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01월 17일 11:41 - 17화-
이제야 앉는다. 오전부터 정신없이 바빴다. 하필 그 와중에 부산에서 지인들이 말도 없이 두 팀이나 찾아왔다. 고마운 그들과 담소 나눌 시간도 허락되지 않았다. 오늘 같은 일요일은 내방 데스크톱에 앉는 순간까지 미간에 힘을 뺄 수 없다. 본격적으로 장사를 시작하기 전 주말에 무엇을 했었는지 생각해봤다. 깔끔한 셔츠를 입고 자주 가는 카페 구석 모퉁이에 앉아 따듯한 커피를 주문해서 아주 천천히 책을 읽었었다. 정말 마음에 와 닿는 문장을 발견하면 밑줄도 긋고 좋은 문장이 떠오르면 수첩에 썼다. 저녁쯤이 되면 마음이 맞는 친구 녀석과 의미 없는 수다를 떨기도 했다. 어차피 내게 주말마다 쉴 수 있는 조건이 생겨도 별다른 의미가 없을 거다. 연락해 볼 이성이 있는지 카카오톡 친구 목록을 뒤져도 어차피 없을 거고 이곳은 고향이 아닌 제2의 고향일 뿐 아무도 없다. 차를 타고 부산으로 가더라도 다 흩어지고 나처럼 그들도 없다. 오늘 가게에 방문한 지인 중에 한 팀은 오랜 친구 두 명이었다. 공사장 앞에 서있는 나를 보고는 처음에 공사장 인부님인 줄 알았다며 나를 놀려댔다. 부산 자갈치 시장에서 어머니가 사주신 기모바지를 입고 있었고 촌스러운 비니 모자를 쓰고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겉멋을 온전히 내려놓기 전에는 그중 한 친구의 옷을 코디해주고는 했었다. 내 모습이 어느새 많이도 촌스러워졌다. 아직은 조금 더 멋을 부려도 되는 나이일지도 모르는데 거울을 보면 나도 이제 아저씨다. 머리칼은 항상 바버숍에서 자르고 포마드 왁스를 물과 함께 비벼 간결하게 머리스타일은 만들고는 했었는데 매일 쓰는 헬멧 탓인지 이제는 집에 헤어 왁스류가 없다. 이상한 메이커의 겨울 바지만 늘어났을 뿐이다. 크게 충격적이지는 않았지만 이번 연도가 나의 마지막 20대라는 것을 자각했다. 중학교 시절 한 살 어린 내 첫사랑과 나를 티 안 나게 이어준 이성 친구가 결혼한다고 청첩장을 보내왔다. 중학교 이후로 첫 연락이었다. 간간히 연락했던 첫사랑에게 내 소식을 전해 듣고 연락처를 물은 듯했다. 결혼식 날짜를 보니 내가 갈 수 없는 날짜였다. 그래도 청첩장에 계좌번호가 있어 다행이다. 결혼이라는 것은 시기를 놓치면 할 수 없는 일이 되기도 한다. 어릴 적에는 어른이 되면 스물다섯 살쯤에 결혼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었다. 내 부모님이 나를 조금 늦게 낳으셨기 때문이다. 그래서 무언가 자녀와 스물다섯 살 차이 정도가 적합하다고 생각했었던 것 같다. 그러나 성인이 되고 군대를 다녀오니 이미 스물셋이라는 나이가 되어 있었고 이런저런 일들을 경험하다 보니 스물아홉 살이 되어버렸다. 어머니께서 늘 하시는 말이 “니는 아직 청춘이다. 엄마가 니 나이 때는 말 그대로 날아다녔다.”다. 그 말이 사실이라면 어머니 세대는 정말 대단한 거다. 무언가 정신력이 젊은 세대와는 확연히 다르다는 것을 느낀 적이 많다. 그래서 왠지 믿음이 간다. 결혼 이야기가 나와서인지 간간히 먼저 다가와 내 손을 잡아줬던 지난날의 그녀들은 지금 쯤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소식이 조금 궁금하기는 하다. 상세하게는 모르겠지만 항상 끝에는 내가 차여서인지 그녀들은 별 다른 상처 없이 다른 연애를 수월하게 진행했고 그중에는 결혼까지 해서 예쁘게 잘 사는 그녀도 있는 걸로 안다. 그 이후로도 새롭게 다가올 그녀들도 사실 내게 보낼 수 있는 시그널은 다 보냈었다. 나는 다 알고 있었지만 눈치 없는 척 모르는 척 다 떠나보냈다. 언제부턴가 더는 깊은 사이가 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감정적 소모를 줄이고 다른 것에 열중하고 싶어 졌다. 피트니스 공부를 했다가 독서에 빠졌다가 집필에 빠졌다가 한 분야에만 집중하는 습관이 생겼다. 이것은 버릇이라고 말해도 될 것 같다. 장점이자 단점이니까 말이다. 이제는 어지간해서 장사만 해야 된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달고 살던 헬스도 많이 내려놓았다. 근력 운동 권장 시간이 길어도 1시간 30분 정도인데 근손실이 일어나는 줄도 모르고 학교 방학 때는 무려 4시간씩 헬스장에 박혀 있었었다. 코로나 19가 종식되면 운동은 다시 시작해보고 싶다. 사우나가 달린 헬스장에 가서 목욕도 하면서 하루를 개운하게 시작하고 싶다. 오래전 결혼했다는 그녀가 내게 한 말이 있다. “운동과 나를 만나는 일 중에 하나만 해야 된다면 너는 어떤 걸 선택할 거야?” 그때 내 답변은 “운동을 개운하게 하고 샤워까지 마치고 널 만나러 가면 안 될까?” 정말 눈치 없는 남자였다. 지금이라면 “운동? 그런 거 안 해도 된다. 무슨 운동하고 널 비교하니?”라고 답했을 거다. 진짜 사랑은 그 사람 말고는 아무것도 필요가 없는 거다. 그래서 내가 무인도 이야기를 종종 다루는 이유다. 스마트폰조차도 없이 단둘이서 무인도에 남아 평생을 살아도 행복할 것 같은 그러한 사랑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