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알아주는 사람에게만 마음을 쓰기로 했다
오랜만에 열 명이 넘는 대학교 동아리 친구들과 저녁 모임을 하게 되었다.
연간 한 번씩 회식을 하는데 그때마다 결혼하는 친구가 있던 터라 매번 청첩장 모임이 되곤 했다. 사실 친구들을 점심 식사나 저녁에 몇몇 이서 단출하게 보는 것은 좋아하지만 이렇게 대규모로 보는 것은 좋아하지 않았다.
필자는 술을 즐겨하지 않기도 했고, 왠지 이런 대규모 모임에서는 쉴 새 없이 쏟아지는 농담과 웃음, 의식 없는 대화의 주제가 좀처럼 적응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따로 보면 얼마든지 웃길 수 있는 친구들 이건만 이렇게 대규모 자리에선 필자는 주로 듣는 청자가 되어 사이다만 홀짝 마시곤 했다.
그래서 그런지 술을 좋아하는 몇몇 친구들은 필자의 옆자리가 빈자리임에도 멀찍이 떨어져서 앉았고 생각보다 그런 면이 굉장히 속상하게 느껴졌다.
아무리 술을 안 마시더라도 같이 사는 얘기하면서 앉을 수 있지 않나 싶었는데, 직장을 다니고 나서 그런지 다들 편한 사람, 재미있는 사람과 같이 앉고 싶었던 것 같다. 번잡한 자리 속에서 필자 옆자리만 비워 있노라면 자존감이 안 떨어질 수가 없었다.
그런 묘한 분위기가 느껴지면 가끔은 괜히 이 모임에 왔구나 싶기도 했다. 나름대로는 반가운 친구들과 얘기를 나눌 수 있어서 온 것인데 막상 오니 나에게 궁금한 것이 별로 없는 친구들이 꽤 많았다. 그래서 어떤 날은 매우 소외된 마음을 안은 채 터덜터덜 집을 돌아오곤 했다.
가장 억울했던 건 필자 옆의 빈자리에 앉지 않은 그 친구는 사실 나도 별 관심이 없었던 친구였기에 속으로 괘씸하기도 했다.
그래도 같이 앉고 했으면 말이라도 더 걸려고 했고, 심지어는 지인의 결혼식장에서 혼자 왔던 그가 외로울까 봐 나름 챙겨줬던 지난날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래도 미워하지는 말자 싶었다.
생각해 보면 혹시나 내가 타인에게 그런 적은 없었는지 떠올릴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된 것 같다. 내가 재밌는 사람과 어울리려고 조금 덜 친한 사람을 소외시킨 것은 아닐는지… 분명 있었던 것 같다. 그런 걸 떠올리면 나는 과거의 업보를 지금 되돌려 받는 것일 수도 있겠다.
무엇보다 이제는 나를 찾는, 나를 좋아하는 모임에 가긴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여러 저녁모임이 있었지만 나를 좋아하는 모임에선 이런 소외감은 좀처럼 느끼지 못했으며 오히려 너무 즐거웠었다. 나라는 사람의 가치를 인정해 주고 존중해 주는 사람들과의 저녁은 술이 없어도, 나의 농담이 재미가 없더라도 늘 즐거움이 가득했다.
나의 가치를 몰라주는 모임에는 굳이 내가 신경을 쓸 필요가 있을까. 그런 사람에게 마음을 쓰기에는 삶이 너무 아깝긴 하다.
결론은 앞으로는 그런 일에 소외감을 느낄 필요도 없으며, 나의 가치를 알아주는, 나를 좋아하는 모임에 가야겠다. 나는 누가 함부로 무시할만한 그런 사람이 아니니까. 한 겨울 외로움을 느끼며 돌아오던 저녁에 떠올린 생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