, 그 결과를 토대로 불안한 남편의 마음을 달래줄 작정이었다. 결과에 놀라 다음날 전화로 급히 상담도 받고, 산부인과도 다녀왔는데 두 곳에서 모두 AMH수치는 난소에서 생성할 수 있는 난자의 양을 뜻하는 것이지, 난자의 질 등 생식력을 뜻하는 것은 아니라고 설명해 주었다. 그럼에도 AMH수치에 매달려 계속 불안해하는 나에게, 의사 선생님은 강조했다. 중요한 것은 생물학적 나이라고.
나의 일희일비, 온갖 난리를 지켜보던 남편의 반응은 의외로 덤덤했다. 오히려 나를 진정시켜 주었다. AMH수치 자체는 임신을 하는 데 있어 살펴보는 하나의 지표이지 전체가 아이이며, 우리는 아직 상대적으로 젊기에 큰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나의 만약에, 만약에 병은 아이가 영영 찾아와 주지 않는 경우도 가정했는데, 그는 설사 그런 상황이 되더라도 노력하고 안 생기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니 괜찮다. 우리끼리 건강하면 괜찮다 토닥여줬다.
결과를 받아 들고 일주일 내내 나는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확실히 깨달았다. 원할 때에 아이를 가질 수 있겠다는 생각은 오만이구나. 아이를 가질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상상 한 번에, 그간의 복잡했던 생각은 단번에 단순해졌다. 그리고 결론에 다다랐다. 기적처럼 우리에게 생명이 찾아와 준다면, 그게 어느 때이든, 어느 상황이든 그저 감사히, 귀히 여기겠다고. 그렇게 나는 엄마가 될 준비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