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홍제천 자전거 나들이

내가 몰랐던 서울의 모습들

by 하루

오래간만에 나 홀로 주말을 보내게 되었다. 오랜만에 맞이한 혼자 하는 시간을 처음에는 어떻게 보낼지 몰라 당황했다.


'음 반지의 제왕을 일단 보고 생각해 보자'


4시간이나 되는 반지의 제왕 확장판을 보면서 다음에 무엇을 할지 생각해 보기로 했다. 그러다가 호빗들도 세상을 구하려고 반지 하나 때문에 원정을 떠나는데, 내가 이렇게 방구석에 머물러 있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그들처럼 악에서 세상을 구할 순 없겠지만, 오랜만에 나의 명마 '따릉이'를 타고 아무 계획 없이 서울 원정을 가보기로 했다.


내가 사는 곳은 등촌이라는 곳인데 거기서부터 한강을 따라 건너편 마포로 가기로 했다. 이윽고 홍제천이라는 곳을 자전거를 타고 올라가면서 만난 인공폭포는 풍경이 정말 아름다웠다.


이곳에는 카페와 간이 도서관이 있었다. 어르신들과 외국인 관광객분들이 많이 계셨는데, 이 고즈넉한 풍경을 서울 안에서 볼 수 있다는 것이 참 신기했다. 만일 나도 일행이 있었다면 여기 앉아서 경치를 즐겼을 터였다.


여기까지만 해도 1시간을 꼬박 채워 충분히 먼 거리를 온 것이라 멈출만했지만, 날씨도 좋고 해서 목적 없는 자전거를 다시 타기 시작했다.

홍제천 인공폭포


자전거를 타고 가며 처음에는 외로움을 달래고자 부동산이나 주식 유튜버들이 방송을 들었다. 재잘재잘 거리는 말소리가 외로움을 잠시 덜어내 주는 듯했지만, 그 말소리들이 너무나 지겹게 느껴졌다.


강을 올라가면서 주위 풍경이 내가 알던 서울의 모습에서 조금씩 시골에서 볼 듯한 풍경으로 바뀌어져 갔다. 시끄러운 차소리도 덜하고 사람들도 덜 붐비는 곳에 이르자 잠시 이어폰을 꺼두고 새들의 지저귐, 물소리를 들어보았다. 나이가 들어서인지 세상의 소음이 이제는 조금씩 지겨워졌다.


홍제천 자전거로


강둑을 따라서 간 서울의 풍경은 조금씩 변했다. 빌라들이 옹기종기 모여있고 아파트들이 드문드문 서있던 자리를 지나 강둑이 잘 정비되지 않은 곳에서 나지막한 집들이 나타났다. 주위는 어느새 고요해졌고 바퀴를 세차게 돌아가는 내 자전거 체인소리와 껄떡이는 내 숨소리, 떨어지는 물소리만 들렸다.


서울이라고 생각하면 어디든지 값비싼 곳이라는 이미지가 떠올랐는데, 이곳의 서울은 내가 생각하는 것 이상의 다채로움이 가득했었다. 이곳의 다채로움은 시끄러움과 대비되는 조용함, 어찌 보면 젊은 보다는 나이 듦에 가까운 다채로움이었다.


그것이 빈부의 격차이던, 풍경의 다름이던, 아니면 사람들의 온정의 차이이든 간에 미디어에서 주목하는 서울의 풍경과는 사뭇 달랐다.


그리고 마주친 포방교! 어쩌면 골목 식당에 나온 포방터 식당 사장님이 이곳 근처에 계시는 건가 싶었다.


포방교 근처


가파른 개울을 조금 더 올라가자 상명대학교가 나왔다. 많이 들어보긴 했지만 직접 본 것은 처음이었다. 그곳에 도착하자 젊은 학생들이 하나 둘 보이기 시작했다. 다들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가만히 보니 버스는 경복궁 쪽을 향하고 있었다.


하기야 이 조용한 곳에서 주말에 갇혀있다는 건 젊음에게 잘 못하는 거다. 대학교 시절 나는 대학교와 집에만 갇혀 있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참 어리석게 보냈다.


굳이 소비를 하지 않더라도 어디든 걸어 다녔더라면 보는 시야가 지금과는 또 달라졌을 텐데 생각해 보면 아쉽게 흘려버린 시간들이었다. 별다른 목적이 없던 나는 버스를 따라가기 시작했다.


언덕을 올라가자 하나 둘 젊은 커플과 관광객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곳은 부암동이라는 곳이었는데, 거리에 는 예쁜 카페들이 늘어서 있었고 사람들도 제법 가득 차 있었다.


워낙 언덕이 가파른 곳이라 이런 곳에 사람들이 있을까 싶었는데 높은 고지대에 다들 차를 세워두고 카페에 갔다. 아직 나의 운전 실력으로는 이 카페는 난이도가 너무 높았다.


조금 더 가니 청운문학도서관과 윤동주 문학관이라는 곳이 나왔다. 확실히 서울의 한적한 곳에 문학관이 있어서 보기가 좋았다.


문학은 서울의 번잡함과는 결이 다르다. 이 세속의 시끄러움과 문학은 결은 다르다. 좋은 문학을 읽을 때면 잠시나마 현실에서 유체이탈을 하는 느낌을 받는데, 그렇게 사람은 문학을 통해 영혼을 채울 수 있는 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만일 윤동주 시인이 지금 서울에 살았다면 별 헤는 밤을 쓸 수 있었을까? 서울의 불빛 때문에 가리어 별빛을 헤아릴 수는 없었을 것이다. 오히려 네온 십자가 헤아리는 밤이나 자동차 쌍라이트 헤아리는 밤 정도는 가능했을지도 모르겠다.


소란스러운 서울에서는 그 섬세한 감성이 남아 있기란 참 쉽지 않았을 듯하다.


청운문학도서관을 지나면서


청운도서관을 지나 내리막길 언덕을 자전거를 타고 내려가며 한적함을 즐길 수 있었다. 이따금 차들 소리도 들렸지만 고요함 속에서 내리쬐는 햇볕을 즐길 수 있었다. 얼마 만에 느껴본 고요와 햇살인가 싶었다. 자전거를 최대한 천천히 몰며 빰에 스치는 바람을 최대한 만끽했다.


물론 머지않아 청와대가 있었고, 조금씩 인간의 욕망들이 나타났다. 천천히 내려가면서 마주친 경복궁 돌담길 근처에는 저마다의 정치적인 구호가 걸쳐져 있었고, 여러 시위대의 구호가 서서히 들려왔다.


서서히 드러난 거대한 고층의 빌딩들은 다시 내가 알던 서울로 들어왔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나의 작게 시작했지만 오래 걸렸던 자전거 여정이 끝이 났다. 내 체력을 생각하면 처음부터 경복궁까지 목표했다면 가지 못했을 거리인데, 풍경의 아름다움에 이끌리어 계속 갔던 것 같다.


삶도 지치지 않게 매 순간 가고 싶은 길에 대해서 나아가다 보면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멀리 나아가 있는 나를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싶기도 했다.


자전거 여정


어쨌든 하릴없는 작은 여정에서 내가 몰랐던 길, 몰랐던 풍경, 몰랐던 적막함이 주는 편안함을 오랜만에 느껴봤다. 조용한 날 없는 서울에서 잠시나마 이어폰을 내려두고 마음의 소리를 들을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작가의 이전글후암동, 사라지는 것들을 향한 작은 기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