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는 우리를 잇는 실

한강 작가님 노벨 문학상 수상 연설문

by 책방 잇다

한강 작가님의 노벨 문학상 수상 연설문에 나오는 문장들에 긴 시간 눈길이 머물게 된다.

아마 요즘 같은 사태를 지켜보고 있으니 더 와닿는 거 같다.


과거가 현재를 도울 수 있는가?

죽은 자가 산 자를 구할 수 있는가?

이후 이 소설을 쓰는 동안, 실제로 과거가 현재를 돕고 있다고, 죽은 자들이 산 자를 구하고 있다고 느낀 순간들이 있었다.


인간은 어떻게 이토록 폭력적인가? 동시에 인간은 어떻게 그토록 압도적인 폭력의 반대편에 설 수 있는가? 우리가 인간이라는 종에 속한다는 사실은 대체 무엇을 의미하는가? 인간의 참혹과 존엄 사이에서, 두 벼랑 사이를 잇는 불가능한 허공의 길을 건너려면 죽은 자들의 도움이 필요했다.


우리는 인간성을 믿고자 하기에, 그 믿음이 흔들릴 때 자신이 파괴되는 것을 느끼는 것일까? 우리는 인간을 사랑하고자 하기에, 그 사랑이 부서질 때 고통을 느끼는 것일까? 사랑에서 고통이 생겨나고, 어떤 고통은 사랑의 증거인 것일까?


세계는 왜 이토록 폭력적이고 고통스러운가?

동시에 세계는 어떻게 이렇게 아름다운가?


하나의 장편소설을 쓸 때마다 나는 질문들을 견디며 그 안에 산다.


질문을 하고 그 질문들에 대해 끊임없이 생각하는 것.

그것이 우리를 ‘어떤 사람’으로 만들지 결정하는 거 같다는 생각을 했다.


1980년 오월 당시 광주에서 군인들이 잠시 물러간 뒤 열흘 동안 이루어졌던 시민자치의 절대공동체에 참여했으며, 군인들이 되돌아오기로 예고된 새벽까지 도청 옆 YWCA에 남아 있다 살해되었던, 수줍은 성격의 조용한 사람이었다는 박용준은 마지막 밤에 이렇게 썼다.

“하느님, 왜 저에게는 양심이 있어 이렇게 저를 찌르고 아프게 하는 것입니까? 저는 살고 싶습니다.”


양심의 사전적 정의는 ‘사물의 가치를 변별하고 자기의 행위에 대하여 옳고 그름과 선과 악의 판단을 내리는 도덕적 의식.’이다.


나의 상식이 공동의 상식이 아니듯이 양심도 사람에 따라 다르다는 것을 우리는 너무 많이 봐왔다.

어떤 사람이 될 것인지 어떤 양심을 안고 살아갈지 생각해보게 하는 문장이었다.


100년이 조금 넘는 시간 동안 식민지, 전쟁, 군사독재, 민주화를 위한 항쟁을 모두 겪으며 그때마다 하나로 뭉쳐 극복해 왔다. 대다수가 선한 양심을 가지고 있기에 이번 위기도 극복할 거라 믿는다.


분노로 가득했던 마음을 슬픔과 무력감이 그 자리를 대신해 보낸 지난 한 주 동안 아무런 의욕도 느끼지 못해 종일 뉴스만 지켜봤다.

제발 우리의 평범하고 소박했던 일상으로 빠른 시간 안에 돌아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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