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이라는 말

by 책방 잇다

안녕의 사전적 정의는 ‘아무 탈 없이 편안함.’이다

그러니까 우리가 만나거나 헤어질 때 하는 ‘안녕’이라는 말속에는 당신은 편안하신가요? 편안하기를 바랍니다. 이런 마음이 담겨 있지 않을까.


살아오며 이런저런 일을 겪다 보니 특별한 하루보다 평범한 보통의 일상에 더 크게 감사하게 된다.

아무 탈 없이 편안함을 유지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알게 된 나이가 된 것이다.

아무 탈 없이 편안함을 유지하기 위해선 우선 내가 아프지 않아야 하고 오늘 점심은 뭘 먹을지가 중요한 고민인 하루를 보내야 하며 내 주변의 모든 이가 아프지 않고 별일 없이 지내야 가능한 ‘안녕’이다.


그래서 안녕이라는 인사가 으레 건네는 말이 아니게 되었다.


책방을 하며 안부를 묻는 사이가 늘고있다.


가장 먼저 안부를 묻기 시작한 사이는 책방에서 도보 1분 거리인 도로 건너편에 있는 꽃집 사장님이다.

처음에는 화장실에 놓을 식물을 사러, 그다음은 친구가 개업 선물로 보내준 화병에 꽂을 꽃을 사러. 그렇게 책방에 들여올 식물과 꽃을 사러 자주 갔고, 꽃집 사장님도 커피 마시러 책을 사러 책방에 오시고 그렇게 서로 종종 오고 가며 안부를 묻는 사이가 되었다.

말 몇 마디 나누지 않았는데 편하고 좋은 사람이 있는데 나에게 꽃집 사장님이 그러한 분이다.

지난번 이사 가고 싶다고 그냥 흘리듯 말씀하셨을 때 가시면 안 된다고 극구 만류했는데 곧 이사를 가신다.

알고 보니 이미 내가 책방을 열기 오래전부터 이사를 계획하고 계셨다고 한다.


책방이 있는 동네는 영업들을 짧게 해서 해가지면 어느새 하나둘 가게 불이 꺼진다.

도로 건너편에 환하게 불을 밝히고 있는 꽃집을 보며 알지 못하는 위안을 받곤 했는데.

가게의 불빛도 꺼지고 안부를 나눴던 사람도 떠나니 아쉽고 쓸쓸한 마음을 감추지 못하겠다.


엊그제 마지막 발길을 들러 화병의 꽃을 바꿨다.

새로운 꽃은 아이스퀸튤립 혹은 엘사 튤립이라는 명칭을 가진 빨간 튤립이다.

꽃과 잎에 눈 결정 같은 솜털이 붙어 있어 그런 이름으로 불린다고 한다.


튤립은 온도가 높으면 꽃봉오리가 열리고 온도가 낮아지면 꽃봉오리가 닫힌다고 한다.

난방기를 틀고 청소를 하고 오픈 준비를 마치고 보니 처음보다 꽃봉오리가 활짝 열려 있다. 4시가 넘어가며 해가 지고 기온이 내려가자 꽃봉오리가 다시 닫혔다.


뿌리가 잘린 채 땅에서 뽑혀 물에 꽂혀 있는데도 본질을 잃지 않고 꽃봉오리를 열었다 닫았다 하는 모습을 보는데 이유를 알기 어려운 위안을 받았다.

튤립의 생명력에 감응한 걸까.


어제는 책방에 밥을 먹으러 오던 길고양이 중 한 마리를 지나가던 분이 반가워하며 알아보신다. 그 고양이의 중성화 수술도 시켜줬다고 한다. 중성화 수술 후 방사하고 나서 보지 못했는데 잘 지내고 있는 거 같다며 반가워하신다. 쉽게 발걸음을 돌리지 못하고 그 고양이가 밥 먹는 모습을 환하게 웃으며 지켜보시다 가셨다.

안부가 궁금했던 존재의 안부를 알게 돼서 기뻐하시는 모습을 보니 그분에게 그 고양이가 나에게는 책방에 처음 오기 시작한 길고양이 ‘보리’ 같은 존재인 거 같다는 생각을 했다.


내가 안부를 물어야 하는 또 하나의 존재는 책방에 있는 식물들이다.

개업선물로 여러 개를 선물 받아서 시들거나 죽지 않도록 나름 잘 돌본다고 생각했는데 벌써 두 개가 많이 시들었다.

햇빛을 못 받아서 그런지, 아니면 난방기의 뜨거운 바람 때문에 그런지, 내가 퇴근하고 밤새 추운 책방의 온도 때문인지. 나로서는 알 수 없기에, 긴급처방으로 시들해진 두 개의 식물을 집으로 데려갔다. 온도차가 급격하게 달라지지 않는 집 안에서 회복되길 바란다.


내가 돌보는 것들의 안부를 살피고 책방에 찾아오는 분들께 안부를 건네며 하루를 보낸다.


책방에 들어오시는 손님에게 건네는 첫인사는 “안녕하세요”이고 마지막 인사는 “안녕히 가세요”이다.

나를 포함한 많은 이들이 안녕한 하루를 보내는 시간이 길어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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