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달원의 유서

2021년 01월 12일 01:43 - 11화 -

by 임주형

휴무일 새벽에는 말하기는 부끄럽지만 현재 애인이 있는 첫사랑의 전화가 걸려왔었다. 되도록 받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는데 4통째에 받았다. 그녀는 술을 좋아하는데 술에 취한 목소리였다. 그리고는 애인과 다투었다는 내용을 주절주절 이야기했다. 그 말을 듣고는 “그 내용을 왜 내게 이야기하는 거니? 너는 언제나 타인에게 기대려고 했어. 네가 지금 가장 먼저 노력해야 할 건 스스로에게 기대는 방법을 먼저 알아가는 거야. 그리고 자신을 사랑할 수 있어야 해. 너는 자신조차도 다루지 못하잖아. 나이가 몇 개니?”라며 답했다. 그랬더니 그녀는 울기만 했다. 그러다 하는 말이 “결혼은 오빠하고 하고 싶어 결혼은 오빠하고 할래.”였다. 나는 “그런 못 된 심보가 어디 있니? 너는 이 남자 저 남자 잘도 만났으면서 정말 못됐다.”라며 답했다. 아, 우선 나는 굉장히 느끼할 수 있지만 이성에게 가능한 사투리를 쓰지 않는다는 것을 미리 알린다. 얼마 전에 전화가 왔을 때는 개인적인 생각과 그녀의 심리를 곁들여 “좋은 이성은 원래 재미가 없는 사람이야 끌리는 이성은 당연히 재미가 있기 때문이지. 그렇지만 결국 결혼할 상대는 재미없는 사람하고 하는 거야.”라며 그녀의 심리를 꿰뚫듯 말한 적이 있다. 오래전 아주 어릴 적 중학교 시절부터 그녀는 나를 쫓아다녔다. 사귀고 헤어지기를 몇 번 반복했는데 그때 내게 상처를 아주 많이 받았다고 말했다. 그녀가 지금 와서 하는 말이지만 면밀하게 하는 말을 들어보니 순간마다 망치로 머리를 내려치는 것 같았다. 정말 생각조차 못했던 기억의 퍼즐 조각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는 그 당시에 나를 좋아하던 여학생들의 이름을 거론했는데 이제 와서 처음 알았을 정도다. 그만큼 이성에게 눈치가 없었고 십 년도 훌쩍 넘은 이야기다. 아무튼 “그때는 어쩌면 지금도 이성에게 눈을 뜨지 못했어.”라며 진짜 여자를 몰랐다며 사과했다. 신기한 것은 가끔 전화가 오는데도 그 일에 대해서는 절대 용서를 해주지 않는다. 고등학교 시절에는 내가 그녀를 진짜 좋아하게 된 적이 있었다. 그녀는 그때 나를 찼다. 스무 살 때도 18번 찍어서 잠깐 넘어왔다가도 또 찼다. 그래서 나는 그녀에게 그때 그 트라우마 때문에 연애를 못하는 게 가장 크다고 말했다. 그렇게 말하면 그녀는 내가 정말 못됐었다며 복수하고 싶어서 그랬다고 대답한다. 그리고는 자신이 잘못한 것에 대해서 사과도 잘한다. 어제 그녀에게 내가 한 말 중에 “아무것도 없이 단 둘이 무인도에 가서도 행복할 수 있을 것 같은 남자를 만나. 그리고 그런 남자하고 결혼해. 스마트폰도 없이 정말 그 사람만 있으면 모든 게 해결될 것 같은 그런 사랑을 해.”라고 말했던 게 기억난다. 진심이었다. 나에게는 그녀가 그런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지금은 아니다. 일하기 바쁘고 이렇게 가끔 글도 써야 하고 시간이 없는데 여기서 더 이상은 여유가 없다는 게 결정적인 이유다. 진짜 변명이 아니다. 그리고는 “네가 자그마한 국밥집 며느리로 와서 매장에서 서빙이나 하겠니?”라며 장난 삼아 말했다. 어머니뻘 손님들이 가끔 하는 말이 ‘누가 요즘 세상에 국밥집 며느리로 올라고 하겠노?’다. 이런 질문을 하면 그녀는 잘할 수 있다며 대답하는데 나는 애초에 애인이 있는 상태에서 그런 말을 하는 자체가 잘못된 거라고 받아친다. 물론, 그녀뿐만이 아니라 혹여나 누군가와 결혼을 하게 되더라도 가게에는 절대적으로 발 디디게 하고 싶은 생각이 없다. 본인이 하고 싶은 분야를 하게 하고 싶다. 일터에서 마주치는 것은 굉장히 좋지 않다고 생각하는 게 가장 큰 이유다. 의견 충돌로 인한 다툼이 잦아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아무튼 오늘은 유서에 쓸 데 없는 내용을 남긴 것 같다. 솔직한 마음으로는 쓸 데 없는 내용이 아니다. 기억이라는 것은 무언가, 지워지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묻히기는 한다. 십 년 정도 더 지나면 옛 기억들은 꺼내기조차도 어려울 만큼 깊숙한 곳에 있을 확률이 높다. 이 마저도 먼지가 제법 쌓인 내용 들이다. 이 페이지는 굉장히 부끄럽지만 그래도 남겨 두는 게 옳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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