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달원의 유서

2021년 02월 01일 01:23 - 29화 -

by 임주형

사실 내게도 색감이 짙은 아름다운 꽃처럼 모든 것을 걸어보고 싶었던 여자가 있었다. 나는 언젠가 색감이 짙은 꽃 같은 그녀에게 안개꽃을 한가득 선물하고 싶었다. 그렇지만 그녀는 어디로 튈지 모르는 사람이다. 애인과 헤어진 잠깐의 공백기에만 연락이 오는데 정말 잠깐 왔다가 또 떠난다. 그때마다 괴로움에 시달려야만 했다. 얼마 전 그녀에게서 연락이 또 왔다. 만나고 있던 애인과 헤어질 준비를 하나보다 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헤어진 거다. 이번 에는 진심으로 날 찾아온 건지는 몰라도 언젠가처럼 마음이 열릴 뻔도 했지만 이제는 연락하지 말아 달라고 말했다. 떠나고 나면 내가 너무 괴로워서다. 유독 그녀에게 다치고 지친 마음이 돌아오는데 시간이 오래 걸린다. 내 장사와 위험한 배달에 집중하고 싶다. 그러한 말을 뱉어낸 지금도 온몸이 미세한 진동에 휩싸이는 것 같다. 나는 남잔데 사랑에 대한 트라우마가 깊이 박혔고 그것을 극복하지 못한 시간이 너무 많이 흘렀다. 생각해보니 앞서 말했을 때는 일 때문이라고 우긴 것 같은데 결정적으로는 이 여자에게 박힌 심층적 트라우마다. 사랑 트라우마는 스스로 극복하기가 어렵다. 다른 사랑에게서 치유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아무렇지 않은 것 같다가도 비슷한 상황을 만나면 불쑥하고 튀어나온다. 그녀가 내게 왔다 갈 때마다 점진적으로 그 괴로움이 줄어든 게 아니라 더 증폭되는 것을 느꼈기 때문에 이번에는 다시는 연락하지 말아 달라고 마음에도 없는 말을 냉정하게 전했다. 이 말은 마음에는 없는 말이지만 결코 나를 위한 말인 거다. 배달 앱 별점 하나를 받은 것보다 조금 더 어지러운 지금이다. 오늘도 좋지 않은 리뷰 두 개가 달렸다. 하나는 머리칼인지 털인지 한 가닥이 음식에 나왔다고 하길래 손님 건지 우리 건지는 알 수 없지만 전액 환불해드리고 잘 해결했다. 다른 리뷰는 말없이 별점 네 개를 달아 놓은 건데, 무슨 말이라도 해주면 뭐가 부족한지라도 알 수 있을 텐데 이럴 때는 또 주문하지만 말아달라는 마음으로 그냥 넘어가는 수밖에 없다. 그래도 잠깐 나타난 그녀 때문에 온종일 설렘에 지배당하는 바람에 기분이 나쁠 틈도 없었다. 무언가 내 감정 영역에 방패가 되어준 느낌이랄까? 그렇지만 그녀에 대한 설렘은 가장 아프고 무서운 창으로 돌변할 수 있기 때문에 없는 게 내게 이롭다. 며칠 전 보름달이 예쁘다고 생각했었는데 사람들도 같은 생각이었는지 달을 스마트폰 카메라에 담는 모습을 많이 볼 수 있었다. 어제는 배달 주문이 너무 많이 밀려들어와서 양말을 벗다가 잠들 정도였는데 그 와중에 예쁜 달 사진을 찍었다. 아무튼 지금은 정상적인 정신상태가 아니기 때문에 이쯤에서 줄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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