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으로 책방에 와서 밥을 먹던 길고양이가 있다.
처음엔 그 한 마리였는데 어느새 보니 더 많은 고양이가 와서 밥을 먹는다.
처음 한 마리가 올 때는 아침에 한번, 저녁에 한번 밥을 줬는데 여러 마리가 오기 시작하면서 밥그릇이 비워지면 채워 놓는다.
그들끼리 밥 먹으러 오는 시간을 정해 놓은 걸까. 시간이 겹치지 않게 와서 밥을 먹는다.
간혹 한 마리가 먹고 있을 때 다른 고양이가 오면 다가가지 않고 멀리서 지켜보다 먹고 있던 고양이가 가면 와서 먹는다. 그들끼리의 암묵적인 룰이 있는 거 같다.
처음 오기 시작한 고양이는 바탕은 갈색이고 부분적으로 검은색 털로 되어 있다.
귀의 모양이 온전한걸 보니 중성화 수술은 하지 않았고,
태어날 때부터 없었는지, 사고였는지, 학대였는지 모르지만 꼬리가 없다.
그리고, 다른 고양이에 비해 눈동자가 더 가늘다.
이 고양이에게는 나 혼자 부르는 이름이 있다.
‘보리’. 털 색깔을 보고 보리라는 이름이 떠올랐다.
김춘수 시인님의 ‘꽃’이라는 시처럼 이름을 붙여주고 나니 나에게 더 의미 있는 존재가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 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
출근하던 어느 날 보리가 지나가길래 “보리야”라고 크게 불렀다.
물론 내 부름에 응답하지 않고 그냥 가던 길을 갔다.
볼 때마다 이름을 부르면 내가 자신을 부른다는 걸 인지하게 될까.
사람에 대한 경계가 심한 아이라 밥을 먹을 때 내가 유리창 너머로 보여도 움찔하며 도망갔다.
그런데 오늘은 내가 유리창 가까이 다가가 쳐다봐도 나를 힐끔거릴 뿐 도망가지 않고 밥을 계속 먹는다.
나에 대한 경계를 풀은 걸까. 괜스레 뭉클해진다.
보리가 밥을 먹으러 오기 전에 핫초코를 사러 편의점에 다녀왔다.
비가 부슬부슬 내리니 따뜻한 핫초코가 먹고 싶어 늘 가는 편의점에 가서 핫초코를 사고 사장님과 서로의 근황에 대해 짧게 대화를 나눴다.
책방으로 돌아오는 길에 자주 가는 카페에 들러 안부인사를 전하고, 손에 쥐여 주시는 간식을 받아 들고 카페 앞에서 팔고 있는 군고구마를 사가지고 책방에 왔다.
오늘 책방 플레이리스트는 캐럴이다.
12월이 되고 처음으로 캐럴을 틀었다. 캐럴에 들뜨기 힘든 정국이라 캐럴을 틀지 않았는데 오늘은 캐럴을 듣고 싶었다.
모처럼 뉴스를 보지 않고 캐럴을 들으며 군고구마를 먹으며 책을 읽으며 찾아오실 손님을 기다린다.
오늘은 책방의 고요함도 좋다.
특별하지 않은 이런 일상이 너무 소중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