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람스를 좋아하세요?”
그 구절이 그녀를 미소 짓게 했다.
그 짧은 질문이 그녀에게는 갑자기 거대한 망각 덩어리를,
다시 말해 그녀가 잊고 있던 모든 것,
의도적으로 피하고 있던 모든 질문을 환기시키는 것처럼 여겨졌다.
쌀쌀해진 날씨에 마음이 쓸쓸해진 걸까.
내가 좋아하는 밴드 넬의 9집 앨범 ‘Moments in between’을 들으며 출근하는데 ‘브람스를 좋아하세요...’가 떠올랐다.
이 앨범은 관계 형성의 시작부터 끝나는 순간까지의 과정을 담고 있다. 애초에 앨범 구상을 그렇게 하고 곡을 만들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첫 곡부터 마지막 곡까지 듣다 보면 한 편의 이야기가 머릿속에 그려진다.
새로운 관계가 시작될 때의 설렘과 그 관계가 끝날 때의 아픔까지.
오래된 관계인 폴과 로제.
새롭게 시작되는 폴과 시몽. 둘의 관계가 시작되고 끝나는 순간이 이 앨범의 서사와 담아 있다.
폴의 사랑
늘 자신보다 중요한 우선순위가 있고 나를 외롭게 하지만 오래된 연인인 로제에게 길들여져 있다. 그와 오랜 시간 만들어온 관계와 그 관계를 만드는데 들인 노력을 끝내는 건 쉽지 않다. 14살 연하인 시몽의 열렬한 사랑에 잠시 흔들리지만 그냥 잠시였다. 폴의 로제에 대한 마음은 사랑일까?
로제의 사랑
폴을 사랑한다. 하지만 폴과 헤어져 돌아오는 길에 묘한 해방감을 느낀다. 심지어 다른 여자와 하룻밤의 즐거움도 마다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폴이 시몽을 만나는 건 못 보겠다. 이건 사랑일까?
시몽의 사랑
또래의 여자에게서는 느낄 수 없었던 폴의 성숙함과 노련함에 반하 시몽. 어린 나이에 생긴 단순한 호기심이었을까 아니면 진정한 사랑이었을까?
˝시몽, 이제 난 늙었어. 늙은 것 같아...˝
39살의 폴. 한 번의 이혼을 겪었다.
아마 폴이 20대였다면, 로제를 떠나는 게 더 쉬웠을까.
나이 앞에 사랑이 망설여지는 건 맞다. 용기 내는 게 더 쉽지 않아 지닌까. 다시 누군가와 관계를 만들어 간다는 건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소모하기에 새로운 관계를 맺는 게 어려워진다.
그래서 이전에는 이해되지 않던 폴의 고민과 선택이 지금은 이해된다.
사랑이란 무엇일까? 그리고, 누군가에 의해서가 아닌 내가 나로 존재하는 것에 대한 질문을 던진 책.
그러면서 시몽의 열렬한 구애에 설렜던 책이다.
“저는 당신을 인간으로서의 의무를 다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고발합니다. 사랑을 스쳐 지나가게 한 죄, 행복해야 할 의무를 소홀히 한 죄, 핑계와 편법과 체념으로 살아온 죄로 당신이 죽어 마땅하다고 생각합니다. 당신에게는 사형을 선고해야 마땅하지만, 그 대신 고독 형을 선고합니다.”
다시 로제에게 돌아간 폴이 로제와의 관계에서 느끼는 안정감 속에서 행복을 찾을 수 있기를.
손님이 올 거 같은 않았던 오늘.
바람이 많이 불고 비도 이따금씩 흩날렸다.
골목길 앞 석류나무에는 이제 나뭇잎이 얼마 남지 않았다. 어제 하루 쉬고 가게에 오니 나무 밑에 낙엽이 수북하게 쌓여 있다.
앙상해진 나뭇가지를 보니 겨울이 다가옴이 느껴진다.
혼자 일거라 생각한 오늘은 내가 좋아하는 노래라도 실컷 들어야지 하는 생각에 넬과 김필의 노래만 플레이리스트에 담았다.
나의 생각이 무색하게 몇 분의 손님이 다녀가고, 다시 발길이 이어지지 않을 거 같은 해가 지고 어두워진 지금 이 시간 오늘 떠올린 책에 대해 생각을 정리해 본다.
다행이다.
오늘도 매출 0원은 기록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