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01월 02일 00:43 - 2화 -
중천에 떠 있는 해를 찾기로 했었는데 해가 지고 나서야 알았다. “아, 맞다. 소원을 빌어야 하는데”라며 중얼거리기만 했다. 새해가 밝고 첫 배달에 어머니는 공깃밥을 빼먹으셨다. 출발 전에 내가 확인을 했어야 했는데 아무 생각 없이 들고나갔다가 도착 후 엘리베이터 안에서 추가 공깃밥이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된 거다. 전날 말했듯 빼먹은 공깃밥을 다시 가져다 주려다가 사고가 난 적이 있다. 뒷 쪽 머플러가 아니라 앞 쪽으로 부딪혔었더라면 지금의 내 모습은 어떤 모습일까? 조금 오싹하기는 하다. 그래서 공깃밥 실수는 예민해질 수밖에 없다. 국밥에 국만 있으면 돼지 국이지 돼지 국밥이 아니기 때문이다. 아무튼 다시 가져다 드린다고 손님에게 말하고 다시 가져다줬는데 역시나 표정이 말이 아니다. 간혹 가다가 실수를 이해해주는 손님도 있지만 죄송하다고 고개를 수없이 조아려도 용서해주지 않는 손님이 더 많다. 표정만 봐도 쉽게 알 수 있다. “괜찮아요. 그럴 수 있죠.”라고 대답해주고는 배달앱 리뷰에 별 하나를 달아 버린다. 그래서 내가 그토록 혐오하는 완벽주의자로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되어가고 중이다. “한 번의 실수는 용납이 안 된다. 고춧가루 한 톨이 장사를 좌우한다.”가 배달 장사 좌우명이 되어 버렸고 잔소리만 늘어놓는 아들이 되어버렸다. 점심시간이 지나서야 인터넷을 통해 즉석카메라를 알아봤다. 알고 봤더니 ‘폴라로이드’는 즉석카메라 브랜드였다. 꼼꼼히 알아봤지만 일단은 구매하지 못했다. 마음에 들었던 모델이 20만 원 정도인데 살짝 겁이 났기 때문이다. 열 장에 만 원 정도 하는 필름도 자주 구매해야 한다. 즉석카메라는 내일 다시 생각해봐야겠다. 얼마 전에 날씨가 영하로 떨어지자 눈이 너무 시려서 변색 고글을 주문해놓은 상태라서 우물쭈물하고 있는 것이 크다. 아이스크림을 크게 비어 먹었을 때 시린 통증이 눈에서 느껴진다고 생각하면 이해가 빠를 거다. 누나와 친구에게 내 컴퓨터에 유서가 있다는 사실을 알리지 못했다. 누나는 겁이 많기 때문에 알리지 않는 게 좋을 것 같다. 조만간 기회가 되면 친구에게는 알릴 계획이다. 우리 국밥집의 마감 시간은 02:00다. 그렇지만 냉장고에 준비해놓은 반찬 팩이 떨어지면 조기 마감을 한다. 오늘은 조기 마감했다. 다 팔고 집에 왔다. 사실 이런 날은 기분이 좋아야 정상인데 조금 찝찝하다. 먹고 싶었던 다른 손님이 속상해할 것 같아서다. 그렇다고 정해놓은 양을 늘릴 수는 없다. 장사가 안 되는 날은 어떻게 할 것인가? 나뒀다가 내일 쓸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 장사는 하고 싶지가 않다. “물들어 올 때 놓 저어라”라는 말이 있지만 나는 그냥 갯벌에서 노는 게 마음이 편하다. 음식과 서비스에 보다 집중할 수 있고 언제나 당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오늘은 골목에서 족제비를 만났는데 길고양이와 족제비의 차이점이 있다. 길고양이는 오토바이를 경계하는 반면 족제비는 목숨을 운에 맡긴다. 물론 빠르기는 빠르지만 달리는 오토바이보다는 빠를 수 없다. 사실 조금 먼 거리에서부터 족제비가 왔다 갔다 하는 모습을 봤기 때문에 조심할 수 있었지만 만약 잠깐 지도를 본다고 먼 거리에서 족제비의 움직임을 눈치 채지 못했다면 그리고 운이 정말 좋지 않았더라면 중천에 떠 있는 해가 아니라 “아, 족제비를 죽였다.”라며 이야기를 시작했을 수도 있을 거다. 족제비를 지나쳐서 목적지에 도착했는데 손님이 문을 열어 주지 않았다. 전화도 안 받았다. 음식을 주문해놓고 집에 없는 경우는 정말 허다하다. 퇴근 중이거나 샤워 중이거나 잠들었거나 편의점에 술을 사러 간다거나 주소를 다른 곳으로 입력한다거나 통화한다거나 떠들고 있거나 등 무수히 많은 이유가 있다. 자신의 시간이 소중한 만큼 타인의 시간도 똑같이 소중하다는 것을 모르기 때문에 이러한 행동을 한다고 생각한다. 배달원은 1분 1초 싸움인데 이러한 손님 때문에 밀려 있는 배달이 더 밀려 버리고 나아가 하루 일과가 무너지게 된다. 약속 시간은 정해져 있고 계속 흘러간다. 그래서 위험한 판단을 하게 되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